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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Feb 04. 2024

그렇게,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0

아침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충격이 크지 않았던 건 역시 약기운 덕분인가. 쓸데없는 잡담인데 약효를 느낄 때면 참 허망한 생각이 든다.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사람이란 동물이 이렇게 작은 화학약품에 좌우된다니. 다시 약의 농도를 높였다. 이번 주 들어 불안감이 심해진 까닭이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이었을 것 같은데 아내와 함께 교회에 갔다. 아내가 어제 교회에 같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건 그만큼 내게 선을 긋는 거였겠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아내가 대뜸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은 보통 할 말이 있다는 말은 내가 하는 쪽이었는데, 심장이 덜컥 거렸다. '나 이제 짐 싸서 나가려구. 친정 가 있을 거야. 한 번에 짐은 다 가져가지 못하니깐 가끔씩 들를께. 언제 집이 나갈지도 모르고' 이혼하기로 마음 먹은 상태에서 자신을 끝없이 붙잡고 있는 남자와 같이 지내는 게 아내도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일단은 아내에게 나는 너무 갑작스러우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주일 정도의 말미만 주면 안 되겠느냐고. 그런다고 해서 뭐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차를 타고 교회로 가면서 거의 마지막일 것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단은 아이가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신혼생활이 끝나갈 때쯤엔 아이라도 있어서 새로운 공통의 관심사와 애정을 쏟을 대상이 있어야 했는데 내가 원하지 않는 바람에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이혼을 앞두고 내가 가장 힘든 게 바로 이 부분이다. 모든 것이 다 내 탓 같다. 아내에게 이혼하자고 이야기를 꺼내고, 심지어 서류도 내가 만들었고, 도장까지 찍어서 주었으니 뭔가 그 당시엔 나도 아내에게 서운한 게 많이 쌓여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이게 무슨 부부야' 하는 생각을. 평일엔 같이 밥 먹는 일이 거의 아예 없었고, 주말이라고 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같이 밥을 먹을까 말까 했다. 물론 가족행사가 있거나 하면 그럴 때는 함께 가곤 했지만. 그런데 늦었지만 돌아보게 된다. 아이가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물론 아이가 없어도 잘 사는 부부도 있고, 아이가 있음에도 이혼하는 부부도 있다. 가정은 의미가 없다. 아내와 내가 결국 이혼하게 될 것이었다면 차라리 아이가 없어서 다행일 수도 있다. (아내가 이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있었다면 정말 많이 다르지 않았을지.


내가 외롭고 힘들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만 했었다. 아내는 왜 이렇게 나에게 관심이 없는지 서운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호르몬의 효과라고 신혼 이후에 아내는 내게 이미 사랑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걸 되살리려고 어떤 노력을 했던가. 그냥 변해 가는 아내를 보면서 서운하다는 생각만 쌓여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내는 가정을 지키려는 책임감은 있었고, 그래서 아내가 내게 먼저 이혼 이야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혼 전에 내가 꿈꾸었던 가정은 늘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었다. 떨어져 있으면 서로를 그리워하고, 항상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그런 가정. 신혼 초에 3년 정도는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그 당시엔 아내를 지금만큼 사랑하진 않았다. '이렇게 결혼해서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적잖이 했었다. 그런 생각이 잦아든 건 겨우 지난 여름쯤부터다. 아마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면서 아내에게 서운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고, 그것이 이혼 이야기로 결부되지 않았나 싶다. 차라리 그때 차분하게 부부상담을 받자고 이야기해 보거나 진지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들이밀고 말았다.


처음엔 이혼 이야기로 시작해서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서류까지 들이밀었고 거기에서도 아내가 물러서지 않는 모습에 결국엔 도장까지 찍고 말았다.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그 선을 넘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본인이 져야 한다. 나는 바로 그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 것이다. 아내는 내가 도장 찍은 것을 보고도 열흘 이상 심사숙고했다. 그 기간도 문제였다. 생각보다 시간이 흘러도 아내에게 별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내심 아내가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을 일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천하태평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혼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서 아내도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은 것을 본 뒤로는 모든 게 뒤바뀌었다.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뒤로 두 달이 흘렀다. 살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애쓴 적이 있었던가. 아내도 이야기했다. 나의 진심과 얼마나 절실한지는 알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변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변한 아내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내가 이혼 서류를 내밀기 전에 이렇게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랬다면 우리는 나름대로 아름답고 화목한 부부로 지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내는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하면서 그동안 자신은 계속해서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가 그 신호를 외면하고 희망사항에만 빠져 있었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 아내는 계속해서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그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여야겠지. 지난 두 달간 이혼을 앞두고 있단 생각에 몸이며 마음이며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태어나서 신경안정제라는 걸, 항우울제라는 걸 먹어 보기도 처음이었고, 지하철역사를 걸으면서 기둥에 혼자 머리를 찧어 보는 경험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름대로 조금씩 정신을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새해가 되면서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채워 보려고도 했다. 조금씩 해도 길어지고 있었고, 그렇게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가져야 아내의 마음도 돌이킬 수 있지 않나 싶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그렇게 모든 신경과 정신을 아내에게만 집중하면서 버텼다.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상했겠지만 나름대로 그 시간을 견뎌 낸 나를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그러나 아직 더 힘든 시간이 남았다. 아내와 정말 이별해야 하는 시간. 그리 친하지 않았던 후배와의 이별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나다. 돌이켜 보면 몇 안 되는 연인과의 이별 때도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그러나 그중에 아내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아내는 가족이지 않은가. 집안 앨범 어디를 들여다 보아도 아내가 나온다. 과연 정말 내가 이 상처를 극복하고 이겨 내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회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그래서 후회를 하지 않아야 한다. 가장 걱정되는 건 내가 후회와 자책에 빠져 스스로 내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오늘만 못한 삶을 살게 된다면 역시 나는 또 오늘을 후회하며 자책하겠지. 도돌이표처럼 그게 영원히 이어진다면 최악이다. 지금 어느 정도 후회하고 자책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다행히 2월 16일부터는 회사에 나간다. 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주의를 분산하는 계기는 것이다. 가끔씩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이고.


마지막으로 헛된 희망도 한 번 품어본다. 오늘 마지막 부부상담도 남았고, 다가오는 설 명절엔 처가 식구들이 총출동해서 아내를 설득해 보려고 준비 중이다. 나는 아내가 얼마나 쇠고집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큰 효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마저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냉철한 현실을 깨닫는 게 우선이겠지.


용하다는 사주집에서 올해 나는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나를 경계하는 말을 했었다. 입춘 정도가 되면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하는 마음이 들 수 있다며, 나 스스로나 경계하라고. 그냥 사주풀이지만 내심 거기에 엄청나게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입춘이 되었고, 나는 아내가 집을 나가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주풀이에 무슨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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