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쉐프샤우엔
나는 하얀색과 파란색 사이의 색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색들은 더러워지기가 쉽다. 그래서 내 60리터 배낭엔 회색과 검은색 사이 색의 옷들이 가득하다.
모로코 여행의 마지막 며칠을 북부 작은 마을 쉐프샤우엔에서 보냈다. 나는 이 마을을 정말로 사랑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가 아름다운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마을의 구할 이상이 하얀색과 파란색 사이의 이름 모를 수백 가지 색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풍경이 보기에 참 좋았노라 하였다.
작고 사랑스러운 산골 마을을 감싼 하늘의 색이 그러했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지붕들과 벽들의 색이 그러했고, 그래서 이곳에 사이도 좋게 모여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색이 그러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페인트칠을 하여 마을을 파랗고 하얗게 유지한다고 한다. 딱 봐도 먹고살기 어려워 뵈는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그 수고를 할까 봐 잠깐 궁금하지만 묻진 않는다.
세상엔 별 생각 같지도 않은 생각과 별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멍하니 벽을 바라보고 서 있으니, 인상 좋은 형아가 "너도 한번 해 볼래?"하고 붓을 쥐여준다. 두 달 치의 때가 묻은 벽에, 상하로 두 번 좌우로 여덟 번 티티카카호수파란색을 칠했는데, 회색과 검은색 사이 어디쯤의 내 못난 마음도 덩달아 티티카카호수파란색이 되는 기분이었다.
동화 같은 마을 쉐프샤우엔에서 나는, 캐럴 대신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하는 동요를 흥얼거리며 26살의 크리스마스를 하염없이 걸었다.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사이의 파-아란 지브롤터 해협을 배를 타고 건너는 건 내 오랜 로망 백서의 한 페이지였다. 로망의 현실화를 목전에 두었던 어느 오후, 저-먼 곳에서 마음이 파-아란 친구 하나가 나를 보러 온다 한다.
모로코 쉐프샤우엔에 있는 나를 보러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 하-아얀 머리통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나는 보물처럼 간직했던 페리 표를 가로 한번 세로 한번 찢고, 새벽같이 일어나 첫차와 첫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날아간다.
그렇게 '날아간다."말하고 나서 날아가는 기분이, 정말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기류의 문제라기보다는 저가항공 기체의 문제 때문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는데, 이마를 한쪽 손으로 누르고 남은 손으로 창문 덮개를 살짝 열어보니 글쎄, 하늘이 파-아랗고 바닷물은 더 파-아랗고 구름이 하-아얗다.
아름다워도, 아름다워도,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예요~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예요~" 기분도 좋게 흥얼거리면서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간다.
십 수개월 전 절친한 벗이 여행을 떠나기에 송시로 보낸 적이 있었다. 내가 잊고 지내는 사이 시 속의 주인공은 지구를 2/3 쯤 돌아보았고, 그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기 전 조바심이 나서 나는 1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 꿈같은 여행에 동참하였다.
피카소, 미로와 달리를 보고 세고비아의 수도교를 보며 아치에 대해 토론하고 에스빠뇰 광장에서 최인훈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비야 대학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지냈다. 때때로 나는 김개리의 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 궁금해했고, 개리는 내키는 것만 말해주었고 다시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잠깐이지만 내가 잊고 있던 주인공이 한참 동안 더 진행시킨 이야기 속에 함께 들어와 지내는 기분이었다. 예술과 꿈과 여행과 인생 같은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들 속에서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