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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예의

by honest

아내와 헤어질 날이 다가올 때쯤이었다. 실은 나는 우리가 이사해야 하는 날을 아내보다 한 달 보름여 일찍 알고 있었는데, 부동산에 내놓은 집이 나갔지만 아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처음에 아내가 너무 늦다고 싫어했기에 이야기하지 못했고, 하루라도 시간을 벌어 아내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또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러나 부부상담이 모두 끝나고 결국 우리에겐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오고 있었다. 물론 실은 그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점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우리가 헤어져서 나가야 하다 보니 아내는 이사하는 날 우리 부모님을 만나는 게 영 불편하다며 하루 일찍 이사를 하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일이어서 매우 놀랐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무엇보다도 금전적인 문제가 엮이므로) 아내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해 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내는 목요일에 나는 금요일에 각각 이사를 했다.


내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쪽의 부모님이 모두 자녀를 완전히 독립시키시지 못한 까닭에, 아내가 이사하는 날에는 처가의 부모님이 총출동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새벽같이 차를 타고 올라오셔서 우리집으로 오셨고, 어머님은 뵙지 못했는데 아내가 이사할 집으로 가시기로 했다고 들었다. 대개 이사는 아침일찍 시작하는데, 그날 나는 아침에 왕창 약을 먹고도 한 무더기의 눈물을 흘린 뒤에 8시쯤 도착하신 아버님을 맞이했다. 아버님을 마주한 건 돌아보면 석 달 보름 정도만이었던 것 같다. 아버님께서는 매우 점잖으셨지만 렇다고 썩 기운이 좋은 편은 아니셨다. 나는 아버님께서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도 뵈었고, 아내를 시집보낼 때, 아내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가에서 등등 여러 차례 아버님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날처럼 침울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난 여전히 아버님이 상당한 신사라고 생각하는데, 아내와 내가 헤어지는 와중에도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으셨고 점잖게 나를 대하셨다. 물론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에 아쉬움은 표하셨지만.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싹싹하기 이를 데 없는 나는 그날도 아버님을 큰 어색함 없이 대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이사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이삿짐센터 직원분들은 우리를 안방으로 몰아넣었는데, 안방에 옹기종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어색함을 어찌 견딜 수 있으랴. 결국 아버님은 오래 계시지 못하고, 아내에게 차에 내려가 있겠다며 지하주차장으로 먼저 내려가셨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도 참 눈치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나는 아버님을 지하주차장까지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었다. 아버님께서 만류하셔서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해 드렸다. 그때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처가의 가족 구성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내가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이는 아버님께서도 렇게 여기셨을지는 의문이다.


이삿짐을 여전히 싸고 있는 와중에 아내가 이사 갈 집에서 전화가 왔다. 비어 있는 집의 상태를 아내가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한다며.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는 부부이면서도 우스꽝스럽게 아내는 내게 마무리 짐 단속을 부탁하고 먼저 이사 갈 동네로 향했다. '나 먼저 갈께~ 연락할께~ 다 끝나면 같이 밥이나 한 번 먹자~' 아내를 보낼 때는 나는 기어코 지하주차장까지 같이 갔고, 거기에서 아버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때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 아버님께서 기억하실 나의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별일 없으셨다면 아내의 할머님께서는 올해로 아흔다섯을 맞이하셨을 것이다. 할머님께서는 연세에 비해 꽤 정정하신 편이었고 정신도 온전하신 편이시라 나는 할머님에 대한 기억도 많고, 그래도 인사보다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다고 생각한다. 처가에 갈 때면 항상 들어갈 때, 나올 때 인사를 드렸고, 매년 한 번씩 있는 할머님의 생신잔치 때는 친척 분들께도 열심히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헤어지면서도 아내에게 우리가 헤어진 뒤에도 할머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좀 이야기해 달라고 말을 했었다. 할머님 가시는 길에 찾아가서 인사드리는 게 당연한 도리고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족의 경우뿐만이 아니라 나는 회사에서도 원수처럼 지내는 직원이라도 상가에는 들르는 편이다. 나의 조문에 상대도 놀랐던 것 같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매우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그런데 앞으로는 안 그러려고 한다.) 원수의 집안에 상이 있어도 가는 게 도리인데, 하물며 한때 가족이었던 인연에서야. 나는 당연히 할머님께 무슨 일이 있다면 직접 찾아뵙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아내는 내게 대놓고 싫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만약 그 시점에 자신에게 새로운 남편이 있다면 어떻게 하냐고는 물었다. 지금도 그 순간이 명확히 기억 난다. 아내가 운전하며 빠른 속도로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던 와중이었다.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는데 짧은 순간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 점은 좀 곤란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에게 '그럼 뭐 어쩔 수 없지~'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혹시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그래도 내가 할머님 가시는 길에 인사를 드리는 게 도리가 아니겠냐고 말했던 듯하다.




