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에 대하여
그만두기로 작정하고 입사했던 첫 회사 이야기를 꺼내어 보려 하니, 그전에 나의 첫 사회생활이었던 군대 이야기부터 적어야겠다. 우리나라 남자라면 거의 대부분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 가기 싫은 곳에 끌려가는데 어찌 마음이 좋으련만 한편으로 나는 '이곳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 또한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곳에서나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는 군대도 마찬가지였고, 쭉 모범생으로 살아온 탓에 이왕이면 좋은 성적을 받고 싶단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듯하다. 평생 범생이였던 내게 야생과도 같았던 군대생활은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는 이내 곧 적응하여 나중에 군생활을 마칠 때쯤엔 그래도 꽤나 인정받는 장교였다. 나 같은 고학력자를 처음 본다는 사람들 속에서 군생활을 했지만,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던 내 진심이 인정받았는지 전역하던 날에 어떤 부사관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전역 일주일 전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던 내 밑에 있던 부사관이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볼 때는 나도 정말 마음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잘 못해도 돼', 아니 더 심하게는 '시간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한 군대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썩 성공적으로 지냈던 듯하다.
군대에서 나와 첫 회사를 입사하면서는 목표가 있었다.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 퇴사하고 대학원으로 복학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차였지만, 나의 사회생활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그 회사에서 인정받아서 꼭 붙잡는 직원이 되어야겠다는 목표 정도는 서 있었다. 실제로 그래서 나는 첫 회사생활을 상당히 열심히했다. 열심히하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어쩌면 대학원보다 직장생활이 내 적성에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이니. 퇴사 통보를 하고나서 실제로 회사를 나오기까지 7개월 반이 걸렸는데, 그 기간 동안 회사에서는 정말 부족함 없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한 번은 팀장님께서 대학원을 다니려고 그만두는 거라면 수업 있는 날엔 자기가 출근을 했다고 처리해 둘테니 대학원도 다니면서 회사도 다녀도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던 기억도 떠오른다. 너무 놀라운 제안이라 요즘 유행어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팀장님께서는 어차피 사흘만 출근해도 네 일은 다하지 않겠냐고 하신 말씀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비록 나는 그 회사를 나왔지만, 어쨌든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달성했던 셈이었다.
회사가 싫어지고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면서 점점 '이것은 어차피 남의 일'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것은 내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굳이 이걸 스트레스까지 받아가면서 열심히 해야 돼?' 이런 의문이 점점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까닭이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경로가 어디 가지 않아서,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매출도 올랐으면 좋겠고, 무언가 기획이 마무리 되었을 때는 상도 받았으면 좋겠다. 나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여기 남도에 한 달 살이를 하러 내려와서도 나는 내 일과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고 협조 요청을 부탁하고 있었다. 휴가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같이 한 달 살이를 하는 다른 친구가 '아, 저 정도의 사람이니까 휴가를 한 달씩 내어줄 만하구나' 생각했단다. 웃음이 나왔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군대에서처럼, 첫 회사에서처럼 일했다면 나는 이곳 남도에 내려와서 업무 협조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매출보다 실제로 회사에서 올릴 순이익을 먼저 계산했을테니까.
팀 회의를 하다 보면 '이건 어차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자연스레 인식된다. 팀장은 매출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은데 그걸 지켜보는 나는 '어차피 잘 되면 네 덕, 잘못되면 내 탓'이라고 할 것 아니냐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아 있다. 예전에도 내가 이런 사람이었을까. 32개월만 지내다 나올 나의 부대에서 나는 평생을 그 부대에 머물 것처럼 지냈다. 그만큼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불과 20개월만에 퇴사한 그 회사에 나는 여전히 깊은 연고를 가지고 있다. 퇴사한 이후에 지금의 회사로 옮긴 다음의 일인데, 회사에서 워크숍을 갈 일이 생겼을 때 첫 회사의 계열사 매출에 도움을 주고 싶어, 우리 회사 워크숍 경쟁에 참여하라고 연락했었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대기업 계열이어서 결국엔 비용 문제로 선정되지 못했지만. 그 정도로 내가 속했던 곳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나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회사에서도 그런가.
물론 이 회사에만 한정된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회사 사람들과 매우 사이가 멀지만, 늘 생각한다. 나는 오직 회사 사람들과만 사이가 멀 뿐이며, 실은 넓은 곳에 많은 좋은 친구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그러나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은 다르지 않을까. 회사에 있더라도 나는 많은 친구들과 또 사람들과 연락하고 지내며, 그것이 내 인간관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나 혼자 일하는 시간이 대부분인 터라 내가 회사 사람들을 멀리하며 지내는 게 내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에 대한 태도는 다르다.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는 곳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를 '어차피 내 일도 아니니 대충 해도 되지 뭐'라고 마음먹고 하게 되면, 결국 그건 다른 일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쩌면 그렇게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직원을 뽑을 때 왜 학점을 보고, 왜 학벌을 보며, 왜 모범생인지 여부를 확인할까. 내 짧은 생각으로는 그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회사 일도 남 일이다. 주주와 대표이사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일을 대신해 줄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일을 하면서 '내 일도 아니니 대충 하지 뭐' 이렇게 마음 먹는다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남 일도 내 일처럼' 해 줄 사람을 뽑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든다. 인사 조직이 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누구도 '남 일을 온전히 내 일처럼' 해 줄 수는 없고, 그렇게 열심히 해 주었을 때 또 아쉬움이 없을 수도 없다. '아, 이게 정말 진정한 내 일이었다면' 하는 서운함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정말 '남 일을 남 일처럼' 대하는 것은 또 문제가 다르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편의점이야 어떻게 되든 나야 시급만 받으면 그만이지' 하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식당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식당이야 망하든 말든 나야 월급만 받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그곳의 미래는 어찌될까. 물론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자에 대한 보상에 신경 써야 하지만, 보상이 마뜩찮다고 늘 그렇고 그런 태도로 일한다면 안타깝게도 그 태도가 우리의 삶을 조금씩 잠식해 나갈지도 모른다.
내가 요즘 그렇게 느끼고 있듯이.
다행히도 나는 내 일을 남 일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한 가지 지점만은 늘 마음속 깊이 의식하며 지내고 있다. 나에겐 이 일이 늘상 있는 매일 반복되는 업무의 하나일 뿐이지만, 내가 매번 진행하는 기획안 하나하나는 누군가에겐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걸. 그래서 비록 내가 이 일을 마음에 들어하던 말던 간에 어떤 누군가에게 평생에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를 일이라면, 이 일이 비록 남의 일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은 내 마지막 프로의식이며 결코 무너지지 않은 나의 마지막 마지노선이다. 비록 내 일을 남 일로 여기는 마음이 내 삶에 태도를 잠식했을지라도, 이 마음만 변치않는다면 그래도 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