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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와 지역살이

양양 일주일살기 체험을 다녀와서

by honest

휴가를 내고 양양에서 일주일살기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쪽에서 숙박은 마련해 주었고, 식사는 4박 5일 동안 2.5끼 정도 제공되었다.(원래 식사는 사 먹는 게 원칙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고 폭우로 인해 자유시간도 많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설악산도 오르고(용소폭포까지)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걸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살기를 하면서 서울살이와 지역살이에 대해 다방면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은 몇 가지 놀란 점이 있었다. 요즘 양양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서 사람들에게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일텐데 양양 인구는 3만도 채 되지 않았다. 재작년이었다. 한 기자가 지역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 취재해서 낸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 유일하게 좋은 선택지로 제시되었던 곳이 양양이었다. 덕분에 나도 어느 정도 희망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인구가 3만도 되지 않는다니. 수치가 조금 놀라웠다. 이와는 대립되는 또 다른 놀라운 점이 있었는데, 군 관계자 말이 빈집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허허. 요즘 농촌에 빈집이 상당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빈집이 아예 없다고? (이 부분에 대해 양양에 이주로 정착한 사람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서울만한 땅에 빈집이 한 채도 없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심지어 서울조차 빈집이 있다.


양양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 때문인지. 아니면 서핑철이 지났기 때문인지. 확실히 내가 머문 양양은 한산했다. 물론 평일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펜션 사장님과도 꽤 오래 대화를 나눴는데, 여름에는 양양에 아예 내려와 있지만 그 외에는 주말에만 내려와 있고, 평일에는 아예 예약을 받지 않는다고. 성수기와 비수기가 명확하게 구별되는 곳에 비수기 평일에 왔기 때문에 더욱 한산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양양 최고의 맛집으로 꼽히는 황태국밥집을 갈 때였는데, 소개해 주신 분이 말하길 지금 한 달이 그나마 적게 기다릴 수 있는 때라고 했다. 여름철엔 대기가 엄청나며, 또 지금 한 달이 지나고 단풍철이 오면 다시 또 대기가 많다고. 실제로 나는 덕분에 대기 없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그러나 나의 추천으로 금요일 점심에 그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엄청난 인파에 그냥 식사를 하지 않고 차를 돌렸다고 한다.) 한산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운 느낌마저 없지 않았는데, 비수기라 아예 영업하지 않는 식당들도 있었던 까닭이다. 이런 모습을 보았을 때 관광지에서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경쟁이 너무 치열해진 것에 대한 반작용인지. 요즘은 서울을 떠나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양양에서도 만나보았다. 나 또한 서울을 떠난 삶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을 해 보았다. 제주도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예전에 아내에게도 했었고, 통영에서의 한 달 살이도 어찌 보면 그런 측면의 일환이었다. 일주일살기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스무 명이었는데 그중에는 서울이 너무 싫다며 그 대안으로 양양을 생각해 보는 사람도 있어 보였다. 나 또한 계획서는 그렇게 썼다. 그러나 막상 고작 일주일을 머물렀을 뿐인데 지역에서의 삶은 녹록치 않아 보였다.




나는 스무 살에 대학에 진학하며 서울로 올라왔고, 마침 군생활도 서울 옆에서 한 덕분에 올해로 서울생활 스물네 해째다. 마흔이 될 때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이제 고향에서 산 날보다 서울에서 산 날이 더 많구나.' 서울은 여러 장점이 있는 도시다. 그리고 갈수록 그 장점이 더욱 극대화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반면에 정말 사람들이 느끼듯이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치솟는 집값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내가 지역살이를 생각해 보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비용 문제였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변두리에 살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일단은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크다. 이건 정말 취미나 사람 이런 것들을 떠나서 사람의 생존에 관한 문제다. 재작년에 읽었던 지역살이에 관한 책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결국 일자리였다. 양양이 그 책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안으로 꼽혔던 건, 양양으로 귀향한 사람들은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게 성공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역살이를 선택하는 경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자영업 창업의 외길로 내몰린다. 성공적이라면 다행이지만, 확률상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그 책에서도 이야기되었던 게 결국 지역살이에서 좋은 일자리란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도를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로 꼽았던 듯하다. 나 또한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좋은 기업체가 없다면.


