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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Jan 30. 2024

하루하루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9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난주는 그래도 썩 마음이 나았던 것 같다. (차마 편안했다고는 쓰지 못하겠다.) 정확히 기억하는데 화요일에는 약도 먹지 않고 버텼다. 물론 목요일에 부모님과 동생네 가족이 모였을 때는 정말 울컥해서 무척 힘들었다. 가족모임에서 아내만 빠진 자리가 된 셈인데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 사정이 사정인 만큼 그 자리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설에는 며느리를 볼 수 있겠냐시는데 다른 사정으로 아마 보기 힘드실 거라고 답했다. 그나마 아직 눈치 채지 못하신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


어제는 선배를 모시고 방송국 녹음을 다녀왔다. 지난번에 녹음을 했는데 방송국에서 녹음 파일을 날려 먹었다고 한다. 뭐, 이런 어처구니 없는 경우를. 출연료를 다시 주는 것도 아니고 만약 내가 그 선배의 상황이었다면 노발대발했을텐데 선배가 그러려니 하고 다시 다녀오겠다고 하셨다. 내가 꼭 같이 가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방송국 녹음을 가지 않으면 동네에서 운동이나 하고 시간을 보내게 될텐데 산술적으로 따져 보니 운동을 한다면 한 시간 정도만 외출하는 셈이지만 방송국을 간다면 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 녹음하는 시간, 오는 데 걸리는 시간, 그리고 선배와 밥 먹고 차 마시고 하는 데 드는 시간을 포함해서 반나절 정도는 적당히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방송국까지 가는 길에 여의도에서 일하는 후배를 만나 점심을 얻어 먹고 갔는데, 집에서 10시 반이 조금 안 되어 나가서 돌아오니 8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루를 잘 때웠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이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며 살고 있다.




차라리 회사를 쉬지 않고 다녔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하는 때가 적지 않다. 이제는 그런 후회를 하기도 뭣한게 오늘을 빼면 평일 기준으로 출근까지 열흘밖에 남지 않는다. 두 달을 넘게 쉰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영부영 어떻게 하다 보니 시간을 다 보냈다. 처음엔 통영에 일주일 정도 다녀올 계획도 있었지만, 제주나 여수 같은 곳에 가서 한 달 살이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했는데 이혼 문제가 불거지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냥 내 계획대로 여수에 가서 한 달 살이를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뭐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켜야 할 더 중요한 게 있었고 거기에 집중해야 했다. 지켜야 할 그 무엇에 더 집중한 결과가 좋았느냐고 한다면 잘 모르겠다. 브런치에 여러 번 올렸지만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일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받기로 한 부부상담도 끝난다. 그리고 집도 나갔다. 두 달 뒤면 이 집을 비워 줘야 하고 새로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한다. 아내도 아마 지금쯤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결심이 쉽게 흔들릴 사람은 아니지만 이제 정말 마지막 통보 혹은 마지막 결심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그것이 마음에 다가와서인지 지난주와 비교해 이번 주가 유독 힘들다. 저녁약은 원래 너무 독한 것 같아서 두어 번 먹고 먹지 않았었는데, 어제는 저녁약도 먹었다. 밤이 늦었어도 전혀 졸음이 몰려오지 않아서 아무래도 스트레스 때문인 듯 싶었다. 다행히 저녁약이 잘 들어서 푹 잘 수 있었다. 아침약은 지난주에 병원에 가서 농도를 절반으로 낮추었는데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듯 싶다. 어제 원래 처방해 주었던 약을 먹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심 때쯤 되니 불안증세가 더 심해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오늘은 절반으로 낮춘 약을 먹었다. 절반으로 낮춘 약을 차라리 자주 먹는 게 더 나을 듯 싶어서.


이렇게 그냥 흘러가고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다행히 그래도 이제는 책은 읽고 있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장기간 쉴 수 있는 기회가 오는 일이 흔치 않은 법인데.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견문을 넓히고 다른 구경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사람으로서 이렇게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정말로 그렇다. 이번 아내와의 이혼 소동을 겪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아내와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참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잃는다면 이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는 정말 이사를 해야 할 때가 임박해서 남는 시간에는 부동산에 올라온 매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아내와 같이 이사할 수 있을까. 내가 혼자 이사해야 할까.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 보아야 한다. 요즘엔 아내에게 제시할 하나의 중재안으로 주말부부는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까지 떠올리고 있다. 아내가 받아들일까.


그래도 지난 금요일에 처남을 만나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처남이 누나와 한 번 터놓고 이야기를 해 보겠다고 해 주며, 헤어질 때는 우리 매형 한 번 안아 보자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길거리에서 대성통곡할 뻔했다. 돌아오는 금요일에 아내는 가장 친한 사람들을 만난다. 아마 그 자리에서 뭔가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고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아내가 의지하는 전도사님은 뵙지 못했다. 아내는 이번 금요일에 만난다던데. 그래도 내가 여러 경로로 꼭 뵙고 싶다고, 우리 가정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했으니 그 마음은 전달받으셨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정말 기적밖에는 기댈 데가 없다. 기적이 일어나길. 그래서 아내가 마음을 돌릴 수 있길. 더 이상은 해 볼 수 있는 것도 없고, 겸허한 마음으로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에만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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