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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Feb 19. 2024

아내의 눈물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4

우리 부부에게는 다른 부부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 처음 이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랬는데, 대화를 하고 있고, 생활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이 점 때문에 내가 이혼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은 아내와 다투고 한 집에서 여섯 달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적도 있는데, 대화를 하고 지낸다면 충분히 괜찮아 보인다며. 그 외에도 아내는 내가 사 두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지냈다. 그런 점들을 보면서 나도 조금씩 안도하기도, 아니 매우 일희일비하기도 했던 것 같다.


부부상담이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지만) 아내의 결론이 확실해진 뒤로 오히려 예전보다 아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무래도 분리를 준비해야 해서 그런 것도 있고, 지난주처럼 따로 그렇게 식사 자리를 마련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는 각자가 살 집을 구했다. 원래대로였다면 그 반값에 우리 모두 더 나은 집에 살 수 있었을텐데 분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셈이다. 나는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실은 토요일에 몰래 가계약을 체결했고, 아내도 토요일에 가계약을 체결하고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또 어제도 집에서 긴 대화를 나누었다.




부부상담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아내는 내가 오열할까봐 무척 걱정했다. 마지막 저녁식사를 먹으러 가서 내가 괜히 대성통곡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지우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 약기운(?) 덕분인지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아내가 저녁을 먹으면서 내게 '잘 살아'라고 하면서 눈물을 보여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그런 모습에서 일말의 희망도 가졌던 것 같다. 어쩌면 아내가 집을 구하고, 현실에 부딪치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그런 나의 기대는 아내가 혼자 집을 구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목요일에 저녁을 먹으면서 집을 구하는 문제에 대해 몇 가지를 조언해 주었고, 아내는 금요일에 올라온 매물을 토요일에 가서 보더니 바로 계약했다고 했다. 보는 순간 그냥 딱 '이 집이다'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알아본 것일까. 뭐, 부동산을 통해 했을테니 큰 문제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내가 혼자 집을 구하는 건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내심 나는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과 함께 구했으면 싶었다.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니 장인어른, 장모님과는 상의하지 않고 혼자 그냥 정한 집 같다. 우리가 처음 살았던 신혼집과 비슷한 구조에 비슷한 사이즈의 집이라고 한다. 아내는 나름대로 집을 어떻게 꾸밀지도 정한 듯 싶었다.


집까지 계약하고 나니 아내도 이제는 정말 이혼이 실감난다고 하면서 다시 또 눈물을 보였다. 그제 너무 많은 약을 먹어서 어제는 약을 좀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던 터라 어제는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도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티는 낼 수 없었고.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수면 성분이 있는 항우울제 덕분에 보통 5시 정도까지는 그래도 잘 잤는데, 어제는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2시에 깨고 말았다. 약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5시쯤 깨면 항상 아침약을 먹었는데, 그 바람에 오늘은 2시에 아침약을 먹고 아침에는 점심약을 먹고 출근한 셈이 된다.




브런치에 글을 썼는지 쓰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신경안정제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기억력 감퇴다.) 얼마전에 집에서 혼자 아내와의 결혼 앨범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이런 결과가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저렇게 함께 웃고 서로 기뻐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어쩌다 웃음을 잃어버리고 이런 결론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아내의 부족함도 있었을 것이고, 나도 많이 부족했을 것이다. 특히 내가 많이 부족했다. 같이 살면서 '이혼'이라는 것을 처음 입에 올린 것도 나였고, 결국 이번 이혼문제도 내가 '이혼'을 입에 올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서류까지 내밀면서 벌어진 일이다. 아마 내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다면 깨닫지 못했을 일 또한 많다. 아마도 아내는 그 점에서 이혼을 결심한 것이리라. 우리 부부가 대화가 즐겁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부부가 아니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즐거운 취미를 공유하고 있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종교 또한 같지 않아서 신혼 초 3년은 내가 일요일마다 아내와 같이 교회에 나가 주었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그 또한 같이하지 않았고. 이제 와서 내가 아내에게 교회에도 같이 나가겠다, 세례도 받겠다, 교회 단체에서 활동도 시도해 보겠다, 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마 아내도 나의 진심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정말 아내가 믿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나온 일은 아님을.


부부상담과 갈등을 겪으면서 우리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어떻게 해야 그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으며,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깨우치기는 했지만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 늦었다는 데에 있다. 이혼 이야기가, 그리고 이혼 서류가 오가기 전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결과론이지 않을까. 막상 이혼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다면, 아내도 나도 서로 어떤 위기의식을 가지고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음먹었을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아내의 눈물을 보면서 서로에게 미련과 정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성과 합리에 의해 헤어진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 되새겨 보게 된다. 이래서 이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해야 한단 말이 있었구나. 우리는 아직 서로와 함께 지내는 것을 못 견딜 정도로 미워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상태에서 헤어지려고 하니 가슴이 더욱 찢어지는 것 같다. 처음엔 아내가 너무 냉정해 보여서 그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는데, 막상 아내가 눈물 흘리며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그것 또한 견디지 못하겠다. 아내도 저렇게 아직 정이 남아 있는데, 도대체 나는 얼마나 부족했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나와 결별하겠다고 결심하게끔 만든 것이란 말인가. 자책하고 후회하지 말아야지, 하고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다짐하지만 그런 다짐은 이렇게 이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아내는 나보다 하루 앞서 이사하기로 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 집을 치우고 정리하는 사람이 아내가 아닌 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결국에 남겨지는 사람은 또 나겠구나, 그때 과연 내가 정말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적지 않다. 죽을 정도로 싫고 미운 사람이라고 해도 실제로 이사하는 날만은 정말 힘들다던데,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이사 가는 아내를 보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들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다.


과연 내가 그날을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도대체 나는 무슨 사고를 친 것이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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