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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추억, 좋지 않았던 기억

by honest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던 때를 떠올려 본다. 즈음의 기억은 거의가 좋지 못했던 것들이다. 모든 시간이 다 그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개 서운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아쉬웠던 기억들로만 가득 차 있다. 아마도 그러니 아내에게 헤어지자고 말했을테지. 돌아보면 코로나 이후로 지난 집에서 같이 보냈던 시간 4년 동안은 대체로 좋지 않았던 기억들뿐이었다. 물론 좋았던 시간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전에 아내를 만나고 신혼을 함께했던 4년의 시간과 비교하다 보니 더욱 좋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공간에 따라 호오가 대부분 정확하게 갈린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아내를 설득할 때, 혹시 그 동네가 나와 아내가 잘 맞지 않는 한 이유가 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가서 한 번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었고, 실제로도 아내를 그렇게 열심히 설득했었다. 결과적으로 아내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말았지만.


예전과 비교해서는 많이 줄었을 것이다. 그것이 시간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문득문득 아내가 떠오른다. 이부자리를 정리할 때면 예전에 아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내가 이불을 펴려고 하면 아내가 신나하면서 팔과 다리를 팔짝팔짝 움직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주도를 갔을 때였다. 아내에게 행복에 대해 자주 물었던 나였고, 아내가 행복하지 않다고 한 그 말에 나는 아내에게 그럼 너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헤어지는 것도 괜찮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실제로 나는 그렇게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줄을 모르고) 아내는 나중에 헤어질 때도 이야기했었는데 그때 내가 참 멋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갔던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에서 내가 보이지 않자 아내가 애타게 나를 찾으며 전화했던 것도 떠오른다. 그때였는지 그로부터 한 달 뒤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해수욕을 하기 위해 같이 바닷가로 향했었는데 아내가 무척 신나했던 것도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나중에 내게 그때 마치 잘 놀고 있는 아이가 엄마를 보며 안정을 찾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내가 늘 그랬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내가 교회수련회를 떠나면서 다른 사람과 같이 자기 싫다며 내게 수련회 프로그램엔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 수련회만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던 것하며, '나는 결혼해서 너무 다행이다'라고 안도했던 모습도 많이 떠오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내 머릿속은 항상 그렇게 좋았던 추억들로 가득 찬다.


아무래도 좋았던 추억이 많이 떠오르는 만큼, 그럴 때면 여전히 마음이 힘들다. 이제는 약도 많이 줄였고(아니 거의 끊었고) 거의 일상생활을 회복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좋았던 추억들을 되새기다 보면 모든 게 다 내 잘못 같고, 다시 아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마음이 많이 괴로워진다. 지나간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며, 사람들로부터 지나치게 과거를 미화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된다. 실제로 객관적으로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본다. 아내와 여전히 함께 살았다면 우리는 신혼 때처럼 행복했을까. 물론 가 보지 않은 길이기에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죽어라 노력해야 하는 일인데 그렇게 되기가 과연 쉬울까. 처음부터 관계가 변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처음이어서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나는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좋았던 추억 위주로 기억한다. 그건 내 인간관계에서도 엄청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장점을 말할 때, 내가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좋은 점이다. 그래서 나는 비록 아내와 헤어졌지만, 그리고 어쩌면 정말로 내가 나쁜 사람이어서 우리가 헤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내에 대해서도 주로 좋았던 추억 위주로 떠오른다. 아내에 대해 좋지 않았던 기억도 물론 적지 않지만, 좋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리려면 나는 굳이 머릿속에 저장된 메모리를 하나하나 헤집어 내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듯 아내에 대한 기억도 무의식 중에는 늘 좋았던 추억이 확확 생각난다. 그것은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물론 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아내보다 내가 더 잘 지냈으면 좋겠고, 더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 그러나 늘 나는 생각한다. 나는 굳이 그런 부분에서 아내를 이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내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고, 아내가 더 행복하고, 더 잘 지냈으면 좋겠다. 아마 아내는 충분히 그러고 있을 것이다. 아내를 잊고 꿋꿋하게 잘 사는 게 아내를 이기는 것(?)이라는 류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결코 아내를 굳이 이길 생각이 없기에 그런 이야기가 나의 회복에 전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기억은 옅어지겠지만, 여전히 아내와의 좋은 추억에 사로잡혀서 사는 건 내가 힘들고, 또 아내도 원치 않을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는 만큼 천천히 추억이 흐려져 갔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오늘도 나는 아내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아내가 잘 지낼지 걱정이 되지만, 이건 아마 나도 아내도 원하지 않는 그림이지 않을까 싶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떨칠 때는 떨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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