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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13. 2024

이별의 어려움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7

아내는 지금 건넌방에서 혼자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고 있다. 주방에 커피도 내려 놓았지만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아마 나와 마주치기 싫어서일 것이다.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어서 그런가? 나는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객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지난달과 비교해 아내가 하루가 다르게 싸늘해지고 있다. 나와의 접촉 면도 줄여가고 있고. 아마도 아내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아내가 이혼을 결심했을 때에도 우리는 메시지도 주고받았고, 집에서 조금씩 대화도 나누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거의 끝나간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도 우리는 그렇게 살갑고 대화가 많은 부부는 아니었으니깐.


평생동안 유튜브를 시청한 시간보다 최근 더 많은 시간을 보고 있다. 대체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이혼, 이별 극복과 관련한 콘텐츠들인데 며칠 전에는 우연히 '정서적 이혼'과 관련한 영상을 보았다. 아마 우리 부부는 진작 거기에 해당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때 위기감을 느끼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직은 부부상담도 받고 있고, 모든 게 끝나진 않았다고 생각하려 하고 있긴 하지만, 아내의 단호하고 철통같은 마음을 돌릴 자신은 솔직히 없다. 그저께 상담을 받는데 상담사 선생님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내와의 관계가 다시 잘 되려고 하고 있다기보다는 나중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쪽인 것 같다고. 어쩌면 그런지도 모른다.




어제는 오랜만에 아내와 아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아침에 부부상담을 갔다가 아내가 시간이 괜찮다고 해서 근처의 식당에서 같이 점심식사를 했다. 이렇게 둘이 같이 외식을 한 게 얼마만이던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가고 오는 차 안에서도 많은 대화를 했다. 거의 평행선이었지만. 나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좀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 줄 수 없는지 부탁했고, 아내는 내게 그런 부탁을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부부상담이 끝나면 그때 이야기해 보기로 결론을 봉합했지만, 아내도 나도 알고 있다. 서로 결론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관계에 있어서 불리한 것은 내 쪽이다. 사람의 마음을 어쩌하겠는가. 아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내가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으니 이혼은 하지 않고 몇 년까지 버틸 수도 있겠지만 파탄난 관계를 돌이키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 후회가 된다. 어차피 상담도 하는데 적절한 적막 속에서 돌아와도 괜찮았을텐데. 아내 앞에서 조바심을 내지 않고 담대하고, 대담한 모습을 보여야 아내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돌아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나마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매일매일 아내를 귀찮게 하며 울며불며 빌지 않는 것,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거나 전화하지 않는 것, 그 정도뿐이다.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워낙 적고 집에 같이 있다고 해도 특별히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의 조바심이 그렇게 티는 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어제도 좀 더 덤덤한 모습으로 가고 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이별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자라면서의 성장과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 시절은 지금과 조금 달랐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전학 한 번 한 적 없는 아이였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불러모았던 건 주로 나였다. 처음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한동안은 무척 우울했다. 오래 사귄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그런 영향을 주었던 셈이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별로 없었고, 카카오톡 같은 건 당연히 없었다. 친했던 친구들과 모이기 위해 이 집 저 집 전화해 가며 어머님께 "누구 좀 바꿔 주세요" 하면서 약속을 조율해 친구들을 모았었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라 더했다. 한동안은 집에서도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 기숙사에 짐을 옮기던 날, 짐만 옮겨 놓고 집으로 가족들과 같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을 혼자 보낼 자신이 없어서 다음 날 미처 챙기지 못한 짐 몇 개를 들고 혼자 서울로 올라왔었다.


그 정도로 나는 이별이 익숙하지 못한 아이였다.


