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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st Mar 09. 2024

말을 조심한다는 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어제 점심에 아는 선생님을 모시고 밥을 먹는데, 중간에 선생님께서 내 염려를 해 주셨다. 브런치에도 드러나겠지만 그렇게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해서는 잘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며. 최근에 선생님의 제자 중에 한 명이 회사에서 좌천을 겪은 이야기도 곁들이셨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예전에도 그 제자가 언행 문제로 곤란함을 겪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래서 좌천된 것은 아닌가 싶다며. 나는 선생님께 호기롭게 '에이~ 저는 그럴 일은 절대 안 만들죠' 라고 말씀드렸다. 실제로도 내가 막말(?)을 하는 건 주로 나보다 윗사람이거나 연배가 더 높은 경우에 한한다. 세상 모든 관계를 권력관계로 따질 수는 없겠지만, 내가 좀 더 기득권이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을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선생님은 어르신이다. 선생님이라면 어르신이라는 당위 명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년퇴직을 두 번이나 경험하셨고 머지않아 칠순을 앞둔 정말 어르신이란 뜻이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같이 차를 마시는데 여행 유튜버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도 여행을 많이 다니시는 터라 우연히 보게 되시는 듯한데, 부부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유튜버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갑작스레 선생님께서 그런 악담(?)을 하셨다.


"젊은 사람들이 애도 안 낳고 사회에 기여도 안 하고 그렇게 좋은 데 여행이나 다니는 게 지금은 좋아 보이지만,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 사람들 10년 지나면 다 이혼한다고."


(노파심에서 이야기하면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그저 저와의 관계가 편하다 보니 편하게 아무 말씀이나 하신 게 아닐까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저 말씀을 하시는데 속으로 한편으로는 웃기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다. 아내와 같이 선생님 아들의 결혼식에도 갔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아마 나도 이혼하게 되었다는 상황은 꿈에도 상상도 못하셨을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편하게 말씀하신 거겠지. 나도 여기저기 내 사정을 하소연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성향이기도 한데 그래도 말을 해야 할 사람과 상대는 가려가면서 한다. 선생님께는 지금 이런 상황이란 걸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말씀드린 적도 없다. 그렇다 보니 선생님께서도 아마 나는 잘 살고 있는 줄 아시고, 꿈에도 생각 못하시고 저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우리 부부는 그렇게까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유튜브 촬영이나 하면서 세계 여행을 다니는 그런 상황은 되지 못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우리 부부가 아이 없이 산다는 것은 알고 계시며 몇 번이나 그 문제에 대해 지적하신 적도 있었다.(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선생님은 어르신이시니까요.) 비록 세계 여행은 다니지 않았지만 뭔가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결국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도 와 닿았다. 둘이서만 편하게 사는 게 당장은 좋아 보이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갈라서게 된다는.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웃겼다. 이날 만나서 선생님과 점심 먹는 동안 말조심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내가 이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 못하셨기 때문에 아무 이야기나 편하게 하다가 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아, 말조심이란 게 이렇게 어렵구나!'


우리가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내밀한 속사정까지 알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내 딴엔 말을 조심해서 한다고 하고, 주의해서 한다고 하는 데도 선생님께서 내뱉은 말씀과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선생님은 아마 전혀 예상도 못하셨을 것이다. 저 말이 내게 어떻게 다가왔을지에 대해서. 내 상황을 모르시니까. 그 자리에서 나는 그냥 듣고 웃으며 넘겼지만 말을 조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 제목이 기억 나지 않는데, 몇 년 전에 어떤 기자가 쓴 책을 읽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사람이 한 번 겪기도 어려운 건강문제를 그 기자는 여러 번 겪게 되었고,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하게 되는 말이 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언급했었다. 본인도 예전에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었고. 그 기자는 암을 앓았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도 '암'이 들어가는 표현이 얼마나 많던가. 꼭 그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다들 암이라는 병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암 덩어리', '암적인 존재', '그러다 암 걸린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을 겪은,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내뱉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말이 얼마나 비수처럼 박힐지.


아마도 나 또한 이번에 이혼문제를 겪지 않았다면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을 것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이렇게 하나씩하나씩 배우면서 또 성장해 나간다. 나는 충분히 말을 조심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한 번 다시 되돌아보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더 실수를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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