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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Dec 14. 2023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남아 있을까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3

후회와 미련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살면서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 봤는지를 세어 보면 따질 수가 없지만, 요즘처럼 오래도록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적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아직 이혼을 한 건 아니지만 아내와의 이혼과정에서 몇 번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다툼을 한 것, 그리고 이후에 이혼 이야기까지 꺼내며 강경하게 나갔던 것, 이혼신청서를 내밀었던 것, 그리고 도장을 찍었던 것, 또 생일날 아침 별다를 것 없이 제주로 출발했던 것. 모두 돌이키고 싶은 순간들이다. 그 가운데 단 한 번의 순간만 달라졌더라도 지금처럼 아내와의 관계가 참담한 상황에 들어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아내는 도장을 찍지 않을 것이라는, 아니 찍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마음을 돌리면 아내도 금세 가정을 지키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며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는 힘들 것 같다.


아내에게 집주인의 연락 소식을 전하며 다시 한번 잘 해 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왜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지 모르겠는데, 아내와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 안고 서로 용서해 주는 그림을 그렸었던 듯 싶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달랐다. 처음부터 아내가 쉽게 도장을 찍은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내는 이제는 그만 나를 놓아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힘겹게 힘겹게 다시 한번만 생각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아내는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지만 마음이 바뀔 확률은 거의 없다고 했다. 열흘 정도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겠다고 이야기한 아내와 이혼서류를 낼지 말지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 시간이 바로 오늘이었다.




지난주 화요일이었던가. 아내의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을 접하고 출근한 회사에서의 일상은 엉망이었다. 나는 기획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창작과 작문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날이 하필 딱 그래야 하는 날이었다. 오전엔 준비만 하고 실질적인 업무는 오후에 보았는데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모르겠다. 관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마음이 좋고, 컨디션이 좋았다면 훨씬 더 좋은 상태로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아내에게 몇 번 연락도 했지만 아내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그때는 나았다. 적어도 답장이라도 했으니. 어느 순간부터 아내는 나의 메시지에 아예 답장도 하지 않는다. 마음을 굳게 먹었지 싶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상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협의이혼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두 사람의 의사가 합치되어 이혼신청서를 작성하기도 해야 하지만, 법원에 접수를 해야 하고, 다시 출석해서 또 한번 확인을 거치고, 그 뒤에 다시 완료된 서류를 주민센터에 제출까지 해야 이혼은 완료된다. 아내에게 이혼서류를 내밀었던 건 이렇게 여러 번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다는 절차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이혼서류를 작성했다고 해도 내지 않을 수도 있고, 냈다고 해도 추후에 번복할 수도 있었다. 아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나는 정말 힘든 상황을 지나고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내도 나의 반응에 오랫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 점점 단단하게 이혼해야겠다는 쪽으로 결심도 굳혔을 것이고.


그리고 지난 주말에 편지를 썼다. 아내에게. 정말 오랜만에 쓰는 편지였다. 편지를 쓰기 전에 일주일 내내 정말 눈물바람으로 한 주를 보냈다. 예전에 아내에게 받았던 메일, 내가 보냈던 메일을 보는데, 한때 사랑으로 넘쳤던 시기에 아내에게 받았던 메일을 보면, 읽을 때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나에겐 우리가 가장 사랑으로 넘치는 행복했던 시기라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 시간. 아내는 지금 그 시간을 본인이 희생으로 만들어진 힘겨웠던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왜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되었는지, 앞으로는 어떤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지 등등의 나의 다짐을 착실하게 적어 나갔다. 아내가 편지를 읽고 마음을 움직였으면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편지는 쓰지 않느니만도 못한 결과를 낳았다. 모르겠다. 쓰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만큼 아내의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어제 저녁에 아내에게 오랜만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그동안 나는 아내에게는 하루에 딱 두 마디만 할 수 있었다. ‘왔어?', '잘 자'. 어제에서야 열흘만에 한 시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한 건, 오늘이면 아내가 마음을 정할텐데 그 전에 뭔가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실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내가 그제 저녁에 서류를 출력해 온 것이었다. 내심 믿는 구석이었다. 신청서에 도장은 찍었어도 아내가 아직 서류를 출력하진 않은 것을 보니 진심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생각이 부정적이고 회의주의자인 편인데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긍정적인 생각이 출현하는지 모르겠다. 그랬었는데 아내가 출력한 서류를 보는 순간 갑자기 현실이 느껴졌다. 이게, 현실이구나.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서류를 보았단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아내에게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처럼 조금 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겠냐고 부탁했다. 아내는 강하게 반발했다. 아내는 이미 금요일에 서류를 접수하러 가야겠다는 결심이 다 선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게 내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혼은 협의하는 의사를 거쳐야 한다. 아마 아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끝까지 하지 않겠다고 하면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우리가 6, 7년 정도의 결혼생활을 했으므로 6, 7개월 정도의 시간은 가져봤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던 데 반해, 아내는 앞으로 두 달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아내와 절충해서 3, 4월 정도까지로 차이를 좁혔다. 물론 아내는 무척 분개했다.


