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헤어지면서 이별과 작별, 헤어짐 그리고 그와 관련된 심리와 치유에 대한 서적들도 상당히 많이 읽었다. 한동안은 꽤 읽었던 것 같다. 그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어떤 책의 문구가 있었는데 헤어지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전 연인 험담을 하고 탓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책을 읽을 때도 나는 항창 자기책망과 후회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크게 아내 탓을 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결국 쌍방의 문제일텐데 일방적으로 한쪽만 탓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은 다음에 다른 사람을 만나도 비슷할 수 있다는 식의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으로 나는 나에 대한 자책과 후회로 가득 찬 사람이었어서 그런지 그 부분이 특히 눈에 들어왔고, '절대 아내 탓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 달 보름쯤 전, 내가 정말 힘들었던 까닭은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아내 분은 정말 착한 사람이셨던 것 같아요'라는 말이 큰 계기였다. 안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의사 선생님께서 매번 상담할 때마다 '아내를 너무 이상화(理想化)한다'고 지적하기도 하셨지만, 정작 내가 아닌 다른 어떤 제3자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었다. 심지어 의사 선생님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가장 객관적일 치료자이지 않나. 물론 이제와서 돌아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아내에 대해 하는 좋지 않은 말은 모두 귓등으로 흘려듣고, 오로지 아내에 대한 칭찬과 좋은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도 아내에 대해 분명히 뭔가 지적도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는 단 하나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어쨌든 가장 객관적일지 모를 제3자에게 '아내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건 내겐 정말 큰 충격이었고, 이후로 2~3주 동안 나는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오랜만에 다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시 2~3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병원을 찾을 시간이 다가오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이야기를 의사 선생님께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누군가 내게 저런 말을 한다면 내가 함부로 말했던 것을 다시 또 긴 시간 정말 힘들게 자책할 것 같았다. 자신이 치료하면서 한 이야기로 내담자가 힘들어했다면 의사 선생님도 괴로우실 수 있지 않을까. 2~3주 동안 자책하느라 힘든 한편으로는 저 생각을 또 엄청 많이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담자로서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었다.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말 때문이었다. 결국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어떤 게 힘드셨어요?'라고 물었을 때, 저 말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뭔가 거짓말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셈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내게 유리한 쪽으로 결론 내렸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말을 들어도 힘들지 않으실 수 있지 않을까, 많은 환자들이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텐데 그런 말에 매번 힘들면 어떻게 하시겠나 하는. 또 한편으로는 결국 나의 치료를 우선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찾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께 2~3주 전 면담에서 있었던 그 이야기로 상담의 포문을 열었다.
의사 선생님은 대범하게(?) 웃으시면서 본인도 말을 하고 '아차' 싶었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자신은 아내를 만난 적도 없고,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으며, 매번 honest 씨의 이야기로 그저 막막하게 그 상을 그려볼 수 있을 뿐이라고. 그런 일방적인 이야기로만 판단한 것이기에 자신이 나의 아내에 대해 하는 이야기에 너무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그러면서 하신 한마디가.
"제가 1년 넘게 면담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단 한 번도 아내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으세요. 정말 단 한 차례도."
몰랐다. 병원을 옮기고 이 병원을 다닌지 15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니. 한편으로 이 말은 또 의외의 영역에서 나를 치유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이상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 그 말을 듣는 마음 한켠에서 '아, 생각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떠올랐던 것 같다.
나는 늘 내 인생을 힘겨워 하고, 예전에도 그랬다. 벌써 스무 해 가까이 지난 일인 것 같은데, 한 번은 어느 후배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오빠는 왜 그렇게 자신에게 엄격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운 만큼, 자신에게도 좀 너그러워져 봐요. 자신에게는 너무 엄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말 관대해요."
스무 해도 넘은 일이라 토씨 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내가 들었던 말은 실로 저 내용 그대로였다. 그때는 학부생 때였는지 대학원생 때였는지까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한국학을 공부할 때여서 한문 공부를 많이 할 때였고, 주로 유교 경전에 나오는 말이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해라'는 내용이었기에 그때도 저 말을 듣고 내심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의사 선생님께 20년 가까이 지나서 비슷한 말을 듣게 된 셈이었다.
나는 안다. 세상에는 정말 마주치지 않아도 손뼉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정말 많이 있다는 것을. 운전할 때와 같다.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하고 열심히 피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이 갑자기 뒤에서 들이박는 것까지 어떻게 막겠는가. 난 그것이 무서워서 가끔씩 두려움 속에 뒷거울(백미러)을 열심히 주시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방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앞옆으로 차가 가득 차 있는데 뒤에서 질주해 오는 차를 어떻게 막냐고. 의외로 세상에는 그런 일방적인 한쪽의 잘못에 의한 이별도 꽤 있다. 그래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험담한다고 해서 그걸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아내와 내 경우는 어느 일방만의 지독한 과실(쉽게 말해 형사법적 책임)에 의해서 헤어지게 된 것은 아니었고, 나도 아내도 좀 더 완벽하고 성숙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더 오래 관계를 이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고, 실은 내가 좀 더 성숙한 사람이기만 했어도 우리는 좋았을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내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폭력배였거나 경제적 파탄자였거나 처가를 등한히 하였거나 도박, 게임, 술, 담배 등에 중독되어 있었던 건 아니다. 물론 다른 이성으로 인한 문제도 당연히 없었고. 그래서 아내가 날 원망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아내를 원망하고 싶지 않고, 굳이 나쁜 이야기를 할 생각도 없다. 아내와 나는 드물게 헤어질 때 서로의 행복과 앞날을 축복하면서 이별한 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아내에게 그렇게 들었기 때문에.
아내는 좋은 사람이었고, 우리는 결국 나 때문에 헤어졌다. 그 사실엔 변함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어디 가서 아내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인정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특별한 사정은 변한 게 없지만 내 마음은 크게 치유되었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여전히 나는 이성의 영역으로 생각해야 할 일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감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어쨌든 덕분에 많이 나아질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았고, 또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