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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극복하는 법

아직도 헤어짐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by honest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헤어짐을 극복하는 방법도 백 가지가 있지 않을까.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이별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만 가지가 있을 것이다. 헤어짐의 무게란 그렇게 모두에게 다른 것이기에 어떤 사람의 이별은 가볍고, 어떤 사람의 헤어짐은 무겁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와의 관계가 파국에 이른지 거의 2년이 되어 간다. 몇 달 지나면 집 전세 계약을 재계약해야 할 때인데, 그건 아내와 헤어진 지 2년이 되었다는 뜻이다. 2년. 돌이켜 보면 정말 힘들고 괴로웠지만 또 극복의 시간이기도 했다. 2년 전 오늘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지만, 20개월 전쯤과 지금을 비교하면 내 상황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새 약도 끊었고, 실제로 일상도 거의 회복했다. 누군가는 '뭘 고작 그런 일 가지고 그러냐'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게는 결코 그렇지 않다. 지난 2년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정말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이렇게 타지에서 한 달 살이까지 하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이별의 아픔이 들쑤셔지는 건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냥 무턱대고 그렇다. 오늘은 지난 몇 달과 비교했을 때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힘들다. 왜 그런 걸까.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은 지금의 고통이 먼저 부각된다. 후회되는 것 투성이다. 일단 오전까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아서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병원 진료를 뒤로 미뤘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거의 한 달 뒤로 미뤄진다는 거다. 그 사이에 또 병원 진료를 위해 서울을 다녀올 순 없는 것 아닌가. 오전에 미룰 때까지만 해도 갑자기 이렇게 상태가 나빠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쩌면 그 점도 한몫했을 수 있다. 병원 진료라는 믿을 구석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내려오면서 약을 챙길까 말까도 고민하였다. 그런데 약을 끊은지 벌써 몇 주 되었다. 그래 봤자 한 달도 안 되었지만. 그 사이에 약을 찾은 일도 없었고, 굳이 약을 챙겨야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지나친 과신이었다. 나의 허영을 반성한다. 나는 여전히 약을 챙겼어야 했다. 만약 약이 있었다면 오늘 같은 날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텐데.


왜 이리 성급하였는지 나를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아내와 헤어질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가 그리 급했다고 겨우 적응한 일상에서 쉽게 일탈해 버렸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냥 서울에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느새 그게 익숙해졌으니. 그런데 갑자기 다른 환경에 처하자 마음의 힘듦이 고개를 들고 선다. 괜찮아졌다는 나의 확신은 지나치게 이른 것이었나. 주최 측에 금요일 병원 진료를 뒤로 미루었다고 이번 주 금요일 일정은 참여할 수 있다고 한 것도 후회한다. 하루 정도 더 내 상태를 지켜보고 말했어도 괜찮았을텐데. 하긴 최근 몇 주 사이에 오늘 같은 날이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순천에 내려와서 힘든 것도 있다. 그때는 아내와 나의 황금기였다. 사이도 가장 좋았을 때고, 우리 둘 다 젊고 눈부셨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의 나를 떠올리는 것보다 더 힘든 건, 그냥 그때의 추억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를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생각지도 못했다. 그건 경사라고만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토요일에 둘째 조카의 백일잔치를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첫째 조카의 백일잔치, 돌잔치 때가 떠올랐다. 그랬구나. 그랬던 적이 있었다. 동생에게 웃으면서 '이번 백일잔치에는 손님이 한 명 줄었네 ㅋㅋㅋㅋㅋ' 하며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때부터 내 마음은 아파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구나. 그때는 아내가 있었다. 첫째 조카의 백일잔치 때에는. 아내와 같이 함께 첫째 조카의 백일에 갔던 게 기억 난다. 돌잔치 때는 아내와 사네 마네 하면서 위기를 겪고 있었던 때였지만, 그때 아내는 진심으로 첫째 조카의 돌잔치에 참석하고 싶다고 내게 말을 했었다. 아, 적다 보니 다시 눈물이 난다. 그랬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 그때라도 내가 정신줄을 붙잡고 서로의 상처를 잘 보듬어 주었더라면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텐데.


늘 일상 속에 파묻혀 시간을 보낼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아직 힘든 줄을. 여전히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줄을. 일상 속에 있을 때는 그렇게 조금씩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경한 곳에서 하루이틀을 보내다 보니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 나는 여전히 괜찮지 못하구나. 아직도 힘들구나. 3년 전에 한 달 살이를 할 때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들더라도 연락하고 이야기할 아내가 있었다. 그런 믿을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난 외로워도 외로운 게 아니었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순천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든다. '아, 나는 정말 혼자구나. 정말 혼자구나' 진작에 혼자였는데 일상 속에서는 늘 같이 만나는 사람,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대화하는 일행들 속에서 내가 혼자였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는 이곳의 일정 때문에 힘든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오늘까지는 그래도 비교적 일정이 많았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진주, 어제는 광주를 다녀왔을 정도로 나의 개인적인 일정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내일부터는 비교적 자유시간이 많아진다. 처음에는 자유시간이 적은 게 불만이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그래도 정신없이 같이 일상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덜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3시 전에 일정이 끝났고, 내일은 3시에 일정을 시작한다. 거의 24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 셈이다. 자유시간이 너무 많고 보니 도리어 마음이 혼란스럽다.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지, 누구와 보내야 하지. 지난 한 열흘 동안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 상처를 극복하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혹시 내가 잘 살 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도 정말 행복하고 자유로운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아, 죽음만이 이런 고통에서 나를 자유롭게 만들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자유로울지.


시간을 내어 한 달 살이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내 마음의 행복을 뜻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돌아가고 싶어졌다. 지겨웠던 탈출하고 싶었던 나의 일상으로. 그래서 이제는 괜찮아진 줄 알았고, 평온해진 줄 알았던 내 모습으로. 약을 먹고 싶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다. 별다른 괴로움이 없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생활하고 지내고 싶다. 정말 지금의 나는 행복에 겨운 상황일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너무 괴롭고 힘들다. 이 모든 상황을 자초한 게 나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래서 나는 어디로도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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