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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22. 2024

이혼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8

부부상담을 받고 와서


6회차 부부상담의 과제는 [동화 쓰기]였다. 각자 나름대로 [백설공주]를 변형하여 완성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 상담에 아주 솔직하게 임하지는 못했다. 분명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백설공주를 썼다면, 나는 무척 비극적이고 슬픈 사랑 이야기로 마감했을 것이다. 아내가 그런 내 성향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새해 들어 긍정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다짐을 했기에 내 이야기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마무리되었다. 내 이야기에 대한 목사(이자 상담사)님의 분석이 끝나고 아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내의 이야기는 꼭 아내의 다짐을 듣는 것과 같았다. 아내는 벌써 결혼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다음을 이렇게 구상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 그대로 들렸다. 착잡하고 슬펐다. 그러나 의외로 좀 덤덤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지내 온 시간이 벌써 짧지 않다. 이제 나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일 것이다.


예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는데 이 날은 목사(상담사)님께서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고 더욱 적극적으로 설득하셨다. 곁에서 듣고 있는 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본인의 경험까지 섞어 가며. 자치구 가족센터에서 실시하는 가족상담을 받으면 무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용을 내며 교회에서 하는 가족상담을 받은 건, 앞서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아는 형이 교회에서 하는 가족상담을 받으면 정말 적극적으로 이혼을 말린다고, 그야말로 학을 뗄 때까지 말린다고 조언을 해 주었던 덕분이었다. 처음 한두 번은 목사님께서 별 말씀이 없으셔서 '에이, 뭐야~'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지난 한 3회차 정도였나 이후 이 날 또 두 번째로 목사님께서 아주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아내를 설득하셨다. 이혼이 급할 건 없지 않냐고. 나도 무조건 말리기만 하진 않는데, 남편이 아내를 정말 사랑하고 이렇게까지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안타까워서 그런다고. 그러나 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로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끝나고 목사님께 감사와 위로의 문자를 보내드렸더니, 목사님께서 자신도 마음에 상처를 입을 정도였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자기도 이럴 정도인데 나는 어땠겠느냐고 걱정해 주셨다. 상담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분이고 원래 알지도 못했던 분인데, 새삼 참 감사하다. 세상의 모든 인연이 내게는 참 소중하고 귀하다.




저는 제가 대견합니다


주말을 지나며 내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보자고, 다시 한번만 시작해 보자고 이야기를 건넸던 게 12월 4일이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오래되지도 않았다는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그 생각만 하면 급우울해진다. 어찌 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어느덧 벌써 한 달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에는 1초가 10만 년 같았고, 하루가 왜 이렇게 가지 않는지 답답해 했었다. 그런데 그 시간도 쌓이고 보니 꽤 된다. 어느 순간 벌써 한 달 보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물론 그 사이에 별 진전은 없었다. 아내의 화는 조금 누그러들었고, 한때 아내가 독감에 걸리면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회복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도리어 아내의 마음은 점점 더 강철같이 굳어져 가고 있다. 어제 오늘은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진 것 아닌가 하는. 어쩔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찌 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고, 자치구 가족센터에서 내 개인상담을 병행하고 있으며, 보건소에서도 상담을 진행했다. 부부상담까지 하고 있으니 공식적으로 일주일에 상담만 3시간씩 했던 셈이다. 처방받은 약과 상담의 덕분이기도 하고,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시간이 가장 큰 약이 된 부분도 없지 않다. 어쨌든 그렇게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나는 버텼다.


초반엔 이 상황을 초래한 나를 용서할 수가 없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고, 지하도에서 지나가다가 벽과 기둥에 머리를 박으며 자해를 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이 상황을 초래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았다. 시간을 일주일만, 이주일만 앞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런데 점점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내가 일주일, 이주일 앞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이 상황을 자초한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현재다. 지금의 내가 바뀌고 변해야 하고, 그래야 미래와 결과를 바꿀 수 있다. 무언가를 바꿀 수 있겠단 희망은 크게 품지 않고 있다. 아예 0%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좌우간 그래도 잘 버텼다. 그리고 버티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처음만 해도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너무 많은 회고를 하고, 너무 많은 후회와 자책을 하는 모습에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혹시 아내와 다시 잘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본 것이었다. 아내와의 관계 회복은 장기전인데 내가 짧은 시간에 금방 소진될 것 같았나 보다. 실제로도 내 상태가 그랬다. 한 달 반. 어찌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당사자에게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다. 나조차도 내가 지금까지 버티며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잘했다. 장하다. honest.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 오랜만에 나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고 싶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한동안은 정말 많이 계산했다. 이렇게 하면 아내가 좋아할까, 아내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까, 우리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될까. 친구는 40대가 된 내가 아직도 20대 연애하듯 행동한다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래도 그때와 비교하면 나도 많이 참고 있다. 물론 남이 보기엔 부족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아내에게 카톡도, 문자도, 전화도 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어차피 해도 안 볼 것이고. 집에 오면 인사도 하고 말도 건네는 편이며, 가능하면 대화를 더 이어 나가려고 애쓰지만 그것조차도 적정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 적정선이 아내와 나에게는 다르겠지. 그래도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참고 버티고 견디지 않으면 아내를 잡을 수 없단 생각에 끝까지 참고 참고 또 참았다.


