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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08. 2024

고마운 사람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5

참으로 신기하게도 시간은 흐르긴 흐른다. 4편을 적었을 때만 해도 정말 1초가 10만 년 같이 느껴졌다. 4편을 적었던 날은 시내로 나가 우리 결혼식의 주례 선생님과 점심을 함께한 날이었다. 팔순을 앞둔 선생님과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도 내 온 정신은 아내와의 이혼 문제에만 쏠려 있었다. 나는 왜 그런 큰 실수를 했던가.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선생님께 그 문제를 말씀드린 건 아니었다. 말을 할 수 없기에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연말은 정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정도다. 회사를 쉬고 나서 분명히 매일 일정이 있기는 했다. 어떤 날은 점심에만 어떤 날은 저녁에도. 그런데 정말 하루하루가 천천히 갔고,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와서 약도 받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좀 상태가 괜찮아졌던 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풀었을 때. 돌아보면 대체로 저녁시간은 좀 평안했던 것 같고, 새벽이나 아침이면 거의 우울증 환자 수준이었다. 처방해 준 약마저 소용이 없었다고 하면 말 다했지 싶다.


생각지도 않게 유튜브에 흥미를 들였다. 유튜브에서 우울증 극복 동영상, 이별을 극복하는 법 등을 많이 찾아 보았다. 김창옥 강연도 여럿 들었다. 모든 강연이 핵심만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처음 취미를 붙인 유튜브 시청이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등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역시 가장 도움을 준 건 주위 사람들이고. 지난주를 돌아보면 아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으며 왁자지껄 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래도 뭔가 기쁨과 즐거움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한 건 분명히 그렇게 기분 좋은 상태에서 잠 들었는데, 다음 날 새벽에는 악몽과 함께 식은 땀을 흘리며 깨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새벽과 아침의 우울증은 정말 극복이 안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하는 친구에게 들어봐도 대체로 우울증 환자는 아침을 더 힘들어 한다고 한다.




아마도 티는 났을 것이다. 내가 엄청 힘들고 괴로워 하는 티가. 그래도 아내 앞에서는 최대한 담담하고 태연한 척하려고 노력했다. 대신 수많은 친구들이 나의 끝없는 메시지를 받아주느라 고생했다. 사이가 멀어진 것까진 아니지만 그 바람에 조금 어색해진 경우도 있다. 내가 조금 심했다 싶다. 어느덧 그 사이에 벌써 이혼상담 3회차가 끝났다. 10회차 가운데 3회차가. 이번 주 금요일이면 4회차가 다가온다. 첫 술에 배부를 리 없고 아직 초반임을 감안해야겠지만 별다른 큰 변화는 없다. 다만 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해 주시는 목사님께서 어떻게든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계신 모습이 눈에 보여 죄송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그것이 그 목사님의 일이기도 하지만, 내가 잘했다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상담을 받으러 가는 교회가 서울의 반대쪽 끝이라 졸지에 아내와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럴 때 잘해서 점수 좀 따면 좋으련만. 아직 거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너무 힘들어서 개인 상담도 받고 있다. 구청 가족센터에서 6회기로 이루어진 개인 상담을 지난 화요일부터 시작했고, 보건소 자살예방센터에서도 상담을 받는다. 일주일에 상담만 3시간을 하는 셈이다. 조금 지나치다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상담을 받으며 이야기를 털어 놓고 나면 조금 후련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거기에 멈추지 않고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면 좋을텐데.


지난주엔 아내가 독감에 걸렸었다. 그러면 안 되지만 내심 한 번쯤 아내가 앓았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남편의 효용 가치를 아내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귀신같이 아내가 독감에 걸렸고, 덕분에 그 기간에는 아내에게 점수 좀 땄다. 아마도 지난주에서 이번 주에 이르는 사이에 시간이 좀 빨리 간 것처럼 느껴진다면 아내와 온전히 주말을 함께 보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잠도 따로 자고 밥도 따로 먹었지만, 한 집에 아내가 머물고 있다는 것처럼 내게 안정감을 주는 건 없다. 주말엔 집에 일찍 들어오기도 했고. 생각지도 않게 아내가 금요일엔 출근하면서 "챙겨 줘서 고마워"라는 인사도 했고, 토요일엔 "요즘은 꼭 신혼 때처럼 날 대해 주는 것 같아"라고 말해서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환희는 하루도 가지 못했지만. 아내에게 신혼 타령을 들었던 게 토요일 저녁이었는데, 일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아내가 교회 가는 길에 이혼 서류는 언제 정리할 거냐고 물어와서 할 말을 잃었다. 그 바람에 며칠 끊었던 신경안정제도 다시 먹었다.