내가 하는 일은 전면 재택을 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일이지만 나는 좋소기업에 다니는 관계로 유럽의 페스트가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해도 이제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할 일은 없다고 했다. 이게 현실이다. 그렇게 좋지도 않은 직장이지만 이걸 때려치우고 지역으로 내려갈 용기는 더더욱 생기지 않는다. 이만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조차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튜버와 같은 다양한 생존경로를 찾아내고 있으니. 그러나 어쨌든 내 세대만 해도 어떤 고정된 일자리를 떠올렸을 때, 지역에서 그만한 일자리는 정말 공무원과 공공기관, 지역에 회사가 있는 극히 일부 대기업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이미 내게 충분한 자산이 있다면 지역에 내려가서 살 의향이 있지만, 아직은 그렇지가 못한 상황이다. 회사에서 전면 재택근무를 허용해 준다면 모르겠지만, 당장은 일자리를 포기하고 지역으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너무 오만한 시선일 수 있다. 고작 몇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 생각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속마음으로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 분의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될까?'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지역살이는 서울보다 생활비는 좀 덜 들 수 있다. 그러나 생활비가 덜 드는 만큼 수입도 줄어든다면 지역살이의 메리트는 너무 줄어들지 않을까. 당장 나만 해도 내가 지역살이를 꿈꾸는 까닭은 같은 수입으로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지역은 비용이 덜 드니 그만큼 수입도 줄이라고 한다면 굳이 서울을 포기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로 인해 끊임없이 부업을 찾고 해야 한다면. 그로 인한 수입이 고정적이라면 모르겠으나, 늘 그렇게 부업에 쫓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너무 스트레스일 것 같다. 나도 부업의 성격을 띤 일을 종종 하기도 하고, 그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지금의 일을 그만둘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이라는 전제가 있다. 아직 그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지 못했는데, 생업으로는 부족해 계속 부업을 찾아야 한다면 어떨까.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쉽게 일을 그만두고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사례를 가지고 성급히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양양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만나보니, 부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특히 양양 같은 지역은 계절의 영향을 많이 탄다. 여름에는 괜찮겠지만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어떨까. 이튿날 나도 서핑 강습을 받았고, 양양은 서핑 성지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9월임에도 서핑업소들은 무척이나 한산해 보였다. 우리에게 서핑을 지도해 주었던 코치님들 또한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자유시간에 들린 서점은 여는 날이 일정하지 않았다. 내가 머문 2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서점을 닫는 날에 사장님께서는 따로 교육을 나가시거나 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사장님이 양양에 머물고 있는 건 그 지역이 좋기 때문이고, 삶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겠지만 정말 내가 이곳에 살게 된다면 내 삶은 지속가능할까, 를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는 분명했다. 우리를 초청하고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감히 그분들의 수입을 짐작할 수 있겠느냐만 창출할 수 있는 수익규모를 생각했을 때, 수입의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어느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갔을 때가 떠올랐다. 면접 질문 중에 연봉을 얼마나 받고 싶냐는 물음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했던 대답이 3천3백만 원이었다. 세금을 제하고 그래도 대강 한 달에 250만 원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계산했던 건데, 그쪽에서는 조금 높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지났다. 이제 내가 받아야 할 수입은 더 올라갔어야 하지 않을까.


주거와 급여. 결국 개인의 경제에 대한 문제는 지역살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원초적인 문제다. '여기는 생활비가 적게 드니 급여를 좀 낮추어도 괜찮지?'가 아니라, 수도권과 비교했을 때도 많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사람들은 실제로 지역살이의 메리트를 더 높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이 점은 정말 귀향인을 유치하려 하는 지방정부들에서 가장 크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지역균형발전을 이야기했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지역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여서 그저 나누어 먹기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우리나라도 지역문제에 대한 연구나 사회적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었고, 이제는 권역별로 나누어 권역별 중심은 인정해 주어야 하는 정도로까지 진화하였다. 한때는 예전의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공공기관 이전 등이 좀 더 잘 진행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지만, 돌아보면 그 정도의 시행착오는 겪지 않을 수가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지역에 가면 내가 항상 확인하는 게 있고, 이번 양양에서도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들에게 그 점을 물어보았다. 조금 이상한 질문이지만, 이 지역에는 산부인과가 있는지, 산후조리원이 있는지. 그건 젊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 얼마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이기도 하며,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렇겠지만 제주시에는 산부인과도 많고 산후조리원도 많다. 통영에 가는 길에 해남에 들렀을 때 놀라웠던 건 군 지역임에도 산후조리원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공공산후조리원이었지만 그래서 그랬는지 해남 읍내에는 젊은 여성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뜨였다. 통영에도 산부인과가 있었고 산후조리원도 있었다. 양양은 인구가 3만이 채 되지 않기에 당연히(?) 산후조리원은 없었지만, 공공 의료원에 산부인과 의사가 머문다고 했다. 조금 놀라운 답변이었다. 아무래도 서울과 교통도 편리하고, 지역적 매력이 있는 곳이기에 산부인과 의사를 구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양양 옆의 속초는 시여서 그렇겠지만 산부인과 병원이 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분만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속초 또한 인구가 10만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이기 때문일 거다. 반면 아래로 강릉은 어떨까.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여러 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여러 곳의 산후조리원, 심지어 웬만한 규모의 종합병원까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동지역 최대도시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한 달 살이를 지원하면서 몇 곳에 원서를 내었는데, 실제로 내가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이 당연히 있을 법한 도시들이었다. 어느 정도는 유동인구가 있고 생활환경이 갖추어져 있어야 나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나 또한 고향이 지역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지역살이에 대한 이해가 있다. 인구가 많지 않은 대신에 시내는 충분히 도보권으로 이동 가능하고, 또 한 번에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들. 그 정도라면 충분히 지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통영을 선택했던 것도 그래서였고(다만 통영은 구도심과 신도심의 구분이 명확하고 지형상 도보로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처음에 여수를 떠올렸던 것, 마지막으로는 진주에 지원했던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었다. 다만 예외적인 곳이 있다면 하동인데, 그것은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하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그렇게 지역거점도시만 되어도 우선은 인구가 밀접해 있고, 생활환경이 훨씬 뒷받침된다. 관광지라 하더라도 생활인구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관광객이 없더라도 을씨년스럽지 않고 거주인구만으로도 도시의 규모가 유지되기 시작한다. 이제 태백에 탄광도 없고 도시가 급속도로 소멸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태백 인구는 그래도 4만 내외는 된다. 그리고 그 4만은 태백 시내에 모여 산다. 아마도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겠지만 그렇게 한 번 형성된 인구로 도시는 다시 또 생명력을 얻는 것이다. 양양에서는 이 점이 아쉬웠다. 적은 인구가 넓은 땅에 너무 흩어져 있고, 그것이 주는 한적한 느낌이 비수기에는 정말 비수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다가오는 가을 다시 도전해 볼 지역 한 달 살이는 조금은 영향력을 가진 지역거점도시에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래야 그것이 정말 '체험'이 아니라 '살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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