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1) 내가 아내와 만났다가 헤어진 걸 아는 사람. 2) 아내와 만난 것만 아는 사람. 3) 아내와 만난 줄도 모르는 사람. 당연히 1번 그룹이 나와 가장 가까운 셈일테고, 2번 그룹과 3번 그룹의 친분은 글쎄. 3번 그룹은 아내와 헤어진 이후에 만난 사람들이 해당되기 때문에 반드시 꼭 나와 마음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물론 당연히 3번 그룹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좀 더 가까워지면 솔직하게 1번 그룹처럼 털어놓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주 극소수인 것 같다. 하긴. 1년 사이에 가까워져야 얼마나 가까워지겠는가. 나는 이미 40년을 넘게 살았다.
문제는 2번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상당히 많은 숫자가 저기에 들어가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산다는 게 영 편치 않다. 속이고 싶어서 속이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속인다고 해서 내게 뭐 득이 될 것도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사람들과 만나는 횟수가 극도로 감소한다. 1년에 한 번만 만나도 자주 만나는 친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힘들 때 만나서 하소연하던 친구들이야 내 사정을 다 알겠지만, 극도로 힘들 때가 지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아내는 잘 지내지?'라고 물으면 갑자기 당황하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인사에 '사실 난 헤어졌어' 이렇게 대답하는 게 물론 맞긴 맞겠지. 그런데 분위기상 '어, 뭐 잘 지내지, 뭐' 그렇게 답하고 나면 순식간에 나는 이야기할 때를 놓친 셈이 되고 만다. 그렇게 해서 내 인간관계에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나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고 있다.(알아야 다른 이성이라도 소개해 줄 수 있을텐데)
사기꾼도 아니고, 심지어 사기꾼은 거짓말한 대가로 이득이라도 얻지. 뭐 좋은 게 있다고 남을 계속 속이며 살겠는가. 이렇게 지내는 게 영 마음이 편하지 않다. 더구나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끝까지 이야기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회사 사람들. 회사에 가까운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회사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비밀로 할 작정이다. 그러나 대개의 내 친구들은 아마도 내게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면 함께 아파하고 힘들어 해 줄 사람들이다. 굳이 그들에게까지 지금의 이런 내 사정을 속여야 할까. 물론 이제는 작년처럼 마음이 힘들진 않아서 애써 사람들을 부여잡고 내 사정을 설명할 필요까지는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1번 그룹과 2번 그룹이 나누어지게 된 것도 있다. 처음에는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 단계를 지나고 나니 이제는 구차하게 일일이 그 과정을 다 설명하는 게 더 힘들다. 또 그 과정을 설명하려 하다 보면 내 마음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조금씩조금씩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래야 할 때가 되었다. 영원히 속일 것도 아니지 않는가.
지난주 목요일엔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후배들과 점심약속이 있었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도 아니었고 마침맞게 나를 포함해 딱 셋이서 같이하는 자리였다. 20년을 알고 지낸 후배들인데. 어찌 보면 진즉에 이야길 했어야 하는데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아니 몇 주 전부터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번엔 꼭 얘기해야지.'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대략 2시간 정도를 함께 보내면서 문득문득 이야기할 타이밍도 찾았었던 듯하다.
그러나 결과는 나는 다시 또 이야기하지 못했다.
어느 시점에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도저히 맞는 때를 찾을 수가 없었다. 중간에 좀 오랜 대화의 공백이라도 있었으면, '얘들아, 사실은...' 하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런 대화의 공백도 없었고, 또 오랜만에 만나서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드는데 갑작스레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기도 뭣했다. 아무래도 듣는 사람들이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이번에는 꼭 이야기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었는데. 아이들과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결국 이번에도 또 얘기 못했네' 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 후배들과는 불과 보름 뒤에 다시 만난다. 다음 주 수요일에 강남에서 다른 후배들까지 여럿이 모여 오랜만에 점심모임을 가지기로 했는데 그때 또 얼굴을 볼 것이다. 그런데 다음 주에 있을 점심모임은 참석자가 그래도 꽤 된다. 사람을 여럿 모아놓고 무슨 선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이렇게 두세 명, 서너 명 모였을 때가 이야기하기엔 가장 편한 상황이었는데. 애매하게 있다가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미 얘들이 알고 있지 않을까. 아내 얘기를 안 꺼내는 걸 보면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한다. 작년에 친구들끼리 모였을 때는 한 친구가 생각 외로 입이 무거워서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꽤 놀랐었는데, 반대로 또 다른 후배는 이미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의외로 이미 모두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내가 얘기를 해야겠지. 다른 사람에게 건네 들은 얘기를 내 앞에서 당당하게 꺼내진 못할테니 말이다.
한 1년에서 1년 반쯤 전에는 너무 마음이 힘들었고 그랬던 까닭에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를 부여잡고 한참 얘기를 했더랬다. 헤어지고 나서는 괜히 쓸데없는 얘기를 했다 싶어서 후회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차라리 그때 더 마음 편하게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붙잡고 이야길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생긴다. 결국 언젠가는 이야기해야 할 일인데.
안 그래도 힘든데 이런 문제(?)에까지 부닥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나마 우리는 친척 간에 왕래가 엄청 많은 편은 아니어서 다행이지 싶은데, 아내는 돌아오는 광복절에도 친척분을 서른 분 내외로 모시고 할머니 생신잔치를 여는데 얼마나 불편할까 싶다. 내가 힘든 만큼 아내도 괴로울텐데. 그저 나처럼 무겁게 여기지 말고, 아내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