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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Dec 18. 2023

늦었지만, 버스를 붙잡을 수 있을까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4

나이를 먹고 나서 시간이 참 잘 간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았다. 모든 건 상대적이다. 요즘은 1초가 10만 년 같이 느껴진다. 아내와 대화를 나누고, 전편을 쓴 게 불과 사나흘 전이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상황이 더 나빠졌다. 내가 특별히 무얼 해서가 아니다. 아내가 그렇게 마음을 굳혀 가고 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더 짧아지고 있다. 전편을 쓸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 있었던 부분이 있었다. 아내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같이 가기로 했고, 그렇다면 분위기도 바뀌고 남은 서너 달 동안 뭔가의 전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의 인연은 끝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수요일에 아내와 대화를 나눈 이후 아내는 더 냉랭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지가 먼저 이혼하자고 하더니 이제는 못하겠다고 한다. 너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다고 마음이 변하면 못하는 거냐고 화를 내는 아내. 평소답지 않게 독설까지 쏟아냈었다.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토요일. 아는 형을 만나 지금의 상황에 대해 한참을 상담받고 집에 왔더니 아내가 집에 와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노크를 하고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의외의 청천벽력 같은 답이 왔다. '나는 너랑 이사 안 가. 이 집이 마지막이야. 그리고 나는 마음 다 정했어' 무릎 꿇고 피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빌었다. 나는 6월을 제안했는데, 당신이 먼저 절충해서 3월까지로 하자고 한 것 아니었냐고. 아내는 자긴 생각해 보겠다고 했었다며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더 냉정하고 상처주는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좋게 헤어지기 위해 참고 있다는 아내. 한참을 설득했지만 설득할 여지가 없었다. 아내에게 겨우 양보받은 건,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이혼 전 상담 한 가지뿐이었다. 치사했지만 봄에 이혼 얘기가 나왔을 때, 그때 너도 부부상담 받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자고 하지 않았냐며 나에게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생각해 보더니 아마도 이혼 중 상담이나 이혼 후 상담이 될 것이며, 자신의 마음은 절대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아내와의 대화에서 우리의 결혼생활이 거의 끝났다는 게 느껴졌다. 아내는 이혼서류를 먼저 내밀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미 마음 정리가 다 끝난 것 같았다. 지난 4년간의 결혼생활이 아내에게는 거의 전부 끔찍했던 모양이었다. 요즘 최근의 상황에 대해 많은 상담을 해 주는 후배가 있다. 그 후배는 이런저런 전후 사정을 듣더니 내가 이혼서류를 내밀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이해가 된다고 했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아내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지고, 상황이 좋지 않아지는데 그동안 형은 뭘했냐고... 그렇다. 나는 지난 금쪽같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던 것인가. 지난 4년 내내 왜 아내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냉랭해지는가, 거기에 대한 서운함만 가지면서 살았다. 그 결과 이혼서류를 내밀었던 거다. 아내와 나, 모두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회피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걸 마주치고 대면할 시간이 지난 봄의 부부상담이었다. 그런데 10회라는 짧은 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었다. 더구나 나는 부부상담을 받는 동안에도 내가 결혼생활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부인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아내는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왜 나는 그걸 그때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내와의 대화가 끝나고는 바로 처가로 달려 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만난 많은 사람들이 처가에 가서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하라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밤늦은 시간에 출발해 처가에 도착했다. 추석 이후 처음이었다. 그냥 눈물이 나왔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장모님, 장인어른과 대화를 나눴다. 장모님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이 상황을 알고 계셨고 너무 힘드셔서 식사도 잘 못하셨다고 한다. 장인어른은 이 날, 나의 방문으로 상황을 알게 되셨다. 두 분은 아내가 그동안 내게 서운했던 점, 힘들었던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도. 나는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내가 변할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다시 그 힘든 과정을 해 볼 의지가 생기지 않는 듯했다. 장모님께서 설득해도 아내가 듣지 않는다고.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잘 되었으면 바란다고 기도해 보겠다고 하셨고, 장모님께서는 내가 실제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으면 좋겠다.




