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8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1주년 결혼기념일엔 같이 화담숲을 갔었고, 2주년 결혼기념일엔 군산여행을 했던 것 같다. 4주년 결혼기념일엔 처조카를 보러 갔던 듯하며, 6주년 결혼기념일엔 부부상담이 그즈음 막 끝났던 터라 같이 미술전시를 보고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지난 7주년 결혼기념일엔 이미 나와 아내는 별거 중이었다. 이혼신고를 보름쯤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한때는 휴일에도 힘들었는데 휴일 정도라고 보기엔 엄청난 이벤트가 있는 셈이라 어제가 다가오면서 나름대로 걱정이 많이 되었지만 특별한 일 없이 하루가 잘 지나갔다. 그만큼 많이 괜찮아진 것이리라. 실제로 지난 일 년 사이를 돌아보면 약도 정말 많이 줄였고, 나 스스로도 평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불과 일 년 전과 비교해 보면 정말 괄목상대라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 특히 약을 줄인 게 가장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지표이며, 마음도 많이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어제도 무사히 보냈다.
보름 전쯤엔 천주교 피정을 다녀왔다. 피정은 사찰의 템플스테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산 좋고 물 좋은 가평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부님과 수녀님과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1박 2일의 시간을 보냈다. 작년에 갔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벌써 일 년이 지났고 솔직히 피정을 다녀온 나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죄송해요. 수녀님.)
상처로 비유하면 나는 일 년 전에 엄청나게 큰 상처가 나 있는 사람이었고 일 년 사이에 그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왔다. 다 나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제는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상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런데 피정을 갔더니 나의 지난 상처를 자꾸 다시 돌아보라고 했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아마 일 년 전쯤 다녀왔다면 정말 만족하고, 또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이 회복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 상처를 다시 뒤집어 보고 헤집어서 어떤지 살펴보라는 게 내게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고 힘든 일이었다. 이번에 피정을 다녀와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면, '아, 이제 나는 템플스테이나 피정은 그만 가도 되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상처를 외면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면 또 다를텐데 그렇지 않다. 나는 그동안 충분히 상처를 헤집고, 다시 열어보고 확인하면서 지난 일 년을 보냈다. 어쩌면 그래서 남들보다 회복이 느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나는 이제 회복되고 있었다. 여기서 굳이 그렇게 또다시 상처를 확인하고 들춰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제는 그만 그렇게 해도 될 것 같다.
다만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눈 것만은 정말 좋았다. 신자로서 나는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두 번 저지른 셈이고, 지금도 내가 속한 성당과 성가대, 그리고 신부님을 속이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 점은 항상 내게 큰 마음의 가책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너그러운 말씀으로 괜찮다고 해 주셨다. 처음 만난 신부님의 용서가 내가 한 잘못을 모두 다 이해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성가대의 누군가가 이 브런치를 보고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나에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고 적극적으로 거짓말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서 그것이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가책을 덜 수 있었다. 역시, 나란 사람도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엄하고 내게는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이었던 건가. 휴우-
5월 말에는 여의도에서 연수가 있었고 여의도로 가는 김에 오랜만에 아는 형과 점심을 먹었다. 형을 만난 건 거의 1년 반도 넘은 일이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형이 아내는 잘 지내는지 등의 안부를 물었고,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지만 계속 거짓말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으로는 혹시 형이 알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고. 그래서 형에게 솔직하게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형이 알고 있었는데도 떠본 것이었는지 정말 몰랐는데 내가 혼자 켕긴 것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날 형과도 이야기했고, 의사 선생님과 진료를 보면서도 이야기했고, 그 뒤에 신부님과 만나서도 이야기했다. 이제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야기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미 많이 늦었다. 그 형과 점심을 먹고 이틀 뒤엔 후배들과 같이 점심을 먹었는데, 전혀 모르는 한 후배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거기다 대고 '사실 나 헤어졌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20년 넘게 알고 지낸 후밴데,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서운할까.
누군가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 할 만한 소식이라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원히 거짓말할 수는 없는 셈이라 나와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나중에 알게 되면 서운해 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엔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자약하게 지내며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부터 슬슬 솔직한 상황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그래야 할 때도 되었다.
아내도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둘 다 맞지 않아서 헤어지긴 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아내도 나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될 거라는 생각도 하며, 그러면 더 좋겠다는 마음도 생긴다. 그러나 힘든 과정을 거치며 내가 더 성숙하고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여기면서도 내 마음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엄연히 있는 한편으로, 또 다르게는 '그래도 아내만한 사람이 없었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때면 가장 마음이 힘들다. 역설적으로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가득 찰 때, 나는 '역시 아내만한 사람이 잘 없어'라는 생각으로 가장 힘들다.
지난 일 년 동안 정말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아졌고, 또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새겨진 선명한 추억과 좋았던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미화된다. 가끔은 너무 좋은 기억력이 조금 부담스럽다.
부인, 잘 지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