그런데 이제 다음 주면 부부상담도 끝난다. 나는 아내의 마음을, 아내도 내 마음을 알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부부상담이 끝나고 거취를 의논하기로 했는데 그게 벌써 한 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앞뒤 잴 상황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에 아내와 가까운 교수님까지 찾아뵈었다. 아내가 이 상황을 말씀드렸는지 아닌지 몰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아니 우리 부부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예 할 수가 없었지만 아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전도사님의 연락처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흔쾌히 알려 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알려 주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세상이 흉흉하니. 본인께서 전도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고 괜찮다고 하면 그때 알려 주시겠다고. 그런데 사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묵묵부답이다. 아마 그 전도사님은 지금 나와 아내의 관계를 알고 계실 것이다. 아내가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던 분도 그 전도사님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왜 만나고 싶어하는지도 다 예상이 되실텐데 피하고 싶으시겠지. 어쩔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무척 아쉬운 마음도 든다. 나는 아내와 가까운 사람들의 연락처도 거의 모르고 살았구나. 진작 뭐했단 말인가.


어제는 교회에 아내와 따로 갔다. 아내가 같이 가는 게 불편하다고 해서. 결국 이렇게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들이는 시간은 2~3시간이고 그래도 마지막까진 최선을 다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혼자라도 다녀왔다. 기도문을 드렸던 목사님께서 아내는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물으셨고, 이젠 아내가 교회를 같이 오는 것도 꺼린다고 말씀드렸다. 이번엔 목사님께서 아내 이름을 물어오셨다. 예전에 내가 아내는 교회를 계속 다녀야 해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다고 했었는데 그냥 말씀드렸다. 혹시 목사님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실 수 있다면 다행이고, 그게 오히려 아내에게 역효과를 불러와 아내가 대노한다 해도 어차피 이혼이다. 이혼이야 뭐 가만히 있어도 이혼이니까.


돌아오는 금요일엔 처남과 함께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아내가 예전에 부모님은 알고 계시지만 처남은 모르고, 처남은 나중에 서류 정리가 다 끝나면 그때나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해서 처남에게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지 무척 망설였다. 그런데 처가 가족 단톡방에서 처남이 말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아내에게 물었더니 이미 처남도 안다고 한다. 덕분에 부담을 좀 덜었다. 처남이 뭐 아내에게 아빠 같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그런 손위처남도 아니고, 남동생인 손아래처남이기 때문에 처남을 만나는 게 아내와의 관계 회복에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고 한다. 뭐든 해 봐야지.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이혼이라면, 뭐라도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가 쉬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정말 바위 같고 강철 같은 사람이다. 그래도 조금의 희망은 품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 그래도 옅었던 희망이 점점 더 옅어지는 느낌이다. 화가 풀리고 감정도 회복될 줄 알았던 아내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아마 아내도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이겠지만, 이제 아내는 나와의 결혼생활 전체를 부정해 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결혼을 너무 경솔하게 했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그래도 처음에 이혼 이야기가 오갔을 때, 처음에만 해도 아내는 자기도 한때는 행복했다며, 다시 또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했었는데. 이젠 그 시간이 모두 어둠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아마 아내도 그래야 자신을 더 지킬 수 있을테지.


내가 아내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조금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도 든다. 목사님 말씀이 맞다. 이혼을 두 달, 석 달 미룬다고 해서 아내와 나의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닐텐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도 될텐데. 물론 아내는 지금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빨리 이혼하고 싶은 거겠지만 그래도 나를 견딜 수 없을 정도여서 당장 집을 나갈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좀 더 심사숙고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심지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말리는데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하긴, 아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 그리고 또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만들었지.


한때는 먹어도 아무런 약효가 없었던 신경안정제가 이제는 내게 꽤 독하게 받아들여지는지 먹고 나면 어지럽고 힘들다. 약의 용량을 낮추어야 할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이혼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수용해 가는 과정 중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안심은 오산이다. 갑작스레 훅훅- 감정이 올라올 때면 미친 듯이 힘들어지고, 그렇게 훅훅- 감정이 올라오는 타이밍은 도무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은 그래도 아내가 건넌방을 쓰며 같은 부엌과 같은 화장실, 같은 거실을 쓰면서 나와 함께 지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정말 내가 아내와 분리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그것을 정말로 견뎌낼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붙잡을 수만 있다면 아내를 꼭 붙잡고 싶다. 아니, 아내는 지금도 붙잡혀 있지만 아내의 마음을 꼭 붙잡고 싶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조차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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