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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Feb 16. 2024

아내와의 마지막 만찬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3

어제는 하루종일 울적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려 하늘이 흐렸고 특별한 일정도 없었다. 오늘부터 회사에 복귀해야 하는 터라 차분하게 준비를 해야 하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오후에는 운동을 갔다가 집을 보러 갔다. 지난 7년간 두 번은 아내와 함께 신나서 집을 보러 갔다면 이제는 내가 혼자 살아야 할 집을 구하러 다니자니 적적하고 쓸쓸하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냥 혼자 살 집을 구하는 것이면 모르겠는데, 이혼해서 들어갈 집이라니. 어디에다가 대놓고 말을 할 수도 없고 마음이 참 좋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엔 아내와의 마지막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다.




부부상담을 받는 동안에는 그래도 부부 같은 모양새로 살았던 건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저녁을 같이 먹었던 것 같다. 대체로 부부상담이 끝나는 시간 때문에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닭을 시켜서 같이 나눠 먹기도 하고, 피자를 시켜 먹기도 하고, 마지막엔 아내가 햄버거를 사 주었었다. 그렇게 지난주에 부부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면서 내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저녁 한 번 먹자고 제안했다. 원래는 발렌타인데이였는데 아마도 아내는 내 말을 그렇게 귀담아 듣진 않았던 것 같고, 약속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목요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발렌타인데이여서 같이 먹자고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뭐 크게 상관은 없었다.


집 근처에 전망이 좋은 근사한 식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된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아내와 같이 가 두려고 보아 두었던 곳이었다. 올해 아내 생일쯤 같이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할 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 그래도 결국에 어떻게 아내와 함께 오게 되기는 했다. 식당 링크를 보내줬더니 아내는 '이렇게 좋은 곳을 가자고?' 놀란 반응이었다. 식당에서 원래 네 생일에 같이 오려고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좋은 데가 있으면 바로바로 갔어야지' 하고 답한다. 다음부턴 그러라면서. 아내가 말하는 그 '다음'이라는 단어가 내게는 정말 비수처럼 박힌다. 아내가 말하는 '다음'은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어차피 이제 결론이 다 난 마당이다. 물론 처음부터 아내 마음은 확고했고 돌아설 여지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아주 미약한 희망이라도 바라보고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그 희망이 터널 저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처남은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뭐라고 못하실 정도로 아내의 결심이 굳건한데 희망은 무슨. 그래서 나는 조용히 담담하게 그냥 밥만 먹고 와야겠다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러고 보니 그랬던 덕분에 어제는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아내는 결혼 전의 자신의 삶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 아내는 결혼 전과 그리고 신혼 때와 지금이 많이 달라졌다. 확실히 결혼 전이나 신혼 때와 비교하면 많이 어두워졌다. 나도 거기에 지친 것도 있고. 아마도 아내는 나의 부정적 에너지와 어두움 때문에 본인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발랄하고 활기 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겠지. 나도 그때의 아내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립다.


내 생각과 다르게 아내는 우리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34살에 만나서 35살에 결혼했다. 심지어 아내는 빠른 생일이라 어찌 보면 나보다 1살 연상이라고 칠 수도 있다. 신혼 초에 아내는 아직 결혼하지 못한 친구들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결혼해서 너무 다행이야~' 같은 표현을 많이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도 참 행복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신혼 생활은 사랑이 넘쳐서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내는 새로운 도전,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고 처음 해 보는 결혼생활이 신기하고 색달랐던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처음 해 보는 결혼생활, 처음 가져 보는 시댁, 처음 가져 보는 남편. 그리고 자기 가정이 생겼다는 안정감도 아내에게는 큰 역할을 했다. 그게 한 3년 정도는 유지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와서 하는 이야기로 그때에도 자신은 내게 신뢰를 가지지 못했고 모든 이야기를 편하게 하지 못했다고 말해 주었다. 아마 이혼 쪽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좀 더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도 있겠지. 그렇지만 꼭 틀린 말만은 아니다. 나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게 늘 불만이었다. 아내는 뭔가 마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그게 신혼 초 3년이 지나 권태기가 찾아오면서 아내의 겉으로도 드러났고 거기에서 폭발하면서 나는 아내에게 처음으로 이혼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게 벌써 거의 4년 전의 일이다.


이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때만 해도 아내도 처음 듣는 이혼 이야기에 당황했고 우리는 여차저차 봉합해 가며 3년을 더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아내는 점점 생기를 잃어 갔고,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나 또한 지쳐 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리석었다. 아내가 생기를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구나. 그때는 그것이 참 불만스럽기만 했는데 왜 아내가 생기를 잃어 가고 있는지,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아내의 입을 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미처 노력해 볼 생각을 못했다. 그냥 나 또한 마음속 한켠에 불만만 계속 쌓여 갔다. 그게 우리의 최대 문제였다. 아내는 아내대로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계속 쌓아 두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게 지난 봄과 늦가을 두 차례의 이혼 소동으로 터져 버린 것이었다.


