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잘 풀릴 때조차 후회와 미련, 과거에 갇혀 살았던 나다.(더 잘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그런데 하물며 인생에서 가장 큰 사고를 겪게 된 지금, 이제는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내 시계는 여전히 그 옛날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또한 알고 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지난 과거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헤어지는 아내조차 내게 진심으로 조언하고는 했었다. '이제부터는 지난날은 잊고, 앞으로의 날과 너만 생각해'. 그러나 난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작년 이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는 것 또한 부정하진 않겠다.
아내와 신혼 때처럼 계속 사이가 좋진 않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굳이 그때 다투면서 '관계의 끝'을 떠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후회한다. 내가 먼저 아내에게 '이혼'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면, 아마 아내는 '이혼'이라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브런치에도 썼던 것 같은데, 나는 왜 나는 좋은 남편이고 아내는 악처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말썽쟁이 남편들과 비교하면서 좋은 남편이라고 여기고, 아내는 양처(良妻)와 비교하면서 좋은 아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히 스스로도 글을 쓸 만큼 반성했던 부분이었는데 정말로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을 고쳐 먹었었는지 잘 모르겠다.
서운한 것을 서운하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도 반성한다. 왜 내심의 마음을 아내가 알아주길 바라고, 그렇지 못할 때면 스스로 서운하다 여겼을까. 그것이 결국에는 '우리 헤어져'라는 말로 이어지게 된 셈이었다. '우리 헤어지자'란 말을 꺼내기 전에 허심탄회하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는 없었을까. 물론 그랬어도 결과는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나의 지레짐작이 결국 우리 관계의 파경을 불러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이렇게 과거를 되돌아보고 후회하다 보면 끝이 없다. 나는 왜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첫 회사는 왜 그렇게 쉽게 그만뒀을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공은 왜 바꾸었을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은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단 하나의 후회도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만 이어 가면서 살았다면 지금의 삶과는 정말 달랐을 것이고, 내 삶이 무척 충실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때로는 그렇게 살았다면 조금의 인간미는 부족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지만, 모든 후회의 기본은 '지금 갖추고 있는 건 다른 길을 걸어가도 갖추고 있다'는 전제 아래서다.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면도 분명히 있다. 아내와 나는 관계의 마지막에서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다. 그때 내가 우리 관계의 끝을 향해 달려가며 아내에게 날선 말을 했던 것을 나는 분명 (또) 후회하지만,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아내도 굳이 나를 붙잡지 않았던 것을. 그때 아내와 나누면서 아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의 시점에서 돌아보면 아내도 '그냥 이대로 살면 살겠지만, 나도 너를 굳이 잡고 싶진 않다'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참고 관계를 이어 나갔다고 해도 더 오래 관계를 지속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상담을 받으며 의사 선생님께도 말씀드렸는데, 아내에 대한 좋은 기억은 거의 신혼 초에 머물러 있다. 물론 그게 불과 몇 달 정도로 짧은 건 아니고 처음 신혼집에서 살았던 3년 정도는 거의 다 좋은 기억만 남아 있지만, 돌아보면 그 뒤의 4년은 아내나 나에게 모두 그렇게 썩 만족스럽지 못했던 시기인 셈이다. 냉정하게 돌이켜 보면 처음 3년의 아내와, 그 뒤 4년의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아내를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 대한 사랑이 식고 관심이 식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지금 그렇다면 왜 그 사랑과 관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는지, 그때는 그것을 왜 외면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지만, 처음에도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아내는 나를 기꺼이 사랑해 주었었다. 아내도 변한 것이다.
지난 상담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를 물으셨고, 나는 나나 아내 모두 새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었다.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부정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그런 사례가 더 빈번하다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두 분의 경우에는 그냥 헤어짐의 경우에 가까운 것 같고,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아내는 헤어질 때쯤 내게 말했었다. 100년을 살아야 하는데 남은 인생을 혼자 살아야 한다면 너무 쓸쓸하지 않겠냐고. 내 경우엔 원래부터 아름다운 부부관계에 대한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렇게 이상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아내 생각이 더 많이 나고, 지난 시간에 대해 더 후회하게 된다. 의사 선생님께서 몇 번이나 지적하셨지만 당연히 아내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완벽한 아내도 훌륭한 부인도 아니었다. 아내도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이런 점 저런 점을 생각하다 보면 신혼 때의 아내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위주로 되어 간다.(나 또한 마찬가지고, 나는 아주 예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내는 비교적 옛날 사람으로 가정을 지키고, 남편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런 성향의 사람이 있긴 있겠지만, 더 늙고, 심지어 한 번 돌아온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내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천운이 아닌가 싶다.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고 한다. 왜 갑자기 쓸데없이 자존심과 자존감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대책 없이 긍정적인 것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희망을 갖는 건 다르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물론 나는 여전히 희망을 가지고 있고, 잘 될 거라는 낙관을 품고 싶다. 그러나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 분명히 나는 인생의 큰일(?)을 겪으면서 예전보다 더 현명해졌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도 자신하지만, 사람의 내면과 지혜는 쉽게 알 수 없고, 나는 아내를 만나기 전보다 9살을 더 먹었고, 게다가 이제는 한 번 다녀오기까지 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해서, 꼭 희망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