대학에서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던 후배가 군대에 간다고 할 때 무척 서운한 소회를 남겼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 정도로 친한 후배는 아니었지만 공허감이 무척 심했다. 군대에 입대할 때는 정말 한 말이 넘는 눈물을 흘려서 친구들이 나를 두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정도였고, 부대에 배치받고는 아껴주었던 선임이 먼저 부대를 떠날 때, 그리고 2년을 같이 지냈던 후배들이 전역할 때에도 모두 대성통곡을 했다. 혹시 난 조선시대에 남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첫 회사를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만두지 못하고 인연을 이어 갔던 것 또한 이별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요즘은 휴대전화도 일상화되고 하루에 카카오톡으로 수백 개의 메시지를 쓰는 현실인데도 그렇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다른 이혼 동지 분이 영화 한 편을 추천해 주셔서 보았다. 중간까지는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막판에 여자 주인공이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순간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잊고 있었는데 아내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두 달 반 밖에는 남지 않았구나. 갑자기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씩하나씩 사라졌다. 우리는 재산분할이나 뭐 이런 것들을 모두 완벽하게 협의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가져온 대로 가져가기로 이야기를 한 상태다. 거의 모두가 아내의 세간이다. 아마 나는 승용차 한두 대 정도로 이사할 수 있을 만큼 짐이 많지 않을 것이다. 갑자기 텅 빈 집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도 건넌방에서 아내가 자고 있었다. 만약 정말 내가 혼자였다면 그 괴로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약을 많이 줄였었는데 그 바람에 잠들기 전에 신경안정제를 바로 찾아 먹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루에 두 번까진 먹어도 된다고 하셨고, 저녁약도 주셨는데 저녁약은 먹지 않고 있고 웬만해서는 신경안정제만 하루에 한 번 정도 먹는다. 하루에 두 번을 먹은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새벽에 하나 찾아서 먹었으니 24시간 기준으로 하면 무려 세 번이나 먹게 된 것이다. 덕분에 마음은 좀 나아졌다. 그리고 신경안정제보다 더 마음에 안정을 주는 건 그래도 아내가 아직 건넌방에 있다는 것.


나는 2007년 2월을 끝으로 혼자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집에서 몇 달을 대기하다가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나와서는 동생과 6년을 넘게 같이 살다 결혼했다. 한마디로 이제 혼자 살게 된다면 거의 14년만인 셈이다. 물론 그 사이에 이사는 수도 없이 갔다. 지난 14년 동안의 풍경이 떠오른다. 이사를 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이사였고, 더 좋은 집으로 하는 이사였지만 매번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정말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실제로 결혼 전에 동생이 먼저 마지막으로 짐을 빼고 나서는 너무 쓸쓸한 마음에 동생이 옮긴 자취방으로 가서 하루 자고 출근했던 기억도 난다. 아내와 같이 이사하면서도 첫 신혼집을 떠날 때 얼마나 많이 쓸쓸한 마음이 들었던가. 그래도 그때는 함께해 주는 동반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제 부부상담을 하면서 상담사 선생님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나마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시간을 끄는 게 내게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한 달 정도 진행해서 괜찮다고 생각하셨는지 앞으로는 일주일에 개인상담 1회, 통합상담 1회로 2회씩 진행하셔서 설 전에 끝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에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설이라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상담사 선생님의 계획대로라면 불과 3주만 남은 것인데... 선생님께서는 설 전에 잘 마무리하고 설에는 각자 집에 함께 인사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덕담을 건네셨지만 아내의 마음이 얼마나 철통 같은지 잘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다. 아예 모르시는 것 같진 않던데...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아내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낸 게 불과 두 달 전이었다. 많은 콘텐츠들을 찾아보니 대체로 이혼하는데 몇 년씩, 적어도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던데 두 달만에 이렇게 진행될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동안 후회를 좀 줄이려고 노력했었는데 그 생각이 든 다음부터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또 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퇴행하는 건가... 각자 짐을 빼서 이사하는 시간까지 더해도 모두 다섯 달... 8년 가까운 시간의 인생을 함께한 사람인데 이렇게 전광석화 같이 진행된다는 게 너무 놀랍다.


내일 교회에 가면 아마도 목사님께서 보내드린 기도문과 사연에 대해 말씀하실 것 같다. 나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아내가 여행에 다녀온 뒤에 아내의 지인분을 만나기로 했다. 그분에게 아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한인교회 어른의 연락처를 여쭈어 보고 찾아가서 만나드려 봐야지. 이 모든 시도조차 실패한다면 더 이상은 방법이 없어진다. 어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께서 며느리가 문자를 보내도 답장이 없다며 이상해 하신다. '어머니. 이제 어머니의 큰며느리는 없어요...'라고 말씀드리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 내가, 그리고 우리 부모님이 무너지시는 걸 내가 과연 부여잡을 수 있을까.




고작 사물과의 이별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면서 무슨 자신감으로 아내와의 헤어짐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인지... 귀신이라도 씌었던 것인지...


지난날의 나의 어리석음에 오늘도 가슴을 치며 통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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