때가 맞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는 나름대로 각자 최선을 다했다. 아내는 지난 봄에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관계를 회복해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늦었지만 나는 이번 겨울에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아내에게 터뜨렸던 이혼 소동은 엄포에 가까웠던 반면, 아내는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늦가을의 이혼 이야기도 내가 먼저 꺼내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었다. 아내는 지쳐 있었고 내 엄포에 놀라서 나를 붙잡을 마음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수년간 서로에게 쌓여 있는 게 많았고 그것들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에 내가 뿌린 엄포는 아내에게는 결심으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상담을 받고 하다 보면 인성검사도 여러 차례 하게 되는데 그 흔한 MBTI말고도 여러 유형의 인성검사를 해 본다. 봄 상담 때 아내가 놀랐던 점은 내가 관계중심적이라는 것이었고 아마 그것이 아내가 이혼을 망설이게 되었던 하나의 이유도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부부관계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텐데 의외로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도 여러 가지 검사를 했고 애착유형 검사도 아내에게 부탁해서 했는데, 우리 둘 다 불안정애착형이었는데 내 예상대로 아내는 회피형이 나왔다. 나는 자기부정-타인긍정형이었고, 아내는 자기긍정-타인부정형이었다. 얼마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나오던데 아내는 아마 내가 다가갈수록 더 멀어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안정형이 되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아내는 문제를 회피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문제가 계속 쌓여 결국 오늘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우리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나 너는 문제를 피하고 싶은 것 아니냐고.


WPI 검사도 같이 해 보았는데 우리는 참 맞지 않았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WPI 검사 결과를 보면서 내가 결혼생활이 더 힘들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해 주셨었다. 아내는 이상주의자 점수가 높게 나왔다. 처음에 본인이 생각했던 결혼생활과 많이 차이 나는 결혼생활에 아내는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실은 나 또한 그런 점이 적지 않았다. 나도 모든 것이 다 잘 맞는 그런 영혼의 단짝을 꿈꾸었고 우리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외국생활도 한 번 해 본 적 없는 순수 토종 한국인이다.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실은 지난 여름쯤부터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부부관계라는 생각도 적잖게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는 아니었다. 아내는 여전히 완벽한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 있는 부부관계를 꿈꾸고 있고, 그것이 나와의 결혼생활에서는 아내에게 큰 좌절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여전히 너무 힘들고 괴롭다. 차라리 창문을 열고 뛰어내려서 죽는다면 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 두 달여만에 출근하면서 맑은 날씨를 접하며 '다시 희망을 가져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밖을 나왔지만 전철을 타고 오는 와중에 '만약 아내가 혼자 이삿짐을 빼서 나간다면 그날 난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다시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신경안정제는 원래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한 번씩 먹어야 하는데 요즘 나는 거의 오전에만 두 번을 먹고 있다. 그렇게 먹어도 효과가 크지 않다.


여전히 나는 아내를 붙잡고 싶고, 우리는 다시 잘해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많이 늦었겠지. '회자정리'라고 여기까지가 아내와의 인연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아내와 같은 집에서 몇 번의 밤을 더 보내겠고(각방으로), 몇 차례 더 만날 것이며, 아마 나는 몇 차례의 오열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아내가 원하는 길이다. 이제 와서 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정말 힘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아내에게 이혼 못해 준다고 강하게 나갔어야 했는데. 특별한 유책사유가 없어서 결국 아내도 이혼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아내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이켜 보는 쪽으로 애써 보려 했던 것 같다. 그때도 확률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왜 나는 더 강하게 나가지 못했던가. 물론 한편으로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해서 마음이 다 떠난 아내의 껍데기만 붙잡고 사는 삶은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하다.


아내도 좋기만 하진 않다고 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면서 의외로 담담히 앉아 있었던 내 앞에서 아내가 눈물을 다 보였다. '잘 살아'라고 하면서. 물론 아내는 또 금세 감정을 잘 추스르고 우리는 같이 밝은 얼굴로 집에 돌아와 다시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내는 아직은 같은 집에 살아서 그런지 실감은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분리하는 과정이 끝나고 별거가 시작되어야 그때 이혼이 실감날 것 같단다. 그러려나. 나는 이미 지난 두 달 넘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시뮬레이션을 해 보아서 지옥에서의 두 달을 보냈었는데,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아침에 아내가 이삿짐을 혼자 뺀다는 상상을 하니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뭔가 또 바닥을 치고 다시 차차 나아지는 삶을 살 수도 있겠지.




항상 천국이 있다면 헤어짐이 없는 곳일 거란 꿈을 꾸며 살아 왔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성당에 가서도 새해 소망으로 '원하지 않는 헤어짐이 없는 한 해가 되도록 해 주세요'라고 적었었다. 살면서 숱한 이별을 겪었지만 그 어떤 이별도 영원한 이별인 것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 다음에야. 물론 아내가 세상을 떠난 것보단 훨씬 낫지만, 이혼은 그간 내가 겪었던 다른 이별들과는 다르게 영원한 이별이다. 아내는 나와의 완벽하고, 완전한, 영원한 분리를 꿈꾸고 있다. 나와의 결혼생활이 아내에게 그렇게까지 끔찍한 일로 기억된다고 생각하면 여기에서 또 다시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그제 만난 형의 친형이 지난해 이혼을 경험하셨던 까닭에 간접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 경우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과거를 반추하고 회상하며 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지금의 이 상처가 얼마나 오래갈지, 이걸 내가 과연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어제 아내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모든 시간은 약이라고 언젠간 이 상처가 옅어지고 흐려지는 날도 올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보낸 8년이라는 시간. 내 인생의 1/5을 함께한 사람이었는데 이게 흐려지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까. 그제 만난 형은 1년 정도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마 나는 10년이 지나도 아내와의 어느 순간은 추억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당장 앞으로 휴가를 어떻게 떠나야 할지 모르겠다. 인천공항에 관한 한 내 기억은 아내와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제주도도 아내와 적지 않게 함께 떠났고. 당분간은 혼자서 외국여행이든 제주도든 떠나는 건 자제하는 수밖에 없지 싶다.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그저 살아만이라도 있을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호기롭게 이혼을 주장하며 아내에게 서류를 들이대었던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혐오하며, 증오한다.


오늘 하루도 참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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