요즘처럼 매일매일이 지옥 같이 느껴졌던 적이 없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특히 나는 당분간 회사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많은 시간이 더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제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그나마 영화를 보면 아내와의 현재 상황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극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일텐데 지금 가지고 있는 궤양은 전혀 낫지 않고 악화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심장 통증도 자주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죽을 병은 아니겠지. 차라리 죽을 병이라도 생긴다면 뭔가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생기는 거지 내게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오늘 궤양과 부정맥 모두 병원 예약을 했다. 내시경으로 궤양이 천공이 생기기 전에 발견한 만큼, 어쩌면 운이 좋다면 더 큰 병이 되기 전에 확인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으니. 그러나 뭐 심장을 멈추고 수술할 정도의 큰일이 아닌 다음에야, 약 한 종 더 먹는다고 아내는 눈도 깜짝 안 할 것이다.


어쩌다가 이 상황에 처했나, 하는 후회를 가장 많이 한다. 후회는 분명 좋지 않은 감정이겠지만 후회가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내게는 이 상황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단순히 최근의 이혼서류 사건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부인은 자신의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며 지난 4년간의 힘들었던 결혼생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왜 그 시간 동안 부인의 힘든 점을 살피지 못했던가. 내가 힘든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진작에 부인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부인을 더 살폈다면, 그리고 부인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였다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혹시 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아내 마음이 굳건하지 않고 나에게 다시 기회를 줄 수 있는 여지도 있었겠지. 결국 내가 아내로부터 잃고 만 신뢰로 인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고 만 것이다. 입이 백 개, 아니 만 개여도 할 말이 없다.


막상 이렇게 본질적인 면에 접근하고 보니, 최근의 이혼서류 건이 큰 문제였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다만 트리거였을 뿐이다. 냉철하게 생각해 보면 아내가 했던 '고맙다'는 말의 의미도 되새겨 보게 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살았다면 우리는 그저 하우스메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언젠가는 오늘과 같은 상황에 다시 처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가 한 말대로 차라리 한 달 하루, 아니 일 분 일 초라도 더 빨리 갈라서는 것이 서로에게 더 나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만약 내가 다시 아내로부터 기회를 얻는다면 지금의 경험이 정말 소중할 것 같다. 이번 일을 겪지 못했다면 깨닫지 못하고, 변하지 못했을 부분이 많이 있다. 나는 왜 그동안 항상 내 중심으로만 생각했던가. 아내는 왜 그런지 왜 궁금해 하지 못하고, 아내를 위해 내가 변화할 마음을 갖지 못했던가. 결혼생활이라는 게 내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게 아니다. 아내가 지금 저렇게 분노하고 화를 내는 게 이해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아내는 나를 중심으로 많이 맞춰 주었다.


일요일에 교회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는 이번 일을 통해 내가 많이 배웠을 것이라며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다음 사람에게는 잘하면 된다고 한다. 나는 나에게 이런 교훈과 깨달음을 준 아내에게 보답하고 잘하고 싶은데 그런 기회가 과연 나에게 주어지기는 할까. 이사를 간다면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도 있고, 대화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당장 집을 내놓았고, 벌써 오늘 집을 보고 간 사람도 생겼다. 아내에게 간절히 부탁해서 집이 나가면 바로 이야기해 줄테니 서둘러 집을 구하진 말라고 이야기하긴 했는데, 원래 계약만료일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머지않아 집이 나가기는 할 것이다. 아내가 다른 집을 구하면 사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텐데.


유일하게 하나 기댈 것이 있다면 이혼 전 상담이다.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지자체 가족센터에서 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려고 했는데, 지난주에 만난 형이 웬만하면 교회에서 운영하는 상담을 받으면 정말 학을 뗄 때까지 이혼을 만류한다고 해서 굳이 돈을 내고 교회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시간만 한 번에 1시간 반씩이고 왕복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하면 아내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 주에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5~6시간씩 생기는 셈이다. 그 시간 동안 차분하고 담담하게 내가 달라진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내가 그만큼 마음을 열어 줄지 모르겠다.


아내는 남이 아니라 나의 가족이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고 하지만, 그리고 아마도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 같지만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주어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어려움도 함께하고 이겨 내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내가 정말 어리석었다. 사람은 항상 버스가 지나간 뒤에 깨닫는다. 그렇게 어리석다. 그래도 난 아직 버스가 완전히 출발한 건 아니니, 죽어라 달려 보면 버스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려 한다.


제발, 기적이 발생해서 내가 꼭 그 버스를 붙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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