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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갤러리 까르찌나 Jun 08. 2022

막심 고리끼 동행과 바실리 막시모프 모든 것은 과거에

<그림과 문학이 만났을 때 3편>


막심 고리끼 <동행> 과 

바실리 막시모프 <모든 것은 과거에>

바실리 막시모프(1844-1911), <모든 것은 과거에> 1889년 , 캔버스에 유채, 72x93.5cm,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문학과 그림이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아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람과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가슴 한켠에 잠재워둔 가장 깨끗하고 소중한 그 무언가를 탕 ~ 일깨워주고 느끼게한다 . 


누군가와 삶을 함께 한다는 것, 우정을 나눈다는 것 – 일생을 꾸준히 할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 사랑이 곁에 있든 없든 중요치 않다. 


여기 세월을 뛰어넘고 신분을 뛰어넘어 함께 하는 사랑,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막심 고리끼는 <동행>에서 중년의 귀족(비짜)과 과거 그의 하인(예피무쉬까)의 우연한 재회를 통해 가슴 깊히 묻어두었던 서로의 애정을 확인 하는 과정을 그린다. 세월은 흘렀지만 예피무쉬까의 끝없는 주인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 지금은 몰락해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과거의 하인을 잊지 못하고 그를 찾아 온 주인비짜의 우정을 지켜보며 말로는 표현 못할 애틋한 흐믓함을 느끼게 한다.


그림 <모든 것은 과거에>에는 지난 겨울의 칙칙함을 벗고 라일락 만개한 화사한 봄을 즐기는 두명의 노파가 등장한다. 먼 곳을 아련히 응시하며 과거를 되새기는 귀족 여인 옆에 묵묵히 뜨개질을 하고 있는 그녀의 하녀가 있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신분의 둘이지만 오랜 세월 힘이 되어주며 이제는 친구가 되었다. 하나의 사모바르(러시아 차주전자)에 차를 따라 마시며 현재를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된 것이며 둘은 이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미술관 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 김희은 지음 자유문고

소설<동행>과 그림<모든 것은 과거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사실 권력이 있거나 그리 화려해 보이진 않지만 삶을 살아오며 차곡차곡 인간을 쌓아온 사람 냄새나는 그런 인물들이다. 성공도 해보았을 것이나 실패도 해본 그런 사람, 그 속에서 웃고 울었을 그들 시간과 역사에 자리잡은 바로 진실한 친구. 그런 존재를 이 두 작품에서는 진솔하게 그린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신분 따위가 무에 중요하겠는가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데 말이다.


고리끼의 <동행>에는 하인 예피무쉬까가 주인 비짜를 표현하는 대목이 나온다. “뚜치꼬프 집안에 제일 작은 도련님이 한 분 계셨는데 이름이 빅또르였지요. 비짜라고, 그분은 나와 친구였지요. 14년이나 같이 지냈으니까요 그 도련님은 오!! 깨끗한 시냇물 같았지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분주히 뛰어다녀 졸졸 소리가 날 정도였지요.” 주인으로 모신 사람을 이렇게 표현할수 있다니 이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귀족 비짜는 하인 예피무쉬까에게 글을 가르쳐 주며 이렇게 말한다 “읽고 쓸줄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 어디에 진리가 있는가도 찾을 수 있게 된다” 라고 자신의 하인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삐짜!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예피무쉬까를 안타까워 하며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 절규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한다. 

막심 고리끼 동행이 실려 있는 단편집

또 귀족 비짜는 예피무쉬까를 이렇게 추억한다. “ 예피무쉬까, 자넨 여전히 착한 사람이군! 어릴때와 다름없이..” 오랜 세월동안 모든 것을 잃어 버리고 돌아온 주인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예피무쉬까를 보며 비짜는 말한다. “난 이제 귀족이 아니야 . 난 자네와 똑 같은 사람이라고 “ 라며 오랜 친구를 감싸 안는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살았지만 서로를 기억 속에 묻어 두었던 두사람이 하나씩 추억을 되살리며 가까워지는 소설 전개는 꼬불 꼬불 산길을 돌아 드넓은 초원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탁트임이랄까!. 오랜만에 아주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날 이렇게 추억해 줄 이가 있을까라는 부러움까지 느끼게 하는 그런 소설이다. 

그리고, 막시모프의 <모든 것은 과거에>는 쓸쓸하지만 견뎌내야 할 노년의 시간이 보인다. 나이 들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고 어디에서 살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나온 나의 과거에 있겠지만 나 또한 함께 찬란한 햇살 아래 함께 차를 마실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고리끼의 <동행> 마지막 장면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세월은 참 무섭기만 하군요. 도련님 같은 분도… 이렇게 꺾여 버리니 말입니다” 라고 예피무쉬까가 말하니 “아니야 그건 아직 알 수 없네. 생활이 나를 꺾었는지, 내가 세월을 꺾었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할 우리 삶의 과제를 이렇게 또 작가는 보여준다. 


*막심 고리끼의 <동행 >의 내용은  한 마을에 통행증, 신분증을 지참하지 않은 낯선 남자가 나타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을 경찰에게 신고하고자 경찰서까지 호송하려 한다. 그 임무를 맡은 사람이 예피무쉬까다 옆마을에 있는 경찰서까지 20키로 정도 가야하는데 그 길을 동행하는 중에 둘은 과거에 함께 동고 동락했던 주인과 하인 사이란걸 알게 되고 재회를 기뻐한다. 그 재회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아주 짧은 단편이라 정독해 보는 것도 재밌을 거다

발렌틴 세로프가 그린 막심 고리끼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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