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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y 29. 2020

나는 왜 싸가지가 없는가

회사에서 나의 존재는 약간 미친 개에 가깝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 웃기기도 한데, 쉽게 말하면 아무도 나를 만만히 대하지 않는다는 뜻 정도 되겠다.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나갔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한 번은 두어 달쯤 전이었나. 내가 지출 문서의 결재를 올렸다. 딴에는 인계받고 일을 부지런히 해서 예년보다 빨리 돈이 나갈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결재하던 총무팀장이 우리 팀장에게 와서는 결산이 끝나지 않았으니 다음부터는 일을 이렇게 빨리하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닌가. 바로 옆에 있던 내게 직접 말해도 상관없었는데, 내게 말하기가 껄끄러웠던 탓이다. 무엇이 껄끄러운가 하면 바로 그 뒷풍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곧바로 그 얘기를 전달하는 팀장에게 나는 전 직원 들으라는듯, "아니 뭔 회사가 일을 빨리 해도 뭐라고 합니까. 계약서에도 다 지급 기일이 적혀 있는데. 그럼 계약서를 다 다시 쓰라고 해요." 하고 큰소리로 따졌기 때문이다. 총무팀장은 분명 내가 나무라는 말을 들었을텐데 자기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4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에서 나는 어린 쪽으로 한 손에 꼽을 정도에 가깝다. 그런데도 가끔 보면 쥐죽은듯이 고요한 회사에서 내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도 '내가 조금 심한 것은 아닌가?' 자조하기도 한다.


얼마전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우리 팀은 팀장님까지 4명뿐인 우리 회사에서 가장 작은 팀이다. 나는 회사의 선배 직원들에게 워낙 불만이 많다 보니 팀장님도 소 닭 보듯 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심한지도 모르겠다. A선생님은 팀에 팀장님보다도 더 오래 계셨고, 확실히 일의 전문성도 더 뛰어나다. 그렇다 보니 팀장님께서 함부로 하지 못한다. 나는 우리 팀의 유일한 남자 직원이고, 미친 개에 가까워 팀장님께서 내 눈치를 보는 편이다. 그리고 우리 팀엔 B선생님이 있다. 내가 팀장님을 다그치듯 말할 때면 나를 나무라고, 팀장님께 가장 잘하고 살가운 분이다. 누가 봐도 우리 팀에서 가장 성격 좋고 착한 분이다. 그런데 며칠 전 A선생님께 팀장님께 별일 없느냐고 메시지가 왔다. A선생님과 B선생님은 육아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와중이었다. "별일 없는데요?" 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글쎄 전날 팀장님이 밤 10시에 B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업무 진행 상황을 이렇게 대충 써서 보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참을 나무라셨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놀라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 밤 10시에 팀장이 직원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고, 팀원 3명 중에 2명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고. 내 경우에는 팀장님이 B선생님에게 밤 10시에 전화를 했다는 것보다도 역정을 냈다는 점에 더 놀랐다. 팀장님은 A선생님에게도, 내게도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 팀에서 팀장님에게 가장 잘하는 사람은 B선생님인데, 팀장님은 오히려 그런 B선생님에게 화를 낸다. 나에게도, A선생님에게도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분인데. 오늘은 사무실에서 가까운 C선생님이 내게 하소연을 해 왔다. 다른 직원들이 내게 가지고 있는 불만을 자기에게 다그치듯이 털어놓는다는 것이다. C선생님은 내가 아닌데, 왜 자기에게 그런 불만을 토로하느냐며 서운함을 느낀 듯했다. "결국 선생님께는 아무 말도 못할 걸요. 언제까지 뒷담화만 할 겁니다. 속성이 그렇거든요. 근데 전 호구로 분류되었구요. 제가 만만한가 봐요."


미친 개인 것이, 싸가지가 없는 게 어찌 자랑이겠는가. 나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지점에서 정말 화가 난다. 사람들은 미친 개에게는, 싸가지 없는 x에게는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다. 미친 개가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미친 개가 더러워서 피한다면, 내게 잘해 주는 사람, 좋은 사람, 호구 같은 사람은? 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친절하고 잘 대해 주어야 정상 아닌가. 여기에서 나는 사람에게 깊은 환멸을 느낀다. 사람들은 미친 개의 눈치는 살살 보면서, 좋은 사람, 잘해 주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함부로 한다. 팀장님은 나에게도, A선생님에게도 뭐라고 하지 못하니 B선생님에게 더욱 역정을 내는 것이다. 사실 본인에게 가장 잘하고, 잘 대해 드리는 사람이 B선생님임에도 자신이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은 B선생님뿐인 것이다.


결국 난 이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깨달았다. 그리고 변했다. 내가 미친 개가 되지 않으면 호구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물론 내가 더 현명했다면, 지혜로웠다면 그 어느 쪽도 아닌 존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가 호구처럼 대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 나는 현명해지는 쪽보다는 미친 개가 되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해 지난 지금, 이 회사에서 나는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직원이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착한 사람이 호구잡히는 이 회사에서 남들보다 큰 손해를 보지 않으며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대로 다른 직원들이 나의 뒷담화는 할지언정 아무도 내 앞에서 직설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지 않는 환경에 만족한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사는 모습이, 사람들의 이 속성이 과연 아름다운 것인가. 왜 사람은 좋은 사람,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더 함부로 대하는가.


늘 바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사람의 이런 저열한 본성에 직면하고 나면 도무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사실에 항상 깊이 좌절하게 된다. 언제쯤 나는 인간성을 회복하게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도 그나마 호구가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끼고 마는 처연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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