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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미안해

by honest

운수도 더럽게 안 좋은 날이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환승역이 있는데 대개는 거기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는 그 역에서부터 앉아 온다. 앉지 못하는 일은 10번에 한 번도 안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런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다. 어제는 정말 스스로가 뿌듯하다고 느낄 만큼 운동을 해서 오늘 아침엔 꼭 앉아서 쉬고 오고 싶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면 앉을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를 장담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첫 환승역에서 가장 빨리 갈아탈 수 있는 칸을 이미 노려서 탄 셈이기 때문이다.


몇 정거장을 더 갔는데 재밌는 일이 생겼다. 아는 대학 학과 선배이자 현직 그 과 교수님께서 지하철을 타시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이사 왔다고는 들었는데 너무 놀라웠다. 하필 같은 시간에 그것도 같은 전철에, 심지어 같은 문으로 타다니. 아마 내가 앉아서 졸고 있었다면 못 보았을텐데 오늘은 서 있는 바람에 깨어 있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후배에게 연락을 했다.


'OOO 교수 전철 타고 출근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그렇게 웃겨요?'

'이 아침에 하필 같은 열차에 같은 칸에 탔으니 너무 웃기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간에 그 교수에게는 전화가 걸려 왔고 이번에 나는 '전화받으신다 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두 분이 서로 인사하는 사이세요?'

'그럼 안 웃겼을 거 아니야.. 저 사람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나만 아는 거니깐 웃기지'


후배는 별로 웃기지도 않고, 서로 인사하고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자길 관찰하면서 남에게 말한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한테 그런 건 안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후배에게 화가 났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잘못한 거고, 후배에게도 '그렇네. 내가 잘못했다'라고 이야기했다. 다만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실은 나도 불과 며칠 전에 후배가 나에게 한 이야기를 다른 선배에게 했던 까닭이다. 내가 선배에게 그 말을 했던 속마음은 실은 '나는 선배와 그렇게 연락하고 싶지 않은데요'라는 말을 완곡히 돌려서 한 거였다.


잠시 모른 척하셔도 좋습니다


나는 이 글의 주인공과 썩 자주 연락하고 싶지 않았고, 저때의 사연으로 한때의 냉각기를 가진 것 같았는데, 얼마전부터 다시 조금씩 자주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뭐, 나도 사회화가 된 사람인데 대놓고 '선배. 전 선배 싫어요. 다신 연락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할 것도 아니고, 도와줄 수 있는 일은 도와주면서 지내고 싶었는데, 선배는 그게 내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 느낀 건지 점점 별것 아닌 일까지 연락을 해 왔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연락도 받아주고, 전화도 받고 했지만 결국 마침내 나는 선배에게 '저한텐 그런 것까진 말씀 안 해 주셔도 돼요'라는 말을 꺼냈고, 덕분에 이후로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후배가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저한테 그런 건 안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에 나도 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한 경험이 있고, 그 말의 의미가 '나는 너와 연락을 안 하고 싶다'는 것이었기에, 20년도 넘게 연락을 주고받았고, 한때 나는 그녀를 좋아했으며, 진지하게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려 두 번에 걸쳐서 생각했던 후배였기에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무척 무거워졌다.


내가 선배지만 지난 20년 동안 후배는 거의 내 불평불만과 하소연을 들어주는 편이었고, 둘이 만나면 거의 절대적으로 내가 많은 말을 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거의 9:1은 족히 되었을 거 같다. 처음에야 내가 밥을 사 주고 만난 적도 있지만, 후배는 전임교수가 되면 매달 밥을 사겠다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듯(당연히 매달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만날 때마다 내게 밥을 샀고, 그러면서도 나의 끝없는 하소연과 푸념을 계속 들어주는 입장이었다. 며칠 전엔 30분밖에 못 잤다고 하던데, 그렇게 바쁜 데도 굳이 시간을 내어 가면서. 내가 생각해도 그런데, 굳이 자기 에너지를 그렇게 갉아먹는 사람에게 위로와 격려까지 건네어 가면서 밥까지 사 주고 싶진 않았을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항상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는 편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는 너무 바빠서 갈수록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4년 전엔 1년에 8번을 만났는데, 3년 전엔 7번으로 줄었고, 재작년엔 6번이 되더니, 그나마 작년엔 불과 3번뿐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후배는 '오빠처럼 자주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아마 3번을 그렇게 말한 건 아닐 거고)


후배도 오래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는 후배를 만나면 교수들에 대한 욕을 많이 하는 편인데, 후배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같은 집단 사람들을 욕하는 걸 듣기 좋았을 리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것도 그렇게나 자주. 그래서 나는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어쩌면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지금까지 참은 것도 오래 참았지. 아마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었기에, 후배가 늘 말하듯 내게 그래도 고마운 기억들이 있어서, 후배는 '아, 싫다'는 생각이 들면서 참고 지내왔을 것이다. 그러나 후배가 마리아도 아닌데 그게 어찌 영원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일도 많고 피곤한데 아침부터 쌩뚱맞게 전해 오는 쓸데없는 연락에, 더군다나 불쾌했을 연락에 후배는 그래도 기어이 감정을 누르고 눌러 점잖게 내게 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다시 또 아내 생각이 났다.




