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by honest

한 달 살이를 꿈꾼지는 오래되었다. 이 이야기는 아내와 헤어지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벌써 2년 가까이 된 이야기다.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생각지도 않게 몸에 아픈 곳이 발견되어 덕분에(?) 회사를 두 달쯤 쉴 수 있게 되었다. 쉽지 않은 기회라 그때 여수 한 달 살이를 해 보려고 계획을 짰는데, 또 다른 방향으로 생각지도 않게 아내와 정말 헤어지는 쪽으로 삶이 흘러가면서 여수 한 달 살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달의 휴식은 정말 휴식 같지 않았다. 차라리 회사를 가는 게 더 나은 삶이었을 것이다. 내 생애 최악의 휴식기였다.


작년에는 정신을 차리기에 바빴다. 작년 이맘 때를 돌아보면 아마도 마지막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지 싶다. 10월? 11월쯤까지 마지막 상담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뭔가를 계획하고 해 볼 틈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는 별다른 휴가도 가지 못했구나. 그러다가 1년 정도가 흘러 지난 겨울쯤부터 뭔가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여러 번 말했다시피 이 회사에서 승진이 세 차례나 누락된 덕택에 '그냥 내 삶이나 잘 즐기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회사에서 조금씩조금씩 휴가를 모았다. 아마도 그 또한 작년인가 재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팀의 다른 직원이 4주 연속 월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 길게 휴가를 쓴 건 알고 있었는데, 3주차부터는 '이번 주에는 나오지 않나' 했는데 4주차 월요일까지도 출근하지 않았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아, 이렇게 길게 휴가를 써도 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아프지 않더라도 휴가를 모아서 한 달을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사에서 인정도 받지 못하는데 크게 눈치 볼 필요도 없겠다 싶었고, 지난 봄부터 지역에서 하는 한 달 살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처음 지원한 곳은 A지역이었다. A지역을 지원한 까닭은 예전에 아는 분이 자신의 친형이 A지역에서 힘 깨나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탓이다. 조카도 A지역 공무원이라고 했다. 일이 되려는지(?) 하필 그분과 상반기에 일을 같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께 부탁해서 A지역 프로그램에 내가 선발될 수 있도록 말 좀 해 달라고 했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조금 아쉬웠지만 그분께서 하는 말이 너무 늦게 이야기를 했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음에는 미리 부탁해야지 하면서 A지역 프로그램을 꾸준히 알아보았고, 드디어 여름에 공고가 났다.


이번에는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부탁했고, 부탁을 떠나서 지원서 자체만으로도 선발될 수 있게끔 노력을 기울였다. 오랜시간 동안 A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지원을 준비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선배에게 추천서도 받았다. 한참 접수를 받고 있을 때 부탁드렸던 분에게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확실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는 마음을 놓기 어려웠다. 가장 큰 장벽이 있었는데 A지역은 기성인 우대였다. 나는 처음 도전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불리했다. 그걸 만회하려고 추천서까지 받은 거였지만, 기성인 우대는 분명한 조건 중 하나였기에 쉽게 넘을 수 있는 장벽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청탁까지 했기 때문에 A지역 선발 결과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거의 될 거라고 생각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예상했겠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상세한 이유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신인이었던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고, 선발된다는 가정 속에서 시간계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떨어진 충격은 컸다. 지금 돌아보면 이게 패착이었지 싶다. A지역에 매달리는 동안 다른 지역 선발계획들은 거의 귓등으로 제치고 있었다. 내심 A지역에 거의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탓이다. 정신을 차리고 그 뒤에 하동에도 지원했고 이번 주엔 진주에도 지원서를 넣었다. 나름대로 국문학과 한국사를 전공한 탓에 진주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는데, 하동은커녕 진주마저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 여전히 지원서를 받는 곳이 없지는 않지만, 나도 지역에 매력을 느껴야 지원서를 쓰게 되니 이제는 더 이상 해 보고 싶은 곳이 없다. 실은 진주도 그렇게까지 끌리진 않았지만 뭔가 선발되는 계기가 있어야겠다 싶었기에 지원서를 썼던 것이다.