아내가 떠나고 나는 정말 그다음 날에 이사를 했고, 아내가 거의 모든 신혼 세간을 다 가져간 터라(나쁜 의미로 한 말은 결코 아닙니다.) 나는 별로 남은 짐이 없어 결국 부모님의 도움으로 승용차 두 대에 나누어 이사를 했다. 이사하는 날 동생은 일이 있어 일찍은 오지 못했고, 내가 새 집으로 들어온 다음 저녁에 조카를 데리고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갔는데 형수는 어떻게 됐냐고 묻길래 아내는 불편해서 하루 전에 이사했다고 했더니, 자기 같으면 이렇게 됐어도 그동안 그래도 감사했다고 인사는 드릴 것 같은데 뭘 그렇게 하냐며 영 마뜩찮은 모습이었다. 약 나도 같은 경우를 내가 겪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겪었다면 분명히 동생과 비슷하게 이야기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건 내 일이었기 때문에 동생에게 사람마다 다르니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 난다. 그렇다. 하루 전 내가 처가의 아버님께 그랬듯 나는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게 피하는 것보다 더 예의 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예의일 뿐, 아내의 예의는 또 달랐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만약 할머님께 좋지 않은 일이 생겼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고 상상해 보면, 처음 아내와 헤어졌을 때의 생각과 같지 않다. 아마 시간과 거리감은 비례하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 처음 내가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는 아내의 외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랬듯, 비록 나는 이제 남이 되었지만 같이 상례를 치르고, 밤에는 처가에서 같이 잠을 자고, 같이 묘원으로 향하고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었다. 그때는 내가 아내와 한 가족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처남, 처조카, 처남댁 그리고 아내 정도야 나를 좀 덜 어색하게 대할지 모르겠지만 아버님과 어머님도 내가 얼마나 어색하실 것이며, 처가의 다른 친척들은 오죽할까. 처음에 아내와 헤어질 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여전히 처가의 싹싹한 사위로 내 할 몫을 다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상상해 보면 그건 보통 낯 두꺼운 사람이 와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나도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다. 겨우 가서 인사만 드리고 한쪽 구석에서 아내와 조금 이야기만 나누다가 돌아오는 정도겠지.


오지랖이 조금 지나친 편이긴 하지만 대체로 나는 예의가 바른 사람이고,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다른 상황을 겪고 나이를 먹고 나니 내가 지켰던 예의와 도리는 어쩌면 나만의 예의와 도리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예의와 자신의 도리밖에 지키며 살 수 없긴 하다. 그러나 그게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느껴질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때 느꼈을 아내의 불편감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아내는 자신이 불편해서 하루 먼저 이사한 게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다른 방식의 아내 나름의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헤어질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났다면 서로 어색하고 불편했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다 같은 사회, 같은 문화권에서 살고 있고, 어른을 공경하고,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등의 기본 예절도 없진 않겠지만, 상세히 들어가면 지켜야 하는 예의에 대해서도 각자의 생각이 천차만별이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상대는 예의가 없는 게 아니라, 그 나름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은 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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