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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04. 2024

아내의 홀로서기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7

주차장에 내려가서 당근(중고 거래)을 하고 왔다. 참고로 나는 한 번도 중고 거래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몇 차례 중고 거래의 경험은 모두 아내에게서 비롯된다. 아내의 부탁으로 무엇을 팔기도 하고, 산 사람이 환불을 하는 바람에 나가서 다시 제품을 받고 돈을 돌려준 적도 있다. 최근엔 아내가 집을 비우고 있기에 아내가 정리한 물건 일부를 파는 일을 내가 대신 맡고 있다. 거래가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내에게 짧은 메시지가 온다. '고마워~' 이사 갈 준비를 하며 집에 있는 짐을 정리하는 아내가 내다파는 물건의 심부름을 하는 마음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미묘한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아내는 혼자 유럽에 사는 8년 동안 한국에 3번밖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로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다. 반면 나는 전학 한 번 가 본 적 없어서 작은 헤어짐에도 아쉬움을 느끼고 눈물을 질질 짜는 약한 남자였다. 어쩌면 그런 성향이 우리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럽에서 8년을 살았다고 해도 아내는 한국에서는 한 번도 혼자 살 집을 구해 본 적도 혼자 이사를 해 본 적도 없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부모님의 품안에 있었을 것이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유럽으로 떠났으며,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한동안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가 독립할 때는 아마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에 아내를 만났을 때 얼핏 그렇게 들었던 것 같다. 결혼 전 살던 오피스텔을 어머니와 함께 다니며 보았다고.


어느 집이나 다 그렇듯 아내와 내가 살 집 또한 최종적인 결정은 아내가 내렸다. 이사업체 또한 최종 결정은 아내의 몫이었다. 하지만 또 어느 집이나 다 그렇듯 후보군을 물색하고 순위를 매겨서 아내에게 보여주는 역할은 또 내 몫이었다. 그 동네에 사는 선배와 함께 몇 집을 둘러보고 한 집을 정해서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허락을 맡고 신혼집으로 정했고, 지금 사는 집 또한 동네도 단지도 내가 정했지만 햇볕 드는 것이나 아내의 성향을 감안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살 집은 아내가 정했다.


그렇게 아내는 결정만 내렸다.




아마 아내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혼자서 알아서 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마흔도 넘은 아내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아내에게는 잔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아내에게 독립할 집을 내가 같이 보러 다녀 주겠다고도 했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보러 다닌다고 하는 게 다른 사람 보기에 좀 위험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남자가 같이 다녀야 덜 무시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가격 네고(협상)도 문제였다. 나중에 브런치에 적겠지만 나는 내가 혼자 살 전세를 구하면서 3천만 원을 깎아달라고 주장하면서 버텨서 결국 2천만 원을 깎았다. 여전히 3천만 원은 깎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내가 손해 봤다고 느끼고 있지만, 아내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내는 강단 있게 그렇게 깎아 달란 말을 못했을 것 같은데.


