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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24. 2024

꼭, 완성된 인간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어려서부터 내 장래희망은 일관되게 교수였다. 아주 어렸을 때는 학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다른 것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했지만 직업으로서 교수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서른이 넘어서까지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니 무려 20년 넘게 한결같은 장래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나는 내 장래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어찌 보면 실패했고, 어찌 보면 도망쳤다. 늘 마음 한켠엔 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어서 나는 지금도 '강의하는 일'을 가장 하고 싶다. 함께 공부했던 동학들 가운데 이젠 교수가 된 사람이 한 트럭이 되고도 남아서 몇 년 전부터는 가끔씩 특강을 구해 주어서 나가고 있는데 금전적으로는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지만 기쁜 마음으로 한다. 원래부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 작년에는 서울시민대학 강사에도 두 번이나 최종면접까지 올랐다가 탈락했다. 정말 하고 싶었는데 최종 결과를 받아들고 나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서운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친한 친구나 선배, 후배만 교수가 된 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도 교수가 된다. 개중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교수가 될 수가 있어?' 하는 사람도 적잖아 있고, '저런 사람한테 배운다니 학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학문적으로나 가르치는 것은 괜찮겠지만 인성이 완전 파탄난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많은 교수들을 만나게 되는데, 개중에는 정말 훌륭한 분도 계시지만 가끔은 인간 x레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있다. 재미있지만 그럴 때면 꼭 나를 돌아보게 된다.


서른 즈음까지 내 인생은 모두 계획대로 잘 풀렸고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물론 부족하지만 그렇게 쭉 인생을 살아서 젊은 나이에 교수까지 되었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 어떻게 생각을 해도 훌륭한 인성을 갖춘 교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 잘난 맛에, 나 잘난 멋에 사는 교수가 되었을 거고 직원이나 대학원생들을 적잖이 무시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한 번은 스카이 대학의 교수가 된 한 후배에게 내가 아는 다른 교수 욕을 하면서, 분명 나도 똑같이 그런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했더니 그 후배가 나를 위로한다며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아니요. 오빠는 아니었을 거에요. 오빠는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그 정도까진 아니었을 거에요' 그런데 아니다. 의외로 나는 군대에 있을 때도 나보다 나이 많은 부사관들에게도 못할 짓도 많이 했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장교의 자존심을 지키는 짓이라고 생각했기에.




한국학을 전공했기에 한때 한문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고, 실제로도 나는 한자와 한문을 좋아한다. 동양 고전들을 읽으면서 나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 나는 나날이 발전해서 죽기 전에 인격적으로 가장 완성된 인간이 되는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교수가 되지 않은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교수가 되지 못한 것이 인생의 큰 좌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늘 내 뜻대로 삶이 계획대로 펼쳐졌다면 나는 인간적으로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 되었을까. 교수가 되지 못한 덕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게 되었고, 사람으로서도 성숙해질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많은 책을 읽고,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많다. 교수가 되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한편으로는 내 인격의 완성을 위해서는 교수가 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우습지만 그런 생각도 떠올랐다. 정말 하늘은 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구나. 하는. (그래도 교수는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아내와의 이별을 나흘 남겨 두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의 98%는 가정문제로만 가득 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이 상황을 자초한 것에 대해 자책과 후회도 정말 많이 하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기는 한다. 만약 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아내와 헤어지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땠을까. 나는 또 어땠을까.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나이가 마흔둘이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 온실 속에서만 순탄하고 편안하게 살아와서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못한 탓에 실제로 마흔둘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파도타기에 비유하자면 이제 마흔둘이면 다들 6~7미터짜리 파도는 힘들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능숙하게 타는데, 난 42년 동안을 겨우 0.3미터짜리 파도만 타면서 0.5미터짜리 파도만 와도 무서워서 도망치곤 했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이번에 주변 사람들도 많이 경험해 보지 못한 10미터짜리 파도가 내게 닥친 것이다. 난 평생 0.3미터짜리 파도만 타며 살아왔는데.


아내와의 헤어짐을 통해서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내가 많은 것을 깨닫고 성장하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다시 알게 되고,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참으로 배은망덕한 얘기지만 나는 그간 살면서 인간관계로 인해 별로 힘든 적이 없었다. 내가 무려 나이가 마흔둘이나 되는 데도 다들 내 어리광과 푸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사람들이 내 선배나 친구가 아니라 후배라 하여도 말이다. 덕분에 나는 별 갈등 없이,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어린애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었다. 실은 지금도 그렇고. 그런데 아내와의 이별 덕분에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내가 많이 성숙해져 감을 정말 완성된 인간으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평생 유가적으로 완성된 인격을 갖춘 성인군자 같은 모습으로 눈 감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다른 생각도 든다. 꼭 그렇게 성숙하고 어른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철 없는 어린애로 살면 안 되는 것일까. 물론 나이 마흔둘에도 여전히 어린애 같은 내가, 내가 생각하기에도 부끄러운데 환갑, 칠순이 되어서도 그렇다면 정말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데 그럼 좀 어떤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행운 아닐까. 물론 주위에는 민폐가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해 많은 어려움과 상처를 만들어 내고,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야겠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이 든다. 이렇게까지 힘든 것인 줄 알았다면 나는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서 이야기한 군자로 성장하며 완성된 인간으로 눈을 감아야겠다는 생각을 아마 하지 않았을텐데.


하늘은 참 신기하게도 나의 바람을 항상 다 들어주신다. 그렇다면 이젠 좀 그만 힘들게 해 달라는 바람도 들어주시면 어떨까. 이런 충동적인 바람은 들어주지 않으시려나. 이렇게 비로소 나는 요즘에서야 진짜 마흔둘에 가까워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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