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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Feb 23. 2024

바쁘다, 바빠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5

태어나서 출근을 기다려 보긴 처음이었다. 정말이다. 나는 첫 취업도 매우 쉽게 했다. 군대에 있을 때 시험 삼아 한 번 원서를 내 본다고 생각했던 회사에 덜컥 합격했다. 대기업이었고 그렇게 나쁘지 않은 회사였다. 이미지도 적당했던 것 같다. 물론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해 본 적은 없어서 잘은 몰랐지만. 업종 자체도 고연봉인 업종이어서 대학원에 돌아가기 전까지 1, 2년 정도 다녀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 바람에 전역도 하기 전에 취업이 되어 금요일에 군대에서 신고를 하고, 주말을 보낸 뒤에 바로 월요일에 첫 출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취업에라도 조마조마했다면 출근을 기다려 본 경험이 있었을텐데, 그때 난 아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출근한단 생각에 도리어 조금 서운했던 것 같다. (심지어 군대에서 쓸 수 있는 말년휴가도 모두 회사 신입사원 연수 참가로 반납했다.)


그랬던 내가, 그렇게 다니고 싶지 않아 하는 지금의 회사에, 지난 금요일의 복귀만은 정말 기다려졌다.




공교롭게도 본격적인 아내와의 이혼문제는 회사를 쉬기 시작하자마자 터졌다. 아니, 어쩌면 그 전에 터졌는데 나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처음에 아내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내고 시간이 흘러 아내에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서로 사과하는 상황까지 상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지금처럼 냉정하게 '아니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어'라고 할 것이라는 경우의 수는 단 한 번도 머리에 그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를 쉬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아내와의 다툼은 적당한 선에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었고, 오히려 나는 이번 쉬는 기간에 한 달 살이는 어디에서 하면 좋을지 팔자 좋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회사를 쉬기 일주일 전이었다.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고 잘 해 보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다행히 한 번 더 생각해 달라는 내 부탁까지 거절하진 않았지만 그 바람에 회사를 쉬기 전까지 일주일 동안 상당히 멘붕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게 고작 두어 달 전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그럼에도 그때까지만 해도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내 성의가 부족해서 그렇지 아내에게 진심으로 설득하고 잘 이야기하면 아내가 당연히 마음을 돌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회사를 쉬기 시작하고 불과 일주일만에 나는 아내에게 거의 완벽한 이혼 통보를 받고 말았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회사를 쉬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상황에서 두 달이나 회사를 쉴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너무나 기뻤고 여러 가지 계획들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엔 뭐하지. 어딜 가면 좋을까. 누구를 만나야 할까. 그런 행복한 상상들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이혼 통보에 나는 무척 당황하고 말았다. (먼저, 이혼을 이야기한 주제에 '아내의 이혼 통보'라는 표현이 불편하신 분들도 있을 줄로 압니다. 브런치는 저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인 만큼, 조금 양해해 주세요.) 처음만 해도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고 여전히 나는 꿈속에 있었다. 혼자 마음 편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점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 머릿속 계획 그대로 실천한다면 결국 내게는 이혼이라는 선택지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것임이 확실해졌다.


그렇게 휴직 기간은 지옥이 되고 말았다.




지난 두 달의 쉬는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가장 많이 한 것은 집에서 아내의 눈치 보기. 저지른 잘못이 있었기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여행도 고작 통영 3박 4일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그조차 아내가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하는 바람에 가게 되었던 거다. 심지어 아내가 출발한 뒤에 출발해서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미리 집에 와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이야기하다가 알았는데 아내는 지금까지도 내가 통영에 다녀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름대로 사람은 많이 만났다. 이제 이 정도 나이가 되면 가정에 충실해야 해 저녁에 만나기 쉽지 않은 친구들도 적지 않고, 아무래도 점심 때 만나면 그들도 편하기 때문에 첫 한 달은 거의 매일 점심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휴일이 더 힘들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때는 신경안정제도 잘 듣지 않을 만큼 힘들 때였다. 아내는 혼자 처가에 갔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나는 이런저런 후회와 회한들로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면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었다. 중간에 성당에 미사는 한 번 갔지만 그조차도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이어서 연휴에는 사흘 내내 정말 지옥 같았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연휴 때도 토요일과 크리스마스이브는 함께 시간을 보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정말 감사할 것 투성이인 인생이다.)


