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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by honest

한때 회사 사람들과 잘 지내던 시절의 일이다. 한참을 웃고 떠들며 점심을 같이 먹는 와중에 아마도 지금의 팀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honest 씨는 왜 이렇게 웃겨. 진짜 나혼자산다 같은 데 나가도 너무 재밌을 것 같아'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내가 웃기다는 말은 아니었고, 내가 일상에서 겪는 일, 다종다양하게 만나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돌아보면 나도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었나 싶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나는 토크쇼 같은 걸 보면서는 늘 조금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한 사람이 겪는 경험의 양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보니, 토크쇼에는 주변 사람들 에피소드가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나에게도 그 정도 이야기는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유명세라는 단 하나의 차이밖에 없었다.(그 점이 그렇게 큰 차이를 불러오는 것이겠지만) 나도 충분히 저 사람들만큼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고, 사람들을 웃길 수 있으며, 만약 내게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하는 반응까지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나에게는 그 기회가 없는 것인지. 그 점이 서운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나는 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정말 큰 편이고,(그래도 요즘은 많이 줄였다.) 단둘이 만나든 여러 사람이 만나든 내가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내 이야기로도 모자라, 내 주위 사람들의 에피소드까지 이야기해야 하는데 비중이 작을 틈이 있겠는가. 하물며 나는 만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때 팀장은 말하기로 자신은 이제 만나는 사람이 거의 정말 몇 명 없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던 것 같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도 요즘은 만나는 사람이 많이 줄었으니.


그렇게 살아왔던 내가 한 성당의 청년부에 들어갔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 청년부 생활을 하려니 아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알아서 스스로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꼰대', '개저씨' 등등의 평가는 전혀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꼰대이긴 하다. 그러고 보니 성당에 와서 사람이 훨씬 더 성숙해진 것 같다. 말을 줄이고 많이 듣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다소 가식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늘 조심하는 편이다 보니, 친구들이나 선배들, 오래 알고 지낸 후배들에게 하듯이 똑같이 대하진 않는다. 아마도 나는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후배들에게 거의 완벽한 꼰대상 그 자체일텐데 이곳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말을 줄이게 되면, 자연스레 내 이야기도 줄지만 더불어 나의 주변 사람들의 일화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게 된다. 내 이야기도 잘 말하지 않는데, 내 주변 사람들 이야기까지 무엇하러 하겠는가. 아주 특별한 경험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러다 지난 여름 아이들과 다 같이 엠티를 갔다. 아무래도 엠티를 가게 되면 마음도 조금 풀리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더 친하다고 느껴지는 점도 있다. 다른 동생의 차를 얻어 타고 넷이 함께 가는데, 가는 길 오는 길 차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만도 대략 6시간은 되었을 것이다. 서로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나도 긴장이 풀려 내 주변 사람의 에피소드까지 입에 올리는 순간이 왔다. 그런데, 그때 느꼈다. '아, 이 사람들은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까지는 관심이 없구나!' 우스운 이야기인데, 마흔세 해를 살면서 그 순간 그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동안 내 주위에 있는 친구나 동료, 선후배 등등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기 때문에 한 번도 내가 잘못하고 있다거나,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나 다 자신에게는 관심이 있다. 하지만 함께 있는 남에게는 관심이 있는 척하지만 그건 잠시뿐, 실제로도 정말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있진 않다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자기계발서에서도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말을 하겠는가.(실은 나는 이 말이 내게 엄청 위로가 된다.) 그래도 같이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함께 있는 대상이기 때문에 하나의 관심거리, 이야기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의 주변 사람까지는 다르다. 아마 내 경우에도 그럴 것이다. 상대의 지인이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아주 평범한 필부필녀의 이야기에까지 내가 관심을 가질까.(그러고 보니 나는 관심을 가지는 것 같기도)


어제는 1년만에 동아리 동기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맞게도 나는 친구들과의 모임이다 보니 역시 내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내 주변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많이 꺼내는 것 같다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예전과 비교하면 그래도 확실히 말하는 시간이 줄고 듣는 시간이 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 그렇다. 두루 여러 이야기를 하던 와중에 역시 주변 사람의(여기서의 주변 사람은 나만 아는 주변 사람) 에피소드도 대화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말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 '아차!' 싶은 부분이 있었다. 그렇지. 얘네가 나에게나 친구지, 내 주변 사람의 친구이기까지 하진 않지 않은가. 그래도 다들 20년도 넘은 친구들이라서 성당에서 어린 동생들과 이야기를 할 때처럼 내가 말하다가 고요해지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다.




사람은 늘상 일상에서 배우는 법이긴 하겠지만, 나이 들어 어린 동생들과 생활하다 보면 일상에서 깨닫게 되는 게 참 많다. 대체로 결국 늘 어울리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가 늘 그랬듯 그렇게 살아왔다면 나는 친한 동생들에게 그렇듯이 항상 꼰대 같은 사람밖에는 되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조심해야겠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새로운 친구들 덕분에 말을 줄이고 귀를 열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마 나는 내 지분 이상의 말은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을 줄인 것도 정말 삶에서 장족의 발전인데, 더하여 다른 사람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말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줄었다는 것 또한 상상도 하지 못했던 크나큰 진전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원래부터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과는 제 버릇 개 못 주는 삶을 살고 있긴 하다. 그거야 뭐 어쩌겠나. 그조차 변하면 사람이 죽을 때가 된 거겠지.(웃음)


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유퀴즈에 출연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때 그 생각을 했던 건 큰자기가 나에게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모실께요. 다음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연예인보다 더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는 생각도. 어쩌면 실은 그 정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가진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을 수도 있다. 다만 그걸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은 큰자기와 아기자기의 지인 이야기는 관심이 있지만, 내 지인들의 에피소드에까지는 관심이 없다는 것일. 안타깝지만 여기에는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마저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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