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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섭 Mar 29. 2016

웃음이 나면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내고

Leh, Ladakh, India

지붕 너머 보이는 히말라야의 한 봉우리에 구름이 자욱하더니 산 중턱의 도시 레에도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궂은 날씨에 우산도 흔하지 않은 동네라, 요 며칠 여름 성수기를 맞아 국내외의 여행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요가 수업에는 수련생이 나를 포함 세 명뿐이었다. 사람이 적으면 동작에 집중을 더 잘할 수 있고 선생님의 지도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나는 텅 빈 수련실이 은근히 반가웠다.       

나 말고 두 명의 여자가 센터를 찾아왔다. 

한 명은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노르웨이에서 온 심리학자 아주머니고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인데, 금색 스포츠머리에 붉게 탄 피부가 예사롭지 않다. 복장은 괴상하고(분홍색 핫팬츠) 몸을 푸는 동작이 유난히 요란했던 여자는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어린아이처럼 신나게 매트 위를 누볐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어디서 왔느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하자, 미국에서 왔다고 대답을 하고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한참을 웃는다. 


선생님도 웃으며,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여자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할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웃는다.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선생님과 나머지 두 학생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정도로 심하게 웃는다. 인도 구석구석을 떠돌며 20년이 넘게 도를 닦아 꽤나 성인의 풍채를 내뿜던 독일 출신 선생님 마이크 나라다가 참다못해 “뭐가 그렇게 웃기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될 수 있으니 자제해주세요.” 하고 정색을 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웃어댄다.      

여유롭고 고요한 수업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에게도 여자의 웃음소리는 적잖이 거슬렸고, 화를 내보이지는 않았으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 외부 상황과 관계없이 마음속에 늘 평화로움을 유지하라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혹여 표정에라도 화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했다. 화가 나고 삭이고 또 열불이 나고 삭히는 동안 내가 무슨 동작들을 한 지도 모른 체 한 시간 반이 흘렀고 어느덧 수업의 마지막 단계인 shavasana(시체 동작)에까지 왔다.


바닥에 시체처럼 편안히 누워 온몸을 이완하고 눈을 감자, 내가 한 시간 반 동안 대체 뭘 한 건가 싶어 웃음이 조금 났다. 혼자서 한바탕 전쟁을 치렀던 것이다. 학생에게 한마디 주의를 줬던 마이크 나라다 선생님도,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요가를 한 노르웨이 아줌마도, 미친 사람처럼 웃던 여자도 평화로워만 보였다.  


마음의 요동을 두려워했던 건 나 혼자였던 거다. 웃음이 나면 웃고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웃겨서 웃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다가 그 생각이 나의 화로 번졌고, 화를 제어하려다 그 화가 나의 몸과 마음을 마음대로 제어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달리는 지하철 6호선 안에서 비가 추적이던 그날의 라다크 마하보디 센터를 떠올린다. 

맞은편에 앉아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는 승객 일곱 명 모두에게 아무런 표정이 없어, 마치 귀신처럼 느껴진다. 질세라 스마트폰의 셀카 모드를 열어 내 얼굴을 비춰보니, 나도 귀신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마하보디 센터의 캔디가 그리운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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