내가 아내여도 화가 머리 끝까지 날 것 같다. 아내가 하자고 한 이혼이 아니다. 지가 먼저 이혼하자고 서류를 들이밀고, 도장을 찍으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가 생각이 바뀌었다고 이혼을 하지 말자고, 잘 해 보겠다고 한다. 누구라도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아내는 아내답지 않게 온갖 독설도 내뿜었다. 아내에게는 처음으로 듣는 말이었지만, 아마 아내는 그동안 내게 그런 독설을 여러 번 들었겠지. 나의 지난 결혼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브런치에도 몇 번 썼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엄청난 착각이었지 싶다. 아마도 그냥 아주 나쁜 남편은 아닌 정도의 수준이었지 않을까.


3, 4월까지로 시간을 번 덕분에 아내는 한 번 더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우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이지만 아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다. 아내가 정말 천금 같은 무게를 가지고 이혼신청서에 도장을 찍었듯 그걸 되돌리려면 또 그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나와는 부딪치지도,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으려는 아내와 나는 어떻게 이 과정을 극복해 낼 수 있을까.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점이 있다면 아내와 나에게 그래도 3, 4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 많은 어른들이 부부 사이는 생각지도 못한 작은 일로 나빠지기도 하지만, 좋아지기도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3, 4개월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사이에 새로운 동네의 새로운 집에서 출발해 볼 수도 있는 기회를 얻었단 점에서 뭔가의 계기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전엔 그게 큰 불만사항이었는데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나와 마주치지도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지만, 아내가 하나 거절하지 않는 것이 같이 교회에 가자는 말이다. 덕분에 지난 일요일에도 같이 교회에 다녀왔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말 교회에 가기만 했다. 아내는 예배가 끝나고 다른 신자들과 점심모임이 있다고 해서. 지금도 아내는 여전히 정말 차갑고 냉정하지만, 이번 주말에도 교회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엔 그렇게 하자고 한다. 앞으로는 매주 교회에 같이 갈 생각이다. 나에게 주어진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일주일 안의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꾸준히 같이 나가는 모습을 보이다 보면 아내도 마음이 조금은 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기대를 한 번 해 본다.




제가 결혼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두 번의 큰 계기는 아내가 차려 준 생일날의 아침상과 브런치의 댓글이었습니다. 마음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차려 준 생일날의 아침상을 보니 마음이 울컥하더군요.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정말 눈물을 참으며 겨우 식사를 했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을 게 아니라 차라리 눈물을 터뜨렸다면 아내와 같이 부여잡고 그 정도에서 화해했을 수도 있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브런치의 댓글도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브런치의 글을 저는 제 입장에서 저를 최대한 미화해서 적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입장에서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아니, 전부 다 그랬습니다. 제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게 마음을 고쳐 먹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어느 분의 댓글처럼 여기에서 아내를 보내주는 게 아내의 행복을 지켜주는 길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내가 어제 분노에 차서 저에게 내뿜었던 독설처럼 저는 끝까지 제 마음대로만 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네요.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이렇게 아내를 놓을 수는 없어요. 그게 제 이기심이라 해도요.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 여러 현인들의 고견을 청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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