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쌤은 환경 구성 다 했어요?”
현주가 전에 일하던 유치원에서도 수료 날짜가 늦어서, 으레 신입 교사들이 1,2월에 먼저 출근하여 유치원의 일손을 돕는, 무급 혹은 차비 정도만 챙겨주면서 ‘이게 다 경험’이라며 온갖 잡일을 다 시키는 동안 신입 교사들은 어색함 속에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날에 올 수 없었다. 주혜는 2월 셋째주 월요일날 출근한 날, 교사실에 먼저 출근해 대기하고 있던 지연을 만났다. 주혜와 미래, 현주는 담임 교사, 지연은 부담임 겸 종일반 담임 교사로 입사한 첫날이었다. 현주는 아직 유치원에서 수료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새학기 직전에 출근한다고 해서, 주혜는 2주간 지연과 미래와 함께 유치원 부지런한 일손이 되었다. 2주 동안 한 일은 새학기 준비의 연장선이었다. 복도에 있는 큰 게시판을 채울 도안을 서치하고, 다양한 색깔의 색지를 오려 게시판에 붙였다. 우리가 찾은 도안은 푸른 언덕 위에 큰 벚꽃나무가 있고, 토끼, 기린, 사자, 다람쥐가 기차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귀여운 통통 글꼴체로 ‘환영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주혜와 지연은 같은 초임이지만, 지연은 대학을 갓 졸업한, 아직은 학생티가 역력한 초임이었고, 주혜는 카페, 학원 등 다년간 다져진 맷집같은 사회성으로 나름의 여유의 능글거림을 가진 초임이었다. 같은 초임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주혜와 지연은 분홍색 색지 위에 토끼를 그리고 오리며 빨리 가까워졌다. 3년차 교사였던 미래는 각 반의 신발장, 옷걸이에 붙일 이름표 작업을 했다. 주혜는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자신과 지연보다 비교적 쉽게 원감님, 원장님께 다가가 이것, 저것 물어보는 미래를 보며 생각했다.
‘저것이 바로 짬바의 바이브인가’
미래는 휴대폰 화면으로 이름표 도안 몇 가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원감님, 이 도안으로 연령별 색깔을 나눠서 할까요? 작년엔 연령별로 색깔 어떻게 다르게 했는지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이 도안은 재작년 신발장 이름표로 썼던 거니까, 밑에 있는 걸로 하자. 5세는 노랑, 6세는 분홍, 7세는 파랑으로.“
원감이 2021년 반배정 원아 명단을 미래에게 건네며 말했다. 미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원아 명단을 토대로 빠르게 입력했다. 손가락이 피아노 위에서 연주하듯 힘찬 움직임에 따라 키보드 소리가 현란했다. 원감과 함께 에듀파인 및 행정 업무를 도맡아 하는 이 유치원의 실세, 은욱이 말했다.
“우와, 쌤 타자 엄청 빠르네요.”
유학 생활에 지쳐 돌아온 원장님의 둘째 아들 은욱은 유치원을 물려받기 위해 대학원에서 유아교육 전공자 수업, 즉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은욱이 아주 어릴 적부터 유학 생활을 했던지라, 원장님께는 아픈 손가락이었고, 정 붙일 곳 없이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전공인 철학 분야를 끈질기고 심도 있게 연구하는 과정을 포기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엄마의 사업체인 유치원을 물려받기 위해 유치원 행정 업무를 도우면서 대학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처음 그가 최저시급을 받으며 유치원에서 일손을 돕는다고 했을 때, 교사들은 반신반의했다. 힘을 쓸 일이 생길 때 필요하지 않겠냐는 찬성파와 원장의 가족과 일한다는 자체에 불만을 갖는 반대파가 분분했다. 유학파답게 헤비급 몸을 자랑하며 들어온 은욱은 강의를 듣는다는 핑계로 원장실에 들어가 소파에 누워서 낮잠을 주무시기 일쑤였고, 귀국하면서 눈치는 미국에 두고 왔는지, 원감과 교사가 유아의 문제 행동을 어떻게 지도할 것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에 ‘저 어릴 때도 그런 적 많아요.’라고 말하며 끼어들며 대화의 본질과 흐름을 어지르기 국가대표급 선수였다.
