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으로서의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차이
이 이야기를 하려면, 어쩌면 아주 오래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15년도 더 전에, 스물다섯의 나이로 늦게 군대에 갔었다. 장교 신분이었기 때문에 1년 늦긴 했지만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인 것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계급사회에서 상층 신분으로 사회에 내던져졌다. 그렇게 던져지기 전에 8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교육을 받긴 했지만, 교육과 실전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처음에 나는 꽤나 순수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험한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는 어렸으니 더했지 싶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하면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최신식(?) 장비를 운용하는 곳이라 부임하기 전부터 부사관(하사, 중사, 상사...)들의 기가 세다는 악명 높은 소문을 듣고 간 상태였다.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경계하는 눈빛 또한 적지 않았고, 그들 가운데에서도 조금 경력이 있었던 상급자들에게 내가 대우받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꼬박꼬박 '~님'을 붙여 가며 호칭하곤 했었는데, 장교 선배들에게 이 부분을 지적받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도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결국 나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센 척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스물여섯, 일곱의 뜨내기가 센 척해 봤자 뭐 달라 보였겠냐만서도 그때는 그랬다.
처음 군대에 들어갔을 때의 나의 모습과 나설 때의 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같은 장교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편이었던 것 같고(나의 자평이다), 계급이 낮은 병사나 하사나 중사 등의 부사관들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지만, 그때도 나의 신념은 강강약약(강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약하게)이어서 고참급 병사들이나 부사관들 중에서도 선임들, 그리고 장교 선배들과는 많이 부딪쳤던 기억이 난다. 한 부사관과 전화로 다투면서 그 상사가 '왜 반말하십니까' 하고 계속 따졌던 장면이 기억 나는 한편으로는, 못된 선배 장교가 자기 집 도배를 하겠다면서 후배 장교들을 모두 불러모았을 때 나는 빼 주어서 서로서로 모른 척 눈 감고 넘어갔던 것도 생각난다.
최근에 힘든 일을 겪는 중에 군대 후임도 몇 차례 만나서 같이 점심을 먹었었는데 그 후배는 나의 이런 모습에 꽤나 놀란 듯했다. 형은 자신이 만난 사람 중에서 꼽는 5대 천재 중에 한 명이라나.(푸하하) 불과 4개월 차이였지만 나는 늘 초임장교들의 대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게 선배 장교들이나 부사관, 병사들과 맞부딪치곤 했으니 어린 시절의 경험이 강하게 부각된 그 후배에게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시절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나도 사회생활 경력이 꽤 쌓였고 이 회사는 만으로만 9년을 넘게 다닌 10년차이다. 생각해 보면 이 회사에서도 처음에는 온화롭고 좋게 좋게 지내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활하다가는 호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2~3년 정도 다닌 뒤부터는 '가만히 있다가는 가마니가 되고, 웃다가는 호구잡힌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과 같은 투사적 이미지로 변했다. 물론 여기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덕분에 잃은 것도 있겠지만 편해진 것도 많다. 당장 이번 달 마지막 목, 금요일에 회사 워크숍이 있는데 나는 못 간다고 해 두었다. 거의 반강제로 참석해야 하는 워크숍이라서 못 간다고 하면 이렇게 저렇게 귀찮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게는 그런 일이 아예 없다. 팀 회식도 열외다. '그렇게 왕따로 지내는 게 뭐가 좋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은근히 그런 내 모습을 부러워하는 직원도 꽤 된다.
그렇게 나는 겉보기엔 얼음나라에서 온 사람처럼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를 쌓아 두었다.
그러나 나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처럼 사실 개인적으로는 감정에 상당히 약한 사람이다. 지지난 목요일에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면담할 때도 선생님께서 '감정에 너무 약하세요'라고 말씀하셨을 때 정말 동감이 갔다. 돌아보면 이번 일뿐만이 아니다. 내 군대 맞후임은 나를 정말 똘똘하고 똑부러지는 선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나는 내 맞선임이 우리 부대를 떠날 때는 물론이고, 그 후임이 전역할 때도 한 말이 넘는 눈물을 흘렸다. 오죽하면 같이 전역하던 다른 맞후임이 내게 '선배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가요'라는 말을 할 정도였을까. 백 가지도 넘는 생각이 교차했던 것 같다. 2년 가까이 같이 생활했던 후배들이 떠나는 것도 서운했지만 다시는 이렇게 일상을 함께할 일은 없을 거란 사실 자체가 내게는 너무나도 섭섭하게 다가왔다. 매일매일 같이 밥을 먹고 부대와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들은 관심사도 같았고 생활반경도 똑같았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긴 하지만 그때와 같은 친밀감은 당연히 있을 수가 없고, 그때 나는 이런 미래가 예측되었기 때문에 그게 너무도 서운했던 것이다.
동아리에서 한 후배는 나를 '아싸왕'이라고 부르는데 '아웃사이더 왕'이란 뜻이다. 그 말은 이제는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아리의 많은 아웃사이더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는 게 신기하다는 뜻인데 내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사람과의 이별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사람들과 끊기지 않고 계속 연락을 이어 가는 셈이다. 그래서 MBA 동문들이 졸업하면서 내게 총무를 부탁할 때도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때는 2년만 할 줄 알았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 전까지 약속이 셀 수 없이 많았던 건 바로 이런 나의 개인적 성향 때문이었다. '사람과 어떻게 헤어진단 말인가' 사람과 이별하고 헤어진다는 게 내게는 가장 울적하고 힘든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늘 생각한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곳일 거라고 말이다.
가족인 동생조차도, 나를 잘 아는 친구조차도 아내와의 헤어짐에 힘들어 하는 나를 보면서 많이 놀라는 모양이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형도 있었다. 나름대로 나도 결혼생활에 힘들어 했고 아내에게 지친 부분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 그들은 나의 사회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손해를 보면서도 부당함에 맞서며 항상 핏대 올려 상급자들에게 부딪쳐 왔던 나의 역사에 대해서. 그러나 사실 나는 그렇게 부당함에 맞서고, 상급자들과 부딪칠 때마다 늘 쫄아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권한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그랬을 뿐이지, 실은 늘 두렵고 무서웠다. 그저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그랬을 뿐이다.
마찬가지다. 지금 나는 약을 먹고 상담을 받으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애쓰고 있지만(브런치는 예외입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내와 나의 관계가 사회적인 관계도 아니고, 아내는 내 개인적인 모습과 성향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며 최근 수년간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던 사람이고 가장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인데, 한 사람이 죽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고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 헤어져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많은 사람들은, 당혹스럽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굳건해 보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렇게 약한 내 모습에 상당히 놀라는 것 같은데 아내와 내가 헤어지는 일이 정의와 불의의 일은 아니지 않는가. 혹시 아내가 불의한 일을 해서 헤어졌다면 어쩌면 그래도 나는 속으로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더라도 겉으로는 의연한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꼭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를 분리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며, 그 분리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대체로 한 가지 모습으로 사는 게 어쩌면 더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오랜시간 노력한 끝에 개인적 자아와 사회인으로서 나의 모습을 다소나마 분리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지금 많이 놀라고 있는 거겠지.
많이, 놀라셨지요? 그런데 실은 이 모습이 저의 원래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만났다고 하더라도 서로간의 생각과 가치가 일치한다면 저는 아마 사회적으로도 당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았을까 싶네요.
오늘도 회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척 새로 들어온 후배들에게 밥을 사 주며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있지만, 나의 가슴속 한켠은 아무도 모른 채 여전히 서랍 안에 있는 약으로부터 위로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