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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10. 2024

그래서 이혼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8

아침에 아내와 같이 교회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가지 못했다. 별일 아닌 듯 보이는 이 작은 일에서 나는 우리 사이에 켜켜이 쌓인 배려를 가장한 오해와 단절을 느꼈고, 그렇게 이혼하게 되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지지난주 일요일에도 오전에 별 일정이 없어서 아내와 같이 교회에 다녀오려고 했었다. 이미 아내와의 이혼은 확정되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기도해 주신 목사님께 인사도 하고, 뭐 가서 좋은 말씀 듣고 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그 교회는 아내와 같이 다니려고 내가 찾아낸 교회이기도 하다. 하물며 앞으로 아내와 같이 교회에 갈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교회는 조금 시스템이 특이해서 매월 마지막주에는 예배가 없다. 아, 그렇구나. 잊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엔 템플스테이를 다녀왔고, 이번 주엔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아내와 같이 교회에 다녀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교회는 일요일 오전에 9시와 11시에 예배를 드린다. 아무래도 11시 예배가 메인이기도 하고, 9시는 이른 시간이라 11시에 사람이 훨씬 많다. 그러나 나는 9시 예배를 가려면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9시보다는 11시에 가는 게 더 편한 쪽이다. 반면 아내는 9시 예배를 더 선호한다. 11시에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9시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과 11시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이 다르신데 목사님에 대한 선호 차이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침 오늘 오전에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어제 아내에게 '혹시 내일 교회에 같이 갈까?' 하고 묻고 싶었지만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미리 연락하지 못했다. 저녁에 아내가 집에 들어오면 '그때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는데, 어제는 피티를 받는 날이어서 운동하고 나니 일찍부터 무척 피곤했다. 그런 와중에 아내는 또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온 모양이고. 결국 내가 잠에 들 때가지 아내가 들어오지 않아서 아내에게 물어보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일찍 잠을 청한 덕에 아침엔 일찍 눈이 떠졌다. 미리 준비하면 9시 예배도 같이 갈 수 있을 터였지만 아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미리 준비하진 못했다. 아내는 9시 예배에 갈 생각이었는지 예배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아내가 나온 모습을 보고 '오늘 교회에 같이 갈까? 11시 예배 가도 괜찮아?' 하고 물었더니 아내가 좋다고 했다. 이제는 부부관계는 다 끝난 마당이라는 것을 아내도 알고 있으니 그냥 부담없이 좋다고 한 모양이다.


그런데 아내는 '11시 예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잡해서 그래서 나는 9시 예배를 가는 거야' 하고 이야기했고, 나도 아내에게 '너 편한 대로 해. 부담스러우면 꼭 나와 같이 가지 않아도 돼. 9시나 11시 중에 그냥 너 편한 쪽으로 가' 하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일찍부터 준비를 했다면 9시 예배도 같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 계산을 했을 때 아내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나도 같이 준비를 해서 9시 예배에 늦지 않게 가기에는 조금 빠듯해 보였다. 아내가 자신보다 내가 준비가 늦는 것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임을, 그것 또한 우리가 이혼하는 데 하나의 사유가 되었음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선뜻 9시 예배에 가기 위해 서둘러 준비하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내에게 9시 예배와 11시 예배 가운데 선택권을 넘기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누워 있다 보니 아내가 9시 예배에 맞추어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교회에 다녀온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아내는 내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냥 교회에 가지 않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가 보다. 교회에 다녀온 아내는 '9시 예배 같이 가도 됐는데 왜'라고 말했다. 거기에 나는 '둘이 같이 준비하다 보면 늦어져서 너가 또 짜증낼까 봐'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아내와 나는 나름대로 서로를 무척 배려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내와 같이 교회에 가고 싶었지만 아내의 시간 계획을 침범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믿음도 없는 내가 굳이 억지로 교회에 가게끔 이끌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내가 나름대로 자신을 배려해서 교회에 같이 가겠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지.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가운데, 배려를 가장해 소통을 포기하고 있었고 그렇게 오해가 쌓여 나갔다. 무려 지난 7년 동안을 말이다.


나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어서 친구나 선후배에게 밥 먹자는 약속 잡는 것을 별로 부담없이 하는 편인데 아내에게도 그렇게 편하게 의견을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그러면서 내 의견과 생각도 가감없이 정확하게 이야기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내도 마찬가지다. 나도 아내도 많이 후회하는 것이 우리가 서로를 배려하고 염려한다는 미명하에 많은 소통을 하지 못한 것이다. 아침에 아내가 내게 '9시 예배에 가게 빨리 준비해'라고 했다거나 '그래 그럼. 11시 예배에 같이 가자' 라고 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서 혼자 조용히 교회로 출발한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남편답게 아내에게 '오늘 11시 예배에 같이 가자' 이렇게 결정해서 통보했더라도 괜찮았을텐데. 아내는 그런 모습을 내게 많이 기대했었다. 물론 또 아내는 상당히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어서 내가 모든 걸 결정해서 통보한다면 싫어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럴 때는 또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로를 수정하면 되지 않았을까.


오늘 있었던 일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이지만 우리가 어째서, 어떻게 해서 이혼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선배와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가는 와중에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혼자 이렇게 쌓인 오해들을 되새기며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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