한참 이혼상담을 받으러 다니던 와중에 집을 구하는 문제로 차에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웬만하면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 오피스텔이나 다세대는 너 혼자 살기에는 조금 위험해' 아내는 이런 말에 썩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 주위에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에 사는 잘 살고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괜히 자기마저 꺼려지게 만든다고. 그리고 또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파트보다는 오피스텔이나 다세대가 저렴하니까 말이다. 전세대출을 받으면 문제없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해 주었지만 아내는 집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나도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내가 얼마나 자기 주관이 확고한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아내와 같이 집을 구하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석 달 전에 처가에 가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장인, 장모님께 사정을 할 때, 장모님께서 상당히 이상하게 생각하셨다. 헤어질 사이가 된다면 왜 아내가 살 집을 구하는데 내가 관여하느냐고. 아마도 헤어지는 마당에 내가 아내가 살 집을 알게 되고 속속들이 본다는 게 꺼림직하셨을 거다. 그래서 아내에게 몇 차례 신신당부를 했다. 집을 구할 때 꼭 장인어른이나 장모님과 같이 다니라고. 아내는 아직 한국에서 한 번도 혼자 집을 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아내가 지난달 마지막 만찬 이후 다음 날 집을 알아보고 그다음 날 바로 가계약마저 해 버렸다. 처음으로 본 집에서 '이 집이다'라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내심 마음이 아주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좀 여러 집을 돌아다녔으면 좋았을텐데. 그래도 아내도 나름대로 부동산 어플을 보면서 준비를 해 왔던 것 같았고, 어쨌든 부동산을 끼고 하는 일이니 사기만 안 당했으면 다행이지 싶었다. 마침 아내가 구한 집은 아파트였다. 그렇다면 뭐 오피스텔이나 다세대에 비해서 전세사기를 당할 확률도 별로 없고, 부동산에서 융자금이나 등기도 확인해 주었겠지 싶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오래된 구축 아파트였다. 지하주차장이 없진 않지만 넓진 않아서 아내가 꼭 필요로 하는 요소를 갖추진 못한 셈이 되었지만 아내가 그건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해 주었다. 집은 남향이었고, 수리가 잘 되어 있었다고 했다.


아내는 그 집을 지난 주말 정식 계약을 했고, 이사업체도 알아 보았다.




오전에 아내에게 중고 거래를 부탁받으면서 이사 갈 집 계약은 잘했느냐고 물었더니 '응~'이라고 답장이 왔다. 이사업체도 예전부터 물어보았었는데 어느 한 업체가 가격이 적당해서 계약했다고 한다. 전세로 이사한다는 건 전세대출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니 얼른 전세대출부터 받으라고 말해 주었다. 어느 은행과 어느 은행이 아마 저렴할 거고, 우리는 소득 때문에 정책 대출은 받지 못할 것이었다. 전세 계약을 했기 때문에 전세대출은 바로 신청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고, 확정일자도 바로 신청하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아내가 찾아가면서 잘할 수 있었겠지만, 홀로서야 하는 아내의 전세계약에서부터 이사, 전세대출, 전입까지 신경 쓰고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어색했고 아내가 정말 염려되었다. 아내는 과연 잘해 낼 수 있을지... 사무실에서 아내와 컴퓨터로 메신저를 주고받다 말고는 울음이 터져서 혼자 회의실에 가서 한참을 울었다.


울다 말고 몇몇 친구에게 '아내가 집 구하는 거 전세대출하는 거 이사 알아보는 거 이런 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내가 일일이 코치해 주고 있는데 너무 눈물이 난다'고 하소연했더니, 그걸 내가 왜 신경 쓰냐고 하는 친구도 있고, '도대체 둘이 무슨 관계냐. 왜 이혼하냐. 같이 살지 그냥' 이런 친구도 있고, '너희는 참 특별한 부부야' 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게. 우리는 이혼할 사이지. 그런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냐.


나도 전세대출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자칫 잘못해서 내 전세대출이 먼저 승인이 나는 바람에 아내가 승인이 나지 않게 되면 아내가 곤란해지니까 아내에게 서둘러 전세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난 승인을 받지 못해도 어떻게든 방법이 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내가 혹시 잘 못 살더라도, 너라도 잘 살아. 꼭 잘 살아. 그러라고 보내주는 거니깐...'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데 정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그렇다. 사랑하니깐 보내준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엉터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런 순간을 이야기하는 건가.


이런 행정적인 절차야 인터넷만 찾아봐도 잘 나올 거고 아내가 혼자 해도 어렵지 않게 해 낼 수 있었을 거다. 더 큰 문제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 아내가 내게 내가 약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너무 강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아내는 강해서 잘 버틸 수 있을텐데 지금도 이렇게 울음이 터지고 있는 내가 정말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어쩌면 아내의 홀로서기를 걱정하는 내 마음은, 실은 내 마음이 홀로설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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