잠이 온다는 이유로 교사실에서 19금 팝송을 크게 튼 은욱을 보며 참다 못한 여은이 한마디했다.
“은욱쌤, 여기 교사실이에요. 선생님들 일하는 곳이고, 지금 옆에 원감님도 일하고 계시잖아요. 아이들도 들어올 수 있는 교사실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 ‘Toxic’은 아니지 않나요?”
“아, 네 죄송합니다. 근데 쌤 어떻게 첫 소절만 듣고 노래 맞춰요? 아는 형님 같아요! 신기하다!”
여은은 목젖까지 올라온 욕을 애써 누른 채,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하며 대답했다.
“워낙 유명하니까요. 정신 사나우니까 꺼요”
여은은 말의 문맥도, 핵심도 짚지 못하는 저 어린 짐승을 보고 있자니, 하루 종일 교사실에서 함께 있는 원감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잠시 원감을 바라보던 여은은 다음주에 활동할 계획안을 작성하고, 미술 재료를 찾아보기 위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차곡차곡 포인트처럼 비호감을 꾸준히 적립하던 은욱은 최저 시급만 받는다던 그의 월급이 밝혀지면서 새 국면을 맞이했다. 원장실에 있는 파쇄기를 사용하려 들어갔던 여은은 그녀의 책상에 있던 은욱의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며 폭발했다. 최저 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그의 월급은 세후 160만원에서 180만원 사이어야 했는데, 급여명세서에 찍힌 숫자는 경력 5년차인 교사와 맞먹는 급액이었다. 누적된 포인트로 이미 한계치였던 여은의 불만은 이를 계기로 완전히 폭발하였고, 은욱의 급여명세서를 카메라로 찍어 교사들 단톡방에 공유했다. 이미 수차례 보여준 은욱의 근무 태만으로 많은 불만이 쌓였던 교사들의 핸드폰은 밤새 울려댔고, 잠시 물 마시러 간 사이, 잠시 화장실 간 사이에 단톡방 옆에는 500+가 말의 무게감을 나타냈다. ‘잠시’는 끝없이 위로 올려야 하는 스크롤을 선물했으며, 사건은 아이들과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잘 먹는지, 편식 습관을 지도하고, 화장실 가는 유아의 뒤처리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식사 시간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자신들과 달리, 엄마와 오붓하게 점심 식사 후 카페에 커피 사러 가는 은욱이 받는 월급이 어떻게 교사와 같을 수 있냐며 분노를 선물했다.
그간의 유구한 역사를 알 리 없는 신입 교사였던 미래는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워낙 손이 빨라서요.”
“쌤은 작년에 우정 유치원에서 몇세...”
또 눈치 없이 대화를 이어가려는 은욱의 말허리를 자르며 원감이 말했다.
“미래아, 코팅지는 왼쪽 서랍 맨 윗칸에 있으니까 미리 가져가고, 펀치는 하늘반에 있으니까 빌려달라고 하고 가져가라”
“하늘반이요? 네, 알겠습니다”
원아명을 다 입력한 미래는 인쇄 설정에서 고급 설정 탭을 누른 후, 인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분주히 손을 놀려 왼쪽 서랍 맨 윗칸에서 코팅지를 챙기고, 꾸벅 목례를 하고 교사실을 나섰다.
은욱의 표정이 구겨지며 입술 한쪽이 일그러졌지만, 그 누구도 그의 불편한 심기를 신경쓰지 않았다. 유구한 역사를 다 알지는 못해도, 그가 구사하는 언변과 칠칠맞게 흘리고 다니는 행동거지가 역사의 전신임을 알려주었기에, 눈치 빠른 미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미래는 고등학생 때 교무실에 들어가기 전처럼, 한창 점심식사 중인 하늘반 문을 똑똑 두드린 후 반쯤 열며 말했다.
“선화쌤, 혹시 펀치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