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색 바랜 붉은 침낭에

by 김희섭
-38 (2).JPG

초록 색깔 설산.

그 속에 사진인지 그림인지 꿈쩍도 않고 서 있는 양 떼, 말 떼. 북위 65도 갈대숲의 향기. 하얀 에메랄드 바다 내음.


2번도 아니고 3번도 아닌 1번 고속도로.

길 위의 사과 반쪽. 얼어붙은 엄지손가락.

마음씨 좋은 아이슬란드 아저씨와 길 잃은 동갑내기 친구,

그리고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4차례에 거친 히치하이킹과 폭풍우를 뚫은 페리에 실려 아슬아슬하게 아이슬란드의 남쪽 끝 섬에 도착했다.

비바람 몰아치는 작은 섬.

딱히 할 일도 없고 아이슬란드 맥주는 어제처럼 별 특징도 없고 오늘 밤도 색 바랜 붉은 침낭에 삐쩍 말라버린 몸을 누이지만, 바로 이런 거.

IMG_0989.JPG
P1130979.JPG
P1140068.JPG


-36.JPG

이런 어처구니없이 황홀한 하루가 있으니 외로움도 쓸쓸함도 배고픔도 보고픔도 다 잊고 때굴때굴 잘도 구른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길 바라며,

like a rolling stone-

매거진의 이전글화가는 겨울에도 그림을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