조금은 멍하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면서도 몇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요즘 유일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지역 한 달 살이였다. 누군가가 '굳이 그걸 왜 하고 싶어?' 하고 묻는다면 솔직히 딱 맞게 대답할 이유는 없다. 그러게. 왜 하고 싶지. 왜 해야 하지. 그런데도 이조차도 정말 드물게 생긴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었다. 물론 엄청 인생을 걸고 도모해야 할 장기적인 계획이라거나 생산적인 계획은 아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조차 요즘은 하고 싶은 게 없다. 그래서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공기를 맡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기분을 환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3년 전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하면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사람마다 좋아하는 계절이 다르겠지만 한 달 살이를 한다면 가을보단 봄이 낫다는 것이었다. 가을은 해가 짧다. 이번 주에 추분이 지났다. 추분이라고 해도 하루의 절반이 밤인데 이제부터 동지로 향하기 때문에 갈수록 해가 짧아진다. 통영에서 마지막날을 보냈던 건 아마도 11월 초순이었지 싶은데 날이 춥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6시면 아예 깜깜했고, 5시만 되어도 산골에서는 해가 져서 어두웠다. 같은 온도, 같은 날씨라고 해도 봄에는 갈수록 해가 길어진다. 지역 한 달 살이를 하는 이유가 집안에 갇혀서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그 지역을 좀 더 돌아다니고 활동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해가 긴 봄이 더 낫다.


그런데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웃음) 우리 회사는 내년 봄에 새로운 대표가 온다. 지금 대표는 나와 상극인데, 아마 새로운 대표가 온다고 해서 뭐 내게 딱히 좋은 영향이 있을 확률은 낮겠지. 실은 3년 반 전에 새로운 대표가 올 때도 나는 기대가 있었다. 어쨌든 간에 지금 대표와 나는 극히 관계가 좋지 않은데, 새해에는 새로운 대표가 온다. 그 사람이 더 별로일 확률도 있지만, 지금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완전 MZ처럼 일하고 싶은데 또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다른 직원을 보며 휴가를 길게 쓸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 또한 요즘 MZ 같지는 않은 면이지.) 새로운 대표가 왔을 때 한 달이나 길게 휴가를 쓰기에는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이번 대표와는 관계도 아예 틀어졌고, 한 달 휴가를 간다고 해도 딱히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나로서는 지금 해야 한다.




주제도 없이 그냥 한 달 살이로 무작정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어쨌든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가 휴일도 없고 날씨도 좋은데, 지원한 한 달 살이마다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막상 또 이렇게 되고 보니, '그건 정말 하고 싶은 일인가?', '그건 정말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조차 하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A지역이나 하동이나 진주나 한 달 살이에 선정되었다고 해도 받는 지원금은 아마 기껏해야 100만 원 내외였을 거다. 100만 원 정도야 뭐, 내가 못 쓸 것도 없는 돈이다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지원서를 쓰고 응모했던 건 무언가 내게 작은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그런데 그 계기가 쉽게 잘 마련이 되지 않는다. 물론 한편으로는 조금 아까운 마음도 없지 않아 있다.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는.(인터넷을 찾아보면 한 사람이 세 달 연속 세 지역에서 지원금을 받는 사례도 나온다. 이게 맞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밑져야 본전이라서 (올해가 아닌) 작년 1월에 한 달 살이를 하려고 찜해 두었던 여수 지역의 몇몇 숙소에 기간을 줄여서(왜냐면 지원금을 받지 못하니까) 숙박비를 물어보고 있다. 실은 한 달을 연속해서 쉬는 게 눈치가 좀 보이기도 하고. 인연이 닿는다면 그렇게 출발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는 정말 이걸 하고 싶은 건가. 그리고 해야 하는 건가. 또, 이걸 하지 않는다면 그럼 나는 뭘할 건가. 따로 하고 싶거나 해야 할 건 있는 건가.


우스운 이야기지만 꿈이 없는 삶도 나름대로 참 고달프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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