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님에게 보내는 답글
OO님, 안녕하세요. 쓸데없는(?) 말 같지만 우선은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리는 게 도리겠지요. 짧지도 않은 제 글을 열심히 읽어 주시고, 또 제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주제에도 없는 이런 상담글(?)도 남기게 되었네요.
먼저 명확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무언가 비슷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와 OO님이 처한 상황은 같지 않고 사람 또한 다르다는 것을요. 나름대로 뭔가 성의껏 답글을 달아보려고 하긴 하는데, 제가 OO님의 사정을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제가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적당히 감안하고 들으시면 될 듯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미 상담도 받아보셨다고 하셨지만 저는 다시 한번 남편분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 보시는 쪽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임감'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혼을 진행하시는 건 저는 반대에요.(제가 반대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지만, 그리고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항상 좀 덜 후회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하려고 애써 왔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는 바와 같이 결과는 예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죠. 그러나 한편으로 돌아보면 지금의 이 교훈을 깨닫지 못하고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저는 그때 그게 제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아내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던 거에요.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아내와 '이혼'이라는 이야기를 크게 보면 세 번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신혼기간이 막 끝나고 아내에게 사춘기(?)가 왔을 때 그때 한 번 했었고, 그 뒤로는 재작년에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해서 두 번, 그렇게 세 번 했던 것 같네요. 너무 적게 이야기했던 바람에 오히려 그 말에 더 무게감이 실려서 아내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세 번 모두 정말로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후회하고 있지만요.
당연히 '이혼하자'는 말을 할 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최고의 방향은, '아내가 사과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였습니다. 아마 남편분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진짜 이혼할 생각은 없었다고 하시는 걸로 봐서, 아마 남편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OO님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좀 더 강한 말을 하시는 쪽이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물론 남편분도 정말 이혼에 이른다면 저처럼 언젠가는 후회에 이르고, 뼈저리게 자신을 돌아보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 결론이 꼭 '이혼을 잘못했다. 되돌려야지'로 귀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한번 생각해 봅니다. 당연히 이혼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겠지만, 이미 헤어진 지금 다시 시간을 줄테니 그때로 돌아가라고 아내를 말려 보라고 하면 (물론 이혼을 하지 않는 게 최고겠지만) 못할 것 같아요. 결론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고, 실제로 우리가 잘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전 어느 정도 회복된 지금 아내와 재결합할 생각은 없습니다.)
주제 넘게 말씀드린다면 우선은 전 두 분이 정말 속내를 털어 놓고 진심으로 대화해 보시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그리고 상담도 추천드려요. 이미 상담을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게 개인상담인지 부부상담인지 모르겠네요. 개인상담만 받으셨다면 부부상담을 꼭 같이 받아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제가 브런치에 어떻게 하면 상담을 저렴하게(아니 무료로) 받을 수 있는지도 적어 두었으니 참조해 주세요. 만약 부부상담을 받지 않으신 상태라면, 제 견해로는 부부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말만으로도 남편분께 충분히 충격을 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분은 그 정도로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셨을 수도 있을테니까요. 저도 2년 전 이맘 때가 떠오르네요. 그때 아내가 먼저 부부상담을 받자고 했었어요. 저는 2년 반쯤 전에 먼저 이야기했었고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했을 때 저는 정말 우리 부부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한 건 아니었습니다. 반면 아내가 부부상담을 받자고 이야기했을 땐, '잘못하면 이 관계는 끝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게 기억 나네요. 아마 남편분도 부부상담을 받자고 하면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잘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OO님께서 남긴 글을 보면서 아직은 부부 간에 사랑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혼하는 과정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던 형에게 들었던 이야기 가운데 그런 말이 생각납니다. 어느 부부나 계속 살아야 할 이유도 수백 가지가 있고, 헤어져야 할 이유도 수백 가지가 있는데 어느 쪽을 보고 찾느냐에 달린 문제라고요. 저는 그중에 최고는 애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애정이 남아 있다면 후회할 결정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좀 더 마음을 다해 노력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