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캐나다로 오셨어요?
아니, 왜 한국을 떠나셨나요?”
이민 1세대가 낯선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다. 같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질문은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요…
귀 기울여 들어 보면 제각기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인생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겠지만, 크게 보면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캐나다에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 이유들을 이곳에 나열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보다 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복잡한 그 이유들을 명확한 언어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한국 사회가 가진 모순과 캐나다라는 국가의 이미지에 대한 기대, 가 우리를 떠나게 했고 이곳에 있게 하였다. 정도로 뭉뚱거려 볼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 질문을 외국인들에게 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고 자란 조국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제3자에게 설명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해외에 나오면 너도 나도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굳이 내 나라에 대한 뒷담화를 외부인에게 하고 싶지가 않다. 내가 내 마누라를 구박할지언정 남이 내 아내를 우습게 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까.
에헴… 뭐랄까, 나와 기질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한국은 굉장히 훌륭한 나라예요. 대분분의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의 받고 따라서 모두가 교양이 있죠. 각종 서비스의 질과 스피드는 어떻고요. 마음만 먹으면 30분 내에 의사를 만날 수 있고, 웬만한 수술은 다음날 또는 다다음날 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라니. K-pop, K-drama, K-food… 굳이 말 안 해도 알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긴 하지만, 한국은 살기 아주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어요!(?)
무엇보다, 그놈의 “한국 사회 시스템의 모순”이니 뭐니 하는 이 모든 이야기가 사실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가치판단의 모호함을 동반하기에, 상대방을 납득시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대화는 쉽게 끝나지 않고, 심도 깊은 추가 질문 세례를 받을 위험을 내포한다. 이를테면, 그 대단한 의료시스템을 지탱하는 의료보험 체계는 어떻게 되느냐라든지,…. 이는 영어말이 짧은 우리 이민자들에게 치명적인 상황을 유발할 수가 있다.
그러나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민의 이유 하나가 있다. 삼척동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 바로 air quality. 공기가 너무 나빠서,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한국을 떠났다는데 누가 반문을 제기하겠는가. 심지어 이것은 내 사랑스런 조국의 탓이 아니라 이웃을 잘못 만난 탓이여, 더 깊게 파고들자면 현대 사회의 도를 넘은 소비주의와 대량생산이 만드는 악순환의 결과물인데…
오호라, 그렇다. 나는 이 거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매우 미세한 먼지 따위 때문에 나의 조국을 떠나 이곳 캐나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곳의 대기질은 기가 막히게 좋다. 파랗고 청명한 하늘이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질 만도 한데, 이따금씩 바라보는 하늘과 구름들은 결코 당연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시다.
허나,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고 했던가. 대기질이 뛰어난 이곳의 하절기는 그토록 아름답지만 찰나처럼 짧고, 동절기는 징하게 춥고 영겁처럼 길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이지만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기후변화의 영향인지 뭔지 봄여름철 대규모 산불이 일상에 추가되었다. 산불이 발생시키는 스모크는 눈을 뜨기 힘들 만큼 맵다. 맑은 하늘과 긴 가시거리를 꿈꾸며 떠나왔지만, 맑은 하늘은 때때로 창밖의 풍경일 뿐이고, 어느 날들은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앞이 매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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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공부를 핑계 삼아 캐나다로 떠나왔으나 내가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은 이미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있었다. 무엇을 찾아 떠나 왔는지,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명료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 의 연장선으로 이민 생활 또한 녹록지 않다. 익숙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낯선 땅에 뿌리내리는 일은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지긋지긋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동반한다. 시간과 함께 이것들에 서서히 익숙해진다기보다는, 이 어려움과 고단함이 나의 또 다른 익숙한 풍경, 새로운 지긋지긋한 일상이 되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사람이 사는 곳에 천국이 있을까. 지구도 돌고 태양도 돌고 따라서 나도 돌고, 공기가 제자리에 머무를 리 만무하며, 대기질은 어디서도 고르지도 영원하지도 않다. 신이 자연과 사회를 통해 만들어 내는, 나 따위는 가늠도 할 수 없이 복잡한 방정식 속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공기를 마실 수밖에. 어디에 있더라도 아주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마음껏 내 쉴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