결혼 초에 아내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고, 아니 들어준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나를 잘 돌보아주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늘 불평과 불만과 푸념으로 얼룩진 사람이었고, 가끔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늘 그럴진대 매일 같이 지내는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리가 만무하다. 아내는 매일 같이 내 불만과 불평과 하소연을 들어야 했고, 그러면서 또 나를 잘 토닥여 주어야 했다. 돌이켜 보면 결혼식날부터 그랬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그랬고. 그런 아내에게 내가 항상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느냐고 물어보면 부끄럽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원래 그렇게 어둡고 처진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아내도 그걸 다 알고 결혼한 거니깐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였나 보다. 그리고 실제로 아내가 그 부분에 대해 그렇게 문제를 제기한 적도 없어서, 이게 잘못된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결국 헤어지게 되었을 때 아내도 말을 했었다. '그때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실제로 헤어지게 될 시점이 가까워지면서는 아내도 내게 불만을 털어놓길 시작했는데 초반에 나는 '아니 갑자기 왜 이래' 하는 생각에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신호만 잘 받아들였어도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나도 아내의 지적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는 있었고, 실제로 바뀐 부분도 꽤 많이 있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아내는 이미 진즉에 지쳐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렇게 바뀌고 노력했는데, 아내는 왜 이러지? 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다시 돌아보면 아내는 참고 참다 아주 극심한 부분만 이야기했던 게 아닐까 싶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한두 개뿐이랴. 그중에서도 아내는 도저히 못 참겠는 것만 이야기한 거겠지. 나는 아내가 지적했던 부분은 거의 다 고쳤다고 생각하는데, 그 외에 아내가 내게 말하지 못한 부분도 무척이나 많지 않았을까 싶다.


20년을 넘게 알고 지낸 보살 같은 후배도 다 견디지 못하는데, 물론 그 후배보다 아내를 알고 지낸 시간은 훨씬 짧았지만 매일 같이 살을 맞대고 시간을 보내는 남편이 그렇게 불평과 불만과 하소연으로 가득 찬 시간을 건넨다면 아내가 마리아였던들 버틸 재간이 있었을까. 실은 나는 헤어질 때 그런 생각도 했다. 아내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크리스천이기에 이혼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이해의 원칙이 있는데 아내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나와 헤어지려고 하는 것일까. 그런데 1년도 더 지나서 돌아보니 나를 멀찌감치서 바라보게 되면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아내가 아니라 마리아가 왔어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나마 아내는 7~8년을 버틴 거면 오래 버틴 거였다.




여전히 의사선생님께 자책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는다. 나름대로 나도 장점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잘못한 것만 있진 않았을테지. 실제로도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살가운 고모부였을 거라는 것에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항상 처가 모임에 나가면 '이 집은 사위는 정말 잘 얻었어'라는 말을 장인어른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기도 했고.


그럼에도 우리는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당연히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이기도 했겠지만, 결국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면, 나는 늘 한 번 반(1.5회)은 배우자를 위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아내가 한 번 반의 기회를 쓴 최선의 배우자라는 고마움은 가지지 못하고 살았다. 그 결과 이렇게 되고 말았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아내는 하늘이 내가 원했던 한 번 반의 기회를 쓴 배우자가 아니었나 하는 깨달음이 생겨서 오랜만에 정말 많은 눈물이 난다. 그런 우스개가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하느님께 자길 구해 달라고 빌었고, 두 번이나 그를 구해주겠다는 원주민과 또 다른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하느님이 구해 줄 거라며 거절했다. 결국 저승에 간 그는 하느님께 왜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하느님은 '난 두 번이나 널 구하려고 사람을 보냈는데, 네가 거절했잖아'라고 하신다. 나도 그렇게 살았던 건 아닐까.


오늘은 약이 참 많이 필요하고, 또 잘 듣는다. 4월은 3월보다 좀 더 나아질 줄 알았건만, 더 힘든 달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하루다.


아내에게 이 말이 전해지진 않겠지만, 다시 한번 또 말하고 싶다.


부인, 미안해. 내가 많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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