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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y 28. 2020

나이듦에 대하여

회사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A가 우리 회사의 대표로 온지 어언 15개월. 처음에 가졌던 기대와는 다르게 불만이 빠르게 쌓여 나갔다. 그리고 A가 대표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A를 대신해 대표로 올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A 바로 전에 대표를 했던 B. 실은 나는 B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B가 새로 추진하는 사업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한 직원이 바로 나였다. 그래도 B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B는 그래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니까. 새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은 C였다. C가 이곳의 대표로 온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C를 직접 겪어보지는 못했다. 무성한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려졌다. C가 이 회사의 대표로 왔을 때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이제, 회사를 나가야 하나.


이렇게 후보군이 좁혀지고 나니, 그중 가장 좋은 대표는 A였다. 그래도 A는 악독하지는 않았고, 최소한 지금보다 더 나쁘게 만들지는 않을 사람이었다. 그동안 A에게 이런저런 불만이 많이 쌓였었는데, 그리고 A가 이곳을 떠나길 바랐었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나마 A만한 사람도 없었구나...


우리는 이상에 대해 쉽게 생각한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같다. 친구들과 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은 대통령을 욕하며 숱한 불만을 토로하는 가운데 이만큼이나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발디디고 있는 곳은 현실이지만, 우리는 쉽게 잊는다. "이것보단 저게 낫지!" 거의 당위에 가까운 말들. 누구도 그 말을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이상이니까. 그래서 나도 A에게 그렇게 많은 불만을 쏟아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부처와 예수, 공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내가 함께 일해야 하고, 모셔야 하는 상사의 선택지는 별로인 A와 그보다 나쁜 B,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C뿐이다. 이걸 모르고 살았다. 왜 몰랐을까. 매번 선거철이면 항상 불만이 가득했다. 왜 후보는 바보와 멍청이뿐인가. 예수와 부처라는 후보는 없나.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궁금했다. 왜 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나의 상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일까. 목청 높여 불만을 토로하는 나를 보면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런데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A가 아니라, B나 C가 대표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고 나니 과연 나는 예전처럼 당당하게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C가 대표로 온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니까. 나는 과연 지난날처럼 떳떳하고 소신 있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을까? 아직 로또는 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이었구나.


나보다 더 오래 회사에 다닌 많은 사람들. 그들은 아마 C보다 더한 D도 겪었을 것이고, 최악인 줄 알았던 D를 겪고 나니 그보다 심한 E와도 지내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A가 별로이고 문제가 많은 것을 알면서도 차마 A에게 모든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A 뒤에는 C가, 그리고 D나 E가 올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라.


<논어>에 후생이 가외라는 말이 있다. 선배들은 젊은 후학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혹시 C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수많은 나의 상사와 선배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A조차도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조금씩 부조리와, 불의와, 비겁함과 타협하게 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나. 나를 보는 후생들에게 나는 나중에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네가 그 자리에 가 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나는 아주 싫어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데 오늘의 소동을 겪고 나니 그 말이 과히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후생을 가외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소동으로 나는 좀 더 신중해지고, 얌전해질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겠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 더 진중하고, 조용해지되 한마디 말도 천금 같은 무게를 가지고 내뱉을 수 있도록 나의 소신은 버리지 말아야겠다. 내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직 나만큼 경험해 보지 못해서 부조리한 것을 부조리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후생이 아닐런가.


그래서 결과는 어찌 되었냐고. 걱정하던 것과는 다르게 A도, B도, C도 아닌 다른 D가 온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나는 D를 겪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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