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삶은 지루하다. 더하여 나는 하고 싶은 것조차 없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내게 효능감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이건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도 같은 말을 들었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회사에 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이런 일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고 정상이라는 의미일 거다. 알고 있다. 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니다. 그럼 내가 다니고 싶었던 직장인가. 그것도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한 명의 몫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에 의미가 있다고 해서 그게 꼭 내게도 똑같이 의미를 지니게 하진 않는다.
드물게 생긴 하고 싶었던 일 한 가지가 지역에 내려가 한 달 살이를 하는 거였다. 3년 전이었나.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기도 했고, 또 다르게는 사람이 일하지 않고 한 달 동안 먹고놀기만 하면 사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물론 여기에서 먹고논다는 것은 그냥 빈둥댄다는 것이 아니라 취미생활도 하고 관광도 다니며 그렇게 노는 것을 의미한다. 봄에 한 곳에 지원했다 낙방했었는데 이후로 그 지역에 연고가 있는 분을 알게 되어 여름에 공고가 날 때만을 기다렸었다. 봄에는 너무 늦게 청탁(?)했다 하여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번에는 염치 불구하고 공고가 올라온 날 바로 부탁을 드렸고, 지원서 접수기간 중에 '이번에는 확실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까지 받았다. 내심 정말 오랜만에 생긴 하고 싶은 일이라 기대가 컸건만. 아뿔싸.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공정했다.
공정하게 뽑는다고 해도 뽑힐 수 있을 만큼 계획서도 성실하게 썼고 추천서까지 공들여 작성했건만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기성인 우대라는 벽을 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처음 도전하는 신인이었다. 그래서 추천서도 필요했고. 한동안 침울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정말 한 달 살이가 제일 하고 싶은 일인가, 하고. 그래서 다른 곳에 공고문이 올라와도 지원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는데, 이조차 하지 않으면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일같이 공고문을 보다 보니 곳곳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했고.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다시 여기저기 지원하고 있다. 그랬는데 어제 또 떨어졌다. 이번엔 한 달 살이는 아니고 5일짜리 여행에.
후배에게 하소연을 하려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하나씩 있다고 연락하면서 제주도에 지원한 닷새짜리 여행에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던 와중이었다. 아쉽기는 했다. 아마 불과 1, 2초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적은 차이일 것이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지원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런데 파일 업로드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파일을 찾기 쉬운 곳에 옮겨 두었어야 했는데, (실제로 옮겨 두기는 했지만) 그 파일이 있는 곳까지 가는데 너무 많은 파일이 있어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스스로도 중간에 조금 당황하여 허둥지둥댔다. 그래도 접수가 잘 되었다고 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순번이 늦으면 원래 접수도 안 된다. 지난번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거의 비슷한 시간에 접수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결국 낙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쉬움이 컸다. 휴우-
한 달 살이도 떨어져, 닷새짜리 제주도 여행도 떨어져, 이것뿐만이 아니다. 얼마전에는 회사 결재망에 상하이 연수 관련 공고가 올라왔다. '어, 뭐지?' 하고 들여다 봤는데 눈이 동글동글해졌다.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회사에서 직원을 뽑아서 보내는 게 아니라 각자 알아서 지원하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자격요건이 있었는데 마침맞게 나는 다 최저요건은 갖추고 있었다. 기대에 부푼 와중에 단 하나의 난관은 모(母)회사 대표의 추천서가 필요하단 거였다. 그래도 모회사 대표와는 친분이 없지는 않아서 메일로 추천서를 한 장 부탁했다. 대단한 내용도 필요없었다. '상기인을 추천합니다' 한 줄이면 되었다. 메일을 보내고 잘 될지 조금 찜찜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내게 연락이 오면 잘 설명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음 날 모회사가 아니라 우리 회사 대표로부터 호출이 왔다. 그랬다. 알고 보니 모회사 대표가 우리 회사 대표에게 honest가 이런 데에 지원하려 하는데 알고 있냐고 전화한 거였다. 우리 회사 대표는 가고 싶다면 팀장과 먼저 상의하고 우리 회사에서 보낼 만한지 검토한 뒤에 보내는 게 맞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냈다. 망했다. 난 원래 조용히 내가 비행기표를 사고 내 휴가를 써서 다녀오려던 거였는데. 왜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드냐. 결국 나는 알아보던 상하이행 비행기표의 창을 닫아 버렸다.
후배에게 푸념을 늘어놓으려던 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나쁜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꼭 뭔가를 잃었을 때만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의 현실엔 아무런 변동도 발생하지 않았다. 상하이도 가지 못하게 되었고, 한 달 살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간발의 차로 제주도 여행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게 원래 내게 주어진 것이었는데 무언가를 빼앗아 간 건 아니지 않는가. 내가 뭐 대단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도 아니고.
당연히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한 달 살이를 지원하려고 열심히 자기소개서와 계획서를 썼고, 심지어 추천서를 받고자 추천사도 내가 적었다. 어제는 점심을 거르고 여행지원금을 신청하려 접속해서 대기 중이었고, 상하이 관련 서류를 꼼꼼하게 검토하며(서류가 영문이었으므로) 일정과 비행기표 들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나는 한 달 살이에 뽑혔는데 갑작스레 예산 문제로 취소되지도 않았고, 상하이에 가는 것이 확정되었는데 비자에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작고 사소한 노력을 들였을 뿐이고 물론 그것이 무(無)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거기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인 것은 아니다. 이걸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까.
내게는 좋지 않은 일의 범주가 너무 넓은 게 아닌가 싶었다. 최소한 지금의 현실을 갉아먹는 정도의 무언가가 있을 때 비로소 나쁜 일이라고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도전하다 실패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심지어 그 도전조차 뭐 내가 대단한 것을 한 게 아니지 않는가. 서류 작업 몇 장 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에 따라서는 그 시간을 금쪽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으므로) 그렇다.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모두 나쁜 일이 되는 건 아니지. 계속하다 보면 또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고.
내겐 삶에 좋은 일이, 고마울 일이 많았기에 어찌 보면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작은 일조차 나쁜 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러나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누구에게는 줄지어 좋은 일이 생겨야 한단 법도 없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그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구분해야지.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모두 나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또 아는가. 계속 두드리다 보면 기어코 좋은 일도 생길는지.
떨어질 것 같아도, 다시 또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