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섭 Sep 17. 2015

더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바르셀로나 외각의 히로나 공항에서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정신이 아득해진다.

여행지를 떠나며 이 비슷한 기분이 든 적이 한 차례 더 있었던 것 같다.

 

스무 살의 여름, 생의 첫 배낭여행이었던 인도 여행의 마지막 아침. 매연과 먼지 뒤범벅인 델리의 빠하르간즈에서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에어포트”라 말할 때.

뭐가 그리 서러웠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이라 이름 붙은 반직선에 점을 찍어 주는 순간들이 있다. 무엇인가가 끝남을 의미하는 마침표일 수도, 어떠한 새로운 열림을 암시하는 따옴표일 수도, 그냥 딱! 하고 마는 느낌표일 수도 있겠다. 인생의 순간순간들은 하나의 의미만을 갖진 않는다.


비포장도로 위의 덜컹거리는 릭샤 뒷자리에 앉아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스무 살의 아이가 스페인의 한 공항 의자에 앉자 눈물을 찔끔거리는 스무 여덟 살의 아이가 되었다.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아이는 이젠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은 아이가 되었다. 두 배 이상 무거워진 배낭의 무게만큼 삶의 무게도 그때처럼 한없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에 맞추어 견뎌내는 힘, 이겨내는 힘, 나아가는 힘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강해지지 않았을까, 하고 믿어 본다.

많은 것이 변하는 동안에도 많은 것이 그대로 있다.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불러 본다.

갈매기, 딸기, 돌멩이, 수건......     


‘변하지 않은 것들’은 ‘변하지 않을 것들’이 되어 마침내 ‘변하지 않는 것들’이 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나.” 누군가가 정곡을 찌른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뭐라도 해야 되지 않나 싶었던 아이는 이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가 되어있거나 운이 좋다면 이미 뭔가를 한 아이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겠다. 운이 더 좋다면 아직도 쇳덩이로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언제든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모양의 열쇠라도 될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쇳덩이.


그러는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면, 저 어디쯤에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스페인을 떠나며 인도를 떠나던 날의 나를 떠올리고 있는 내가 서 있겠다. 그때 나는 나와 어떠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될까.     

가엾거나 안쓰러워 보일 수 있겠다. 뒷목에 때가 꼬질꼬질하여 더러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의 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의 내가 “잘하고 있어 녀석아 바로 그거야” 하며 다이어트 코카콜라를 한 캔 따주고, 지금의 내가 길에서 흘리는 땀과 눈물은,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미래의 나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줬으면 좋겠다.

풀과 바람과 시, 자전거와 꿈과 나비, 나무와 이상과 떡볶이, 갈매기, 딸기, 돌멩이, 수건...... 이런 것들.      


그것들이 이미 충분히 많이 닳고 변했을지언정, 더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도 한 번쯤 가볍게 웃거나 울 기회를, 그리하여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골 마을을 감싼 하늘의 색이 그러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