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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대하여

by honest

세상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만한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내가 회사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때는 직원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예닐곱 명 정도가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었는데, 나와 다른 직원 둘이서만 거의 계속 얘기를 했다. 난 다른 직원들의 말을 막을 생각은 없었는데, 나중에 다른 직원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네 들었다. '나도 말하고 싶었는데, 두 사람이 계속 말을 주고받는 통에 끼어들 틈이 없더라고'.(웃음)


둘이 만나면 50%씩 이야기하는 게 베스트일 거고, 셋이 만나면 1/3씩 이야기하는 게 최선일 것이며, 넷이 만나면 1/4씩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내 경우엔 그게 해당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한 후배와 또 다른 후배와 나와 셋이 몇 차례 만났었는데, 아마 전체 대화 중에서 내가 말한 시간이 2/3는 될 것이다. 그렇게 주구장창 떠들어 대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인들에게 그저 무한한 감사를. 성당에서는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최대한 말수를 줄이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아마 나는 지분 이상으로는 말하고 있을 거다. 다만 압도적으로 하지 않고 있을 뿐.(또 한번 웃음)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는 나다.




군대에서 후배 두 명이 먼저 전역할 때, 나는 정말 한 말의 눈물을 흘렸었는데 헤어진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지만 그런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들과 나는 2년 동안 하나의 주된 관심사가 일치했고, 그래서 모든 대화가 다 잘 통하는 편이었다. 우리는 모두 장교였고, 그 부대를 이끄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모여서 군대 얘기를 했고, 그 점에서 주제와 화제가 일치했다. 물론 각자 생각은 달랐겠지만.(그래 봤자 내가 고참이었다.) 그런데 후배들이 전역한다고 생각하자, 헤어진다는 섭섭함도 물론 있었지만, 앞으로 다시는 예전처럼 같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동안 함께했던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슬펐고, 더 눈물이 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회사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고 회사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브런치에 적었던 것 같은데, 저녁 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아, 오늘 나는 하루종일 점심 때 식당에서 '김치볶음밥 주세요' 한마디 말고는 한마디의 말도 안 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무척 우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렇게 우울했어도 집에 돌아가면 대화를 나눌 아내가 있었다. 아내와는 아주 예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했던 터라(차마 나눴다고는 못하겠다) 아내는 우리 회사의 사정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다니는 만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호응도 잘해 주었다. 아내가 돌아오면 나는 조잘조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기에 바빴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는 큰일을 겪고 있고, 만약 아내가 나와 같이 있었다면 계엄령은 무엇인지,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지 여러 가지를 물었을 것이고, 왜 그런지 따졌을 것이다. 그럼 또 나는 신나게 잘난 체하며 설명했겠지.




몇 주 전 원치 않게 회사 사람으로부터 다른 회사 사람들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원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지만, 그날은 무척 우울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들은 남의 사생활을 전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 수 있었던 건 아내가 나의 대나무숲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그날 나는 알았다. 더 이상 나는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승진? 탈락할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서글펐던 건 내가 승진에서 탈락한 일을 가지고 주저리주저리 떠들 수 있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는 없다는 점이었다. 나에게는 친구도 많고, 지인도 많지만, 왜 내가 승진에서 누락되었는지 앞뒤의 자세한 사정에 대해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아마 관심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앞뒤 전후 사정까지 한두 시간을 들여 내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 정도는 내게 있을지 모르지만, 그 친구가 정말 그 일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을까. 우리 회사는 그 친구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좋소인데.


연말에 아는 분께서 부르시더니 자신의 지인을 소개받지 않겠냐고 하셨다. 굳이 사귀지 않더라도 어차피 둘 다 서로 회사에서 이혼한 것도 모르고 말할 사람도 없어서 답답할텐데 그냥 아는 사람으로 지내더라도 좋지 않겠느냐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가타부타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실은 상대가 예쁜지가 궁금했는데 그런 걸 묻는 건 너무 속물 같아서) 그분의 말씀처럼 그렇게라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 한 명 생기면 내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서 좀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쉴 새 없이 재잘재잘 떠드는 나를 나는 전혀 모르는 그분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세상에 나의 외로움을, 외로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을 공유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의 쓸쓸함은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다. 크산티페도 없는 것보단 낫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나는 특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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