다행히 이젠 신경안정제가 효과가 좀 있다. 아마도 지지난주에는 충격이 너무 심해서 아무 효과가 없었던 것 같고,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완전 멘탈이 무너졌지만, 초저녁에 한강가에 가서 길게 산책도 하고 성당에도 다녀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야기 좀 나누자고 했더니, 아내는 지금 이혼상담 받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약속했기에 그건 받아주는 것이라며. 이렇게 얼음장 같은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이제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본다. 그래도 아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서 믿는 구석이 좀 있었다. 지난주엔 내게 "요즘 성경 읽어?"라고 물어보며 읽기 좋은 편도 추천해 주어, 이렇게 조금씩조금씩 가까워지고 스며들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큰 착각이었다. 전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부관계의 회복은 아예 다른 얘기겠지.


새해가 되면서 이 집에서 지낼 수 있는 날이 3개월도 남지 않았다. 이렇게 철통 같은 아내와 과연 다음 집으로 같이 이사 갈 수 있을까. 꼭 이사 가야 하는 건 아니니 한 번 우리가 이사 가 볼 만한 집들을 둘러보자는 말에도 아내는 싸늘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쉽지가 않다. 상담과 마찬가지로 글 쓰는 것도 힘든 기억을 반추하는 셈이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기 시작했다.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시계를 하루이틀 앞으로 돌린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이런 상황을 초래한지가 벌써 어느덧 두 달이 넘었단 얘기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는 것, 다가올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오늘에만 집중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게 일단은 하루살이처럼 오늘 하루만을 살아내려 한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이제 막다른 골목이라 어쩔 수가 없다. 교회의 목사님보다도 아내가 더 의지하는 분이 계신다. 나는 대강 어디께에 사신다는 것만 알고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오늘 그분을 아실 만한 분께 먼저 메일을 띄웠다. 한 번 찾아뵙고 싶다고. 그 뒤에 아내가 의지하는 분을 찾아뵙는다면 될테니.




사람이 너무 힘들면 무속에 의지하게 된다고. 내 경우에도 그렇다. 타로도 보았고, 신점도 보았고, 사주도 보았다. 신기하게 결론이 다 달랐다. 저렴하게 본 타로는 해 보는 데까지 해 보고 결과를 기다려 보라고 한다. 타로에서 이야기했던 시점이 3월이라서 난 기가 막히게 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선배는 5~6개월은 너무 길고, 1~2개월은 짧으니 3개월 정도로 얘기한 것일 거라고 타로쟁이가 말을 잘한다고 했다. 신점은 아내는 오래전부터 이혼을 기다려 왔다며 이미 끝난 인연이라고 했다. 기껏 돈 내고 가서 안 좋은 악담만 한참 듣고 왔다. 다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건 하나도 용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 아는 형이 매년 간다는 사주쟁이가 있어 그곳에도 가 보았다. 무척이나 떨리는 마음으로. 다행히 사주쟁이가 올해에는 아내와 내가 모두 이혼수가 없다고 해서 그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 형이 매년 가서 볼 정도로 용하다는 곳 아닌가. 그래서 한동안 환희에 가득 차 있었는데, 아내의 청천벽력 같은 선 긋기라니. 사주는 사주일 뿐인 건가. 그 형에게 용하다고 내게도 용하란 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까진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다.


회사를 그렇게 싫어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남으니 오히려 더 힘들다. 매일같이 운동을 가고 있긴 하고, 운동을 하다 보면 좀 마음의 힘든 것은 잊혀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집중할 일이 있는 것만은 못하다. 정말 쿠팡 상하차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 싶다. 다들 이제 나이 들어서 몸 상할 것이라며 말리던데. 그나마 몸이 힘들어야 마음이 덜 힘들다. 시간도 많고 여유도 많으니 쓸데없이 생각할 거리만 늘어난다. 지금 이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면 뭔가 단촐하게 사는 것이 답일 듯한데.


맞다. 그렇게 생각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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