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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03. 2024

어떻게 해야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6

삼일절 연휴를 맞아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다.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이혼문제가 불거진 뒤부터 내게 큰 과제다. 아무 일정도 없이 멍하니 보내는 하루만큼 힘든 시간이 없다. 템플스테이 참가에 많은 고민을 했다. 쉽게 말하면 그렇게 내키지만은 않았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갈까 말까 할 때면 가라'는 말을 따르고 싶었고, 주말에는 아내가 집에서 혼자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양보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2박 3일의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돌아왔다.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떠난 템플스테이였건만, 내내 요동치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너무 힘들었다.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년 봄 아내와 한 차례의 이혼 소동을 겪을 당시에도 템플스테이에 다녀왔었다. 그때는 그래도 사이가 지금 같진 않았고, 어찌 보면 처음 겪는 이혼 위기였기 때문에 절에 머무는 동안 아내에게 '거긴 어때?'라는 안부 연락도 왔었다. 안부를 묻는 카톡을 받고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내심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실제로 아내와 이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는데 상황이 너무 달라져 버렸다. '그때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하는 생각에 요동치는 마음을 다 잡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지난 생일에 제주도로 혼자 떠났던 때도 떠올랐다. 템플스테이를 떠나는 날 아침에 아내가 짐은 잘 챙겼냐고 물어봐 주었고, 잘 쉬다 오라고 하는 말에 뭔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 같다. 그때가 마지막 기회였는데. 난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마음이 요동쳤지만 썰렁한 집에 돌아오고 나니 그래도 템플스테이에 머물렀던 시간이 훨씬 행복했구나 싶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몇 차례 가 본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을 하는 곳에서 벗어나 아침 일찍 일출도 보고, 예불도 드리고,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혼문제에만 집중했던 정신이 조금 분산되었지 싶다. 물론 마음이 힘든 것은 여전했다. 작년 봄에 템플스테이를 떠났을 때와 지금의 상황이 너무 비교되기도 했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때의 기억도 여전히 살아남아 있었다. 그때마다 약을 찾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템플스테이보다는 약이 훨씬 더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미처 몰랐네. 텅 빈 집에 들어오니 이렇게 더 힘들 줄은.




그저께 템플스테이를 떠나는 날 집에 가지고 있던 단주(팔에 하는 짧은 염주)를 챙기는데 아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우리 집에 염주가 있었어?' 아마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 더 만들었을 것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 그런데 알고 보니 집에 염주가 있었다니. 아내와 나는 인연이 다해 헤어지는 것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아마도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서로가 이렇게 맞지 않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을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그렇다. 아내는 하나님(교회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안의 사람이고 나는 천주교 영세자이지만 기본적으로 무신론자에 가깝다. 심지어 아내는 천주교조차 교회에서 보았을 때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인데. 이 정도로 기본적인 가치관이나 생각에서 차이가 많고, 서로 좋아하는 취미나 성향 등도 물과 불처럼 다르다. 어찌 보면 지난 몇 년을 살아온 것도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말이 맞다. 지금 이혼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그렇게 되었을 수 있다. 돌아보면 아내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신혼 초와 다르게. 나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거기에 대한 내 반응은 거의 '도대체 왜 저래?' 하는 것뿐이었다. 가끔 아내에게 이야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고. 지금도 그런 내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다. 그래도 외도나 폭력, 폭언, 경제적 문제 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성격이 잘 맞지 않긴 했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아서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있긴 하겠지만) 그냥 큰 과오만 없다면 계속 같이 사는 것도 답일 것 같은데. 그러나 이상주의 성향인 아내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한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아내와 나의 관계는 이제 모두 끝났다는 것을. 이제 아내는 친정생활을 시작했고,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지난 2월 초부터 친정생활을 하겠다고 했던 것을 내가 부탁해서 복직 때까지로 미루었었는데, 내가 복직을 하자마자 계속 비와 눈이 왔던 까닭에 지난주까지도 아내는 집에서 출퇴근을 했다. 그러다 지난주부터 친정생활을 시작했고 주말은 서울에서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늘부터 해외여행을 가신 까닭에 어제 일찍 친정으로 다시 내려갔다. 돌아오는 주말에 아내가 집으로 올라올지 모르겠다.


이번 이혼문제를 겪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심지어 겪었다고 해도 사람이 바뀌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운가. 아내는 태도는 바뀌어도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교회에서 세례도 받고 아내와 함께 교회 활동도 같이 하겠다고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던 신앙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 없다. 이혼문제가 없었다면 우리는 쇼윈도부부나 룸메이트 같은 생활을 지속했을 것이고, 지금 이 이혼문제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을지는 과연 의문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아내는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할 의지 자체가 없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있다면 서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길텐데, 지금 우리의 관계에서는 그것이 일방향에 그치는 한계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의 좋았던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아니 사찰에 있는 동안에도 내내 그랬다. 한때 아내에게 나에 대한 사랑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을 자랑스러워 하고, 늘 넘치는 사랑을 주고, 밝게 웃고 명랑하던 시절. 그랬던 아내가 변한지는 꽤 되었다. 누가 아내를 변하게 했나. 신도 아닌 내가 사람을 그렇게 변하게 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결국 내가 아내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후회와 자책이 나의 앞날과 미래에, 그리고 또 어쩌면 아내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래도 끊어지지가 않는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약,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억만금을 주고라도 사 먹고 싶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고, 자책하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사람은 변하고 사랑도 변한다. 아내와 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예전에 내게 사랑이 넘치던 아내와 지금의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고, 내가 지금의 아내를 예전의 아내로 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많은 부부와 연인이 만나고 헤어진다. 처음엔 사랑이 넘쳤겠지만 [봄날은 간다]의 대사처럼 결국 어떻게 또 사랑이 변했겠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오늘의 아내와 예전의 아내는 다른 사람이기에 그때를 추억하면서 상황을 왜 이렇게 만들었나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자책하면서 후회하면서 과거를 곱씹으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두 달도 훨씬 넘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머리로는 그렇게 하는 의미가 없고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겨우 약의 힘으로 조금씩 버티고 있다.


아내는 내가 템플스테이에 다녀온 동안 이사 견적까지 받았다. 이제 명목상으로나마 아내와 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나도 걱정되고 아내도 걱정된다. 아내는 굳센 사람이어서 나보다 훨씬 나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막상 이혼이 실감날 때 아내가 괜찮을까. 이기적이지만 더 걱정되는 것은 나다. 아내는 나보다 하루 일찍 짐을 빼겠다고 했는데 아내의 짐이 모두 빠진 휑한 집을 내가 무너지지 않고 지켜볼 수 있을까.


모든 게 내 탓 같다. 모든 걸 돌이키고 싶다. 불가능한 줄은 알지만, 내가 어리석은 줄도 알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과거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이 모든 상황을 내가 자초했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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