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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Feb 12. 2024

내게는 따뜻했던, 그러나 부모님께는 너무 차가웠을 설날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12

이혼 문제를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한 건 한 달 반쯤은 된 것 같다. 이미 작년 말부터 족히 고민하고 있었단 이야기다. 초반부터 동생에겐 털어놓았지만 부모님께는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부모님께서 아시면 혹시 아내에게 매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면 아내가 더 정 떨어져 할 것 같았고 이 부분에서 결국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내었다. 물론, 부모님이 바보는 아니시니 언젠가는 말씀드려야 할 것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대략 부부상담이 다 끝나고 우리 사이의 결론이 난 다음에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설날이 되는데... 정초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한다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원래 생각했던 디데이는 돌아오는 주말이었다.


명절이라고 집에 내려갔는데 어머니께서 잔뜩 골이 나 계셨다. 아내가 오지 못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미리 말씀드린 터였다. 작년 설날에 설을 하루 앞두고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바람에 나도 작년 설날을 온전히 처가에서 장례를 치르며 보냈었는데, 아무래도 1주기이다 보니 아내는 이번 설에 우리 집에 오기 어렵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려 놓은 터였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머니께서는 오지 않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연락 한 번 없느냐고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셨다. 그렇구나... 그렇게 생각하실 수가 있구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결국 더는 미룰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께서는 낮이라서 집을 비워 두신 상황이었다. 이왕이면 두 분이 같이 계실 때 말씀드리는 게 낫겠지 싶었다. 그때부터는 다시 또 1초가 10만 년 같은 순간의 반복이었다. 몇 시간쯤 기다렸을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부모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며 말씀드렸다. '저, 이제 혼자 살게 됐어요. OO와 서로 갈라서기로 했어요. 이렇게 된 지는 좀 됐는데 정초라서 좀 더 이따가 말씀드리려다가 이제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내심 그동안 부모님께 말씀드릴 때 대성통곡하며 내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무척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덕분도 있을테고, 또 한편으로는 약효가 도움이 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내가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냈고, 이렇게 살 바엔 이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적지 않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신중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왔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아내를 붙잡기 위해 지난 몇 달의 시간 동안 그렇게 애썼던 것이었지만 끝내 나는 아내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넘어야 할 선을 넘었기 때문에. 의외로 부모님께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여 주셨다. 아마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여리고 약한 속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부모님께서 눈물 흘리며 무너지신다면 나는 더욱 크게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부모님께서는 아셨기 때문에 굳건하게 참으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상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이번 연휴는 따뜻했다. 부모님께서는 마흔도 넘은 자식을 어린 자녀 돌보듯 따뜻하게 챙겨 주셨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 내년에 칠순이시다. 요즘 칠순은 예전 칠순 같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장성한 아들을 환갑도 넘은 두 노인이 이렇게 챙겨 주시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찢어질 것 같다. 이혼은 이렇게 큰 문제였구나. 다시 한번 나를 원망하게 된다. 나 스스로도,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까지도 쉽게 극복할 수 없었을 이 문제를 나는 뭐 그리 자신감 있고 호기 넘치게 밀어부쳤던가. 나로서는 그간 몇 번 경험해 보지 못했던 따뜻한 연휴를 보냈지만, 부모님께는 그렇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다. 아내는 우리 집안일에 별 관심도 없었고 냉랭한 편이었어서 명절 때 같이 집에 올 때마다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런 아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또 전혀 다른 문제다. 부모님께는 이제 큰며느리가 없다. 부모님께서는 아내를 참 좋아해 주셨었는데.




이제 나는 다시 혼자 사는 연습을 해야 한다. 혼자 살 집도 구해야 한다. 벌써 십 년도 더 되었지 싶다. 동생과 함께 살면서 이사를 다니고부터는 이사하는 데에 부모님께서 전연 신경을 쓰지 않으셨었다. 형제가 둘 다 서른에 가까웠고, 서른이 넘었으니 당연히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을 일이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지금, 부모님께서는 내가 이사하는 날 한 번 가 봐야겠다고 말씀하신다. 함께 이사하는 집으로 가서 하룻밤 주무시고도 가실 생각인 듯하다. 그런 부모님의 마음씀에 '저 다 컸어요. 이제 제가 다 알아서 해요' 차마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그만큼 많이 무너져 내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부모님께 말씀드리면서 가장 큰 숙제를 하나 해결했다. 한동안은 주말에 부모님댁에서 신세를 많이 질 작정이다. 부모님댁에 내려가 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흘러서 더 힘든 점도 있긴 한데 그래도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백 배 낫다. 마흔이 넘은 자식이 되어 부모님께 위로는 되어 드리지 못할 망정 이렇게 다시 짐이 되다니. 설 명절에 처가에서 총출동해서 마지막으로 아내를 설득해 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실패한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내의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닌데... 그래도 조만간 장인어른과 처남에게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오열하지 않고 멋있게 작별할 수 있을까.


점점 먹는 약의 농도가 높아져 간다. 실은 그렇게 먹는다고 해도 마음의 불안이 쉽게 가시지 않아서 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래도 먹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아침, 점심으로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저녁 때는 버틸 만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내성이 생길까 두렵긴 한데, 당장 지금은 오늘의 내가 사는 게 먼저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께서 적당히 제한해서 처방해 주신 듯하니 믿고 먹어도 괜찮겠지.


돌아오는 금요일부터 다시 회사에 나간다. 살면서 회사에 다시 나갈 날이 기대되어 보기는 또 처음이다. 일상으로 복귀하고 회사에서 늘 주위에서 사람을 접하고, 점심에는 회사 뒤로 등산을 다니고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아침, 저녁으로 지옥철에 시달리다 보면 밤에 잠도 잘 오지 않을까 싶고. 오늘은 아내가 며칠만에 돌아오는 날이다. 그리고 함께 지내는 마지막주이기도 하고. 이제는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인연이었던 것이고, 지난 시간 나도 나름대로 아내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없는 사랑이 생겨나게 할 수는 없는 거겠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며 애쓴다 해도 나 또한 그랬을테니까.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래도 우리는 부부의 연이 있었는데, 조금 더 노력하고 애썼다면 지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다. 어쩌면 나는 평생 지금을 후회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꼭 씩씩하게 잘 이겨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포기하거나 죽지 않고 살아서 이 브런치를 꿋꿋하게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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