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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09. 2024

사람은 결국 뿌린 대로 거둔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6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고 아내의 바람대로 된다면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이제 채 석 달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이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얼마나 전전긍긍했던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말이다. 지난 가을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 치면 모두 다섯 달이 된다. 다섯 달만에 이혼이 된다니. 아내는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만, 8년을 만났고, 그중 7년을 같이 살았는데 다섯 달만의 이별이라니 내게는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 투성이다. 그 가운데 하나만 잘했어도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의 제멋대로였던 행동을 많이 되돌아 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와 다투었을 때는 명절이나 가족행사에도 그냥 각자 가고, 각자 시간을 보내자고 해 버렸었다. 아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아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이었다. 아내가 시가에 오지 않고, 나도 처가에 가지 않으니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주 짧은 생각이었다.


이번에 아내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 곧 장인어른의 생신과 내 생일이 있었다. 재작년 같은 경우엔 처가에 가서 한 끼는 장인어른의 생신을 기념하고, 한 끼는 내 생일을 축하했었는데 올해엔 이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나는 가지 않는 쪽으로 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와서 하는 변명이지만 사실 나는 내심은 가고 싶었다. 처조카가 보고 싶었고,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일단 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낸 마당이었기에 내가 스스로 그걸 거두어 들이는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잠깐의 자존심을 앞세운 결과는 지금과 같다. 더 비참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그때 자존심을 조금만 굽혔다면 괜찮았을텐데. 아마 아내는 그 정도가 자존심이 상할 일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난주엔 새해가 있었고, 다음 주엔 아내 생일이 있다. 아내 생일을 맞아 다시 처가에서 식구들이 모이는데 내가 가고 싶다고 하자 아내는 싫다고 거부한다. 장인어른, 장모님이 불편하지 않으시겠냐며. 아직 서류상으로는 가족인데, 그리고 나는 이제 하루하루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건만 아내는 받아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다. 이미 자신은 나와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 뒤에 다가올 설에도 마찬가지겠지.


진작에 우리가 어떤 다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가족행사에 얼굴을 잘 비추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든다. 진작 그렇게 살았다면 지금 내가 아내의 생일에, 새해에, 설날에 처가에 간다고 이야기를 했더라도 면이 섰을텐데. 그간 아내는 나를 떼어 놓고 혼자 친정으로 몇 차례 가면서 감정이 많이 상했을 터다. 그동안엔 네 멋대로 하고 살았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안 하던 가족 노릇을 하겠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전편에도 썼지만 지난주에 아내가 독감에 걸리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어쩌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내게 좋은 일인 줄 알았던 그 일이 도리어 악재가 되었다. 아내는 흔들리는 마음을 부여잡자고 다음 주에 강릉으로 혼자 3박 4일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단도리질까지 하고 온다면 과연 내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처음 이혼상담을 시작했을 때는 10회면 2달 반에 가까운 시간이니 뭔가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음 주에 아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그 주 주말에 상담을 받으면 벌써 상담도 절반이 끝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몇 차례 거듭 악몽을 꾸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한 번 굳어진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하긴. 아내도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민의 시간을 보냈을까. 결국, 모두가 다 내가 뿌린 씨앗이다. 잘못 뿌린 씨앗을 그렇게 내가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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