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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이미 끝난 관계입니다

by honest

요 며칠 최근 1년 사이에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약도 엄청나게 늘렸다. 처방받은 약이 는 건 아니고, 그동안 먹지 않고 모아두었던 상비약을 틈틈이 찾아 먹는데 그 용량이 많이 늘었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물론 여름에 접어들고 나서 한동안 우울감이 더 심하긴 했다. 과거에 대한 회상과 후회도 많이 했고. 그렇지만 그게 지금처럼 약을 엄청나게 찾아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도리어 지난 목요일에 병원에 가서는 의사 선생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다. 한 두어 달 정도는 정말 좋지 않았는데, 최근에 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기분이 좀 환기가 되었는지 괜찮아졌다고. 그런데 그날이 기점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날부터 마음이 힘들어진 것이 무척 심해져서, 주말에는 정말 우울감이 극도로 치달았다. 돌이켜 보면 아마도 트리거는 의사 선생님께서 해 주신 별다른 뜻 없는 이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내 분이 상당히 착한 분이었던 것 같네요.'


아내는 착한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착한 사람,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지 못하고 망가뜨렸다. 여기에서 시작된 생각이 주말 내내 나를 엄청나게 좀 먹었다. 여전히 아내에게 가끔씩 연락한다. 힘들어도 최근 두 달 정도는 그래도 연락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에 두 달 넘어 처음으로 아내에게 연락했다. 그것도 두 차례나. 마음이 정상이 아니었나 보다.




힘든 주말을 보내면서 불현듯 뒤늦게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아마 아내에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을 때 느꼈던 것 같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구나. 그냥 남과 같구나. 아내와 나의 관계는 진작에 끝난 것이구나.'


생각해 보면 지난 1년 동안 내가 힘들었던 건, 아마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는 아내와 헤어지고도 장장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내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잘했더라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때 다른 말을 했더라면, 우리 관계는 다르지 않았을까. 처음 아내와 헤어지게 될 때만큼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지난 1년 내내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했던 말이며 나 혼자서 곰곰이 잠겨 있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로 지난날에 대한 후회, 미련, 회상 이런 것들. 그 부분에서 나는 나를 크게 책망했고, 내가 뭔가 다르게 했다면, 잘했다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끝없이 했고, 내 머릿속에서 아내와 나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지난날에 대한 후회는 좋지 않고, 우리는 지난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나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떠오르는 생각이 그냥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1년만에, 아니 1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아내와 나의 관계는 진즉에 끝났다는 것이 보였다. 아내에게 보낸 한 통의 메시지에 아내가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헤어질 때 아내가 그런 말을 했었다. 너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계속 같이 살고 싶냐고. 다른 분께 내 힘든 마음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너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과 뭐하러 같이 살고 싶냐고. 그렇구나. 아내와 나는 피가 섞인 친족은 아니었기에 헤어질 수 있는 관계였고, 누가 뭐라 해도 아내의 마음은 떠났다. 물론 내가 잘했다면, 말을 더 좋게 했다면, 오래전부터 관계를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모든 걸 다 잘하고, 끊임없는 사랑을 준다고 해서 어떤 누군가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당장 나도 누군가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꼭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법이 없고.


여전히 나는 후회한다. 내가 잘했다면, 조금 달랐다면 달랐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면 아내가 내게 했던 말처럼 지금의 후회는 없었겠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노력만으로 어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나도 그러니까.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는 못했지만, 그와 별개로 어쨌든 아내와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아내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아내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지금의 나는 비로소 1년이 지나서야 아내와의 헤어짐을 실감하는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잘했다면 우리의 관계를 지켜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또 하면서 그 점에서 아내의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제일 중요한 건 아내의 생각이었건만. 그런데 이제와서야 깨닫는다. 아, 아내는 나와 헤어지는 것을 원했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지. 그건 혹시 우리가 헤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부부의 관계를 이어 왔다고 하더라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아내와 7년을 살았고, 8년을 만났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기에 늘 아내와 조금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비로소 깨달았다. 한때 나와 아내가 서로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이었든 어떻든 간데 우리의 관계는 끝난 것이로구나. 그건 오래전의 일일 뿐, 그때 소중한 관계였다고 해서 지금도 아내와 내가 긴밀한 관계인 것은 아니구나. 물론 이걸 머릿속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까지에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참 늦었다. 많이도 늦었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내와 나는 남남이 되었다는 것을. 원래 헤어진 부부는 그렇게 된다는 것을.


여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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