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노력이라는 자기만족에 대한 이야기
학위가 무려 5개나 있는 나의 마지막 학위는 법학사다. 요즘은 잠잠해졌지만 한때 온라인 로스쿨 도입에 대한 논의가 상당했고, 냉철하게 판단했을 때 나는 성사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나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법학과 3학년에 편입했고 졸업했다. 온라인 로스쿨은 온라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며 미리 법학 관련 학점을 일정 학점 이상 수강한 사람에게만 입학 기회가 주어진다는 시중의 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썰은 나도 일리가 있다고 보았고.
법학과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웠기에 만약 온라인 로스쿨이 도입된다면 나에게도 지원 자격은 주어질 것이다.(온라인 로스쿨의 도입 가능성은 미뤄 두고) 그런데...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이 점은 좀 회의적이다. 나의 5개 학위 가운데 법학과 졸업 학점이 가장 낮다. 공법(헌법과 형법) 분야는 한국사를 전공하기도 했고, 대체적으로 상식의 영역이라 학점이 크게 나쁘지 않은데 사법(민법 분야)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가 않다. 겨우 D나 C를 받고 이수만 한 과목도 한가득이다. 한편으로는 온라인 로스쿨 도입에 부정적이어서 그렇게 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성적에 열의를 보이지 않기도 했다. 한 과목은 교과서와 수업내용대로 시험을 보았는데 결과적으로 틀렸다. 중간에 법이 바뀐 것을 교수가 학습자료로 배포했는데 나는 학습자료까지는 보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 한 문제 때문에 나는 학점이 바뀌었고, 장학금도 한 단계 내려 받아서 손해가 막심했는데 결과적으로 따지진 않았다. 이게 뭐 그렇게 대세를 바꿀 정도의 일인가, 하고 심드렁했던 것 같다.
보름 전쯤엔 나름 의지를 가지고 두 가지 일에 지원했다. 늘 미루고만 있었는데 브런치 원고를 한 출판사에 보내 보았고, 또 가을에 하고 싶은 한 달 살이에 지원했다.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도 말씀은 드렸었는데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둘 다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우선, 내 브런치를 읽고 계신 당신께선 아시겠지만 나의 글은 매우 길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를 브런치북으로 발간하는데 1권으로 되지 않아서 2권으로 내야 할 정도였고, 이후에도 번외편처럼 매거진에 글을 계속 올리고 있다. 이걸 책으로 만드는 게 과연 쉬울까. 요즘의 독서 세태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 갈수록 책이 얇아지고 분량이 줄어드는데.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는 거의 양장본 사회과학서 분량이다.(ㅎ)
아내와 헤어지면서 그때 계획했지만 하지 못했던 한 달 살이를 가을쯤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3월에 공고가 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나름 이쪽은 좀 더 확률이 높을 거라고 보았는데 실은 내가 지원한 지역의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을 아는 분에게 부탁을 해 놓은 까닭이었다. 서류만으로는 과연 될까? 싶었지만 그래도 아는 인맥을 동원해 보았으니 혹시 좀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한 달 살이를 다 채우면 내가 받게 되는 지원금은 최대 3백만 원까지 된다. 그런데 내가 그 지원서를 작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시간도 채 안 되었다. 지원서는 보냈지만 아마 지원서만의 경쟁력으로 내가 뽑히지는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나에게도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둘 모두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나에게는 정말 진심으로 잘 되려는 생각이 있었던 걸까. 그랬다면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 원고도 훨씬 짧게 분량을 조절하고, 책에 대한 내 진심을 담아 소개글도 더 그럴 듯하게 써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3백만 원이나 되는 지원금을 받고 싶었다면 별첨 서류와 여행 일정까지 첨부해 가면서 어떻게 그 지역에서 한 달 동안 내가 녹아들 수 있을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받고자 하는 지원금 규모는 더 큰데 나는 그 서류 준비에 3년 전 통영에서 한 달 살이에 도전할 때 만큼의 성의도 들이지 않았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때는 나름대로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서류를 준비했음에도 떨어졌었다. 물론 나이 때문에 떨어졌고, 그걸 감안해도 대기 1번까지 올랐었지만. 이번엔 더 많은 액수를 지원받으려 했고, 더 많은 지원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보다 더 성의껏 열심히 지원서를 써야 하지 않았을까.
법학과를 졸업할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건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것 아닌가. 정말 온라인 로스쿨이 생겨서 내가 그곳에 지원하고 싶다면 학점 관리를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고 만약 진학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면서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 엉망인 학점을 받아 가면서 일단 지원할 자격은 얻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빠져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원한 뒤에는 합격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나는 더 노력을 해야 했다. 어차피 떨어질 것 같다면? 그렇다면 굳이 거길 다닌 이유는 무엇이었나.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하나 더 하는 게 낫긴 하겠지만.
그래. 스스로에게 그런 위로를 해 본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니냐고. 일단 목표가 없는 삶에, 그리고 도전이 없는 삶에 이렇게 작은 한 발자국이라도 떼어 본 게 어디냐고. 온라인 로스쿨의 경우에도 그럼에도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법학과를 졸업한 게 어디냐고. 그 시간 동안 나는 학점은 비록 엉망이었지만 나름대로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해 가면서 제때 졸업하기 위해서 애썼고 실제로도 2년만에 학위를 마쳤다.(3학년 편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나는 또한 알고 있다. 정말 뭐라도 하나 해 내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실제로 하면 잘할 거라고? 그래. 나도 그걸 알고 있다. 만약 한 달 살이에 선정되었다면 나는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그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고 좋은 글과 콘텐츠를 만들어 내었을 것이다. [이혼도 쉽지 않았습니다]가 책으로 나왔다면 진심을 다해 그 책을 만드는 과정에 임했을 거고 또 독자들을 만나고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겠지.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실제로 잘할 것이라는 걸, 잘할 수 있다는 걸 서류를 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나.
어쩌면 나는 '뭐라고 하고 있다'는 그런 보여 주기에 더 진심인 사람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해진다. 실제로 나는 회사에서 일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대개 외부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데, 그들에게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단 한 번밖에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걸 늘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는지. 내 인생도 단 한 번뿐인데. 금전 대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내 인생인데?
[이혼도 쉽지 않습니다]를 책으로 내기 위해 나는 또 도전할 것이고, 한 달 살이 지원도 계속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좋은 결과가 있으려면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나는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그래서 결실을 볼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