운동도 많이 했다. 만약 지방으로 한 달 살이를 갔더라면 어딘가에 등록해서 한 달 동안 꾸준히 운동을 할 생각이었다. '서울이라고 못할 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필라테스학원에서 낮시간 특별할인을 진행해서 등록했다. 돌이켜 보면 가장 편안했던 시간은 사람 만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상담하는 시간, 병원 가는 시간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잘 먹지 못하는 내 체질 때문에 근손실도 많이 왔지만 그만큼 체중도 많이 줄기는 했다. 결혼생활이 끝나가서 그런가. 몸무게도 총각 시절에 근접해 가고 있다. 절반 정도는 살을 뺀 것이고, 절반은 운동하고 나서 잘 먹었어야 했는데 운동만 하고 먹지 않는 바람에 근육이 줄어든 것이다. 아무만날 사람이 많다고 해도, 매일 점심 약속이 있다고 쳐도 달이면 거의 50회에 이른다. 심지어 중간중간 저녁약속도 있었고, 약속이 번인 날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쉬는 기간이 끝나갈 때쯤엔 약속도 바닥 갔다.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이때는 약은 효과가 있었지만. 무언가 집중할 필요했다. 그렇다 보니 점점 회사로 돌아갈 날이 기다려졌다. 참 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회사를 나가고 싶어 하는 날이 다 오다니.




우리 회사는 작은 회사이고 내가 쉬는 동안 내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 쉬는 시작도 한 달을 늦춰야 했다. 오랜만에 회사에 돌아가 보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책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오히려 나 때문에 시간이 두 달이 지연된 셈이 되었다. 처음부터 관계자와 지연되어도 괜찮은지 상의를 하고 회사를 쉰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바로 있었던 것이 된다. 당장 다음 달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일을 진행하느라고 회사로 돌아가서 이번 주까지는 계속해서 그 일을 했다. 무언가 집중할 일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덕분에 먹는 약도 많이 줄였다. 처음 출근했던 날보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먹는 약의 용량도 줄어든 게 느껴진다. 그래도 큰 이상은 없었다. 물론 약을 줄이면, 평소에 가장 편안하던 저녁에 괜한 불안감이 올라온다. 그래도 저녁에는 아내가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곧 잠을 청하면 되기 때문에 약을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한 번은 근처에 사는 후배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별다른 이야기를 했던 건 아니고 그냥 같이 저녁을 먹자고. 그렇게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그것 자체로 상당한 안정이 된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기만 한 건 아니었다. 특히 점심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오랜만에 회사로 돌아와서 며칠은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기도 하고, 며칠은 원래 내 습관대로 회사 근처 등산과 산책으로 점심시간을 대신했다. 일을 하고 있을 땐 몰랐는데 천천한 걸음으로 산책을 하다 보면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부각되고, 지난 과오와 실수들이 생각나서 점심시간이면 내내 무척 괴로웠다. 정말 오전 내내 힘들지 않았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이 반나절치의 힘듦이 점심시간에 한 번에 몰려왔다. 사람들과 같이 점심을 먹는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에는 가정문제를 이야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있지도 않고, 있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는데 다들 내가 결혼한 것만 알고 있으니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 이야기를 꺼내는데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그냥 점심시간쯤이 약효가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기는 했다. 아침 출근할 때쯤 약을 먹고 출근하는데, 대략 반감기를 생각하면 점심시간이 될 때쯤 약효가 많이 떨어져서 안정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주일 내내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약을 먹었고(점심 때가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그러면 이내 곧 괜찮아지고는 했었다. 어쩌면 약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일 병원에 가면 물어봐야지.




일주일 동안 진행하던 일을 오늘 아침까지 마무리하고 점심엔 출장을 가서 관계자에게 업무를 전달하고 하고 돌아와 오랜만에 자리에서 좀 여유를 가졌더니 바로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 많이 나아진 것 같은 느낌에 오늘 점심에 약 용량을 절반으로 줄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약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정말 집중할 일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직접 경험하면서 체험해 봐야겠지.


그러나 그동안에는 혼자서 멍하게 있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고, 그 생각들은 대부분 자책과 후회, 그리고 지난날에 대한 회한과 감상 같은 것들뿐이었다. 어느 정도의 자책과 어느 정도의 후회, 어느 정도의 감상은 필요하겠지만, 이미 결론이 난 일에 자책과 후회, 감상은 그 어떤 현실도 바꾸지 못한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 한들 하루종일이기야 하겠는가. 그런데 회사에 있다 보니 다행히 고개만 들어도 사람들이 있고(일단 여기에서 내 생명을 지킬 확률이 크게 높아진다.) 급하든 급하지 않든 내게 주어진 과업이 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3월까지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어서, 최소한 회사에 있는 동안은 이혼문제에서 도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간 나는 충분히 직면했으니 어느 정도는 도피해도 괜찮겠지.


지난 화요일은 혼자서 이혼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그동안에는 내내 이혼상담을 받으러 가는 그 일정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매일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했고, 상담을 받고 오면서 무척 후련해 하고 편안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 주엔 달랐다. 이번 주에도 이혼상담을 받으면서 무슨 문제를 이야기해야지 하는 생각은 없지 않았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나니 지쳐서 예전만큼 상담에 충실하고 집중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난 도리어 왜 이게 다행처럼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태연한 척을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몸무게가 많이 빠졌음에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정작 내 마음과 속은 이렇게 타들어간 적이 없을 정도인데. 그래도 다행이다. 별로 티 내고 싶지 않았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회사에 복귀함으로 인해서 변화된 환경이 내게 새로운 자극과 에너지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루 종일 이혼문제만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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