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도를 아세요?' 이런 권유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자신의 인상을 의심해 봐야 한다. 나쁘게 말하면 만만해 보이는 것이겠지만 좋게 말하면 편안한 인상이라는 말이 된다. 도를 권하는 사람도 아무에게나 말을 걸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오래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내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지 않거나 도를 권하지 않는다면 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는 글귀가 있었던 듯하다. 요즘은 이게 만만해 보이는 인상으로 치부될 수 있어서 좋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첫인상을 평가하는데 호랑이 인상이라서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다면 분명 좋은 인상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울 거다.(인생이 수월한지와는 별개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인상에는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았다. 일단 난 보이는 글과는 달리 상당한 웃상이며 특히 해맑게 웃는다. 주름이 많은 것은 덤이다. 이 나이에도 아직까지 도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으며 살고 있고, 심지어 한 번은 길을 걷는데 모르는 사람이 내게 '혹시 신부님이세요?'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첫인상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점이 항상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나는 늘 나 자신을 '백 미터 미인'이라고 여기며 살았는데 외모가 잘 생겼다는 게 아니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보았을 때는 인상처럼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실제로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되면 그렇지 못해 실망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정의였다. 아마도 당신이 나를 직접 만난다면 이 브런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순천에서 지내던 3주차 금요일에는 자신에 대한 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열 명의 사람이 각자 새롭게 깨달은 자신에 대해 발표를 했고, 발표가 끝나면 참가자들 모두가 번갈아가면서 발표자의 발표에 대해 한 마디씩을 나누었다. 다들 그 발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는데 내 발표에 대해 요약해서 말하면 나는 정말 대강 준비했고, 나이를 허투루 먹지 않았다는 듯 또 대강 그렇게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그래서 발표가 끝난 뒤에 사람들의 인상 깊었던 강평에 대해 이야기하면 첫 친구는 '스티브 잡스세요?' 이런 말을 해서 모두를 웃겼는데, 아마도 내가 대강 준비한 것에 비해서는 긴장하지 않고 무사히 시간을 잘 넘겼기 때문에 한 말이리라. 나를 제외하고 아홉 명의 사람들이 내 발표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해 주었는데 대개 좋은 말이었지만, 유독 한 마디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한 친구는 순천에 내려와서 나와 몇 마디 말을 나누어 보고는 나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비슷한 말로 다른 친구도 자신은 긍정의 힘을 믿는 편이라고 이야기하였는데, 그 말인 즉슨 아마도 처음에 내가 하는 말들이 고까웠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다만 두 사람 다 내게 말하였던 결말은 달랐는데, 첫 친구는 나를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함께 지내면서 내가 정도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자신이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른 친구는 자신은 원래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였지만 나를 보면서 또 다른 시선을 배우게 되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했던 것 같고, 나중에 함께 관광을 갔을 때 내 차를 탔었는데 우리가 한 달이나 함께 지내게 되어서 첫인상이 맞지 않아도 그 사람의 진면목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며 첫인상만 보고 섣부르게 판단했다면 어쩔 뻔했냐고 하였다. 모두가 다 살면서 처음 겪어 보는 반응이었다.
그동안 나는 도리어 사람들에게 내가 좋은 첫인상이 소멸되기 전에 헤어지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었다. 그런데 순천에서 들은 말은 정반대였다. 첫인상은 그렇지 못했는데 계속 보다 보니 좋은 사람이었다고? 사십 평생을 살면서 처음 접해 보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에게 그 까닭을 세세하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 같다. 나는 그날 나에 대해 발표하면서 매사 내가 무척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했는데, 그 점은 순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만 데를 다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항상 도시와 환경과 사람과 여건에 대해 평가하고 있었다. 그날 발표에서도 말하였는데, '이건 이렇게 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건 이렇게 하였다면 더 좋았을텐데', '여기는 왜 이렇게 버려두는 걸까' 등등 순천이라는 도시환경에 대해 아주 잠깐 사이에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다녔다. 내가 굳이 내 생각을 일일이 사람들에게 다 말하진 않았지만 다들 그런 내 시선을 느꼈으리라. 그러면서 '얘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그저 한 달 잘 놀러 왔을 뿐인데.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살면서 내가 한 달 이상을 머무는 지역이 몇 곳이나 있을까. 손꼽아 보아도 분명 열 곳도 안 될 것임이 뻔하다. 내가 살면서 한 달이나 머물며 족적을 남기는 곳인데 나는 그런 곳에 적지 않은 애착을 느낀다. 그로부터 저런 비판적인 시선이 나오는 거다. '이 지역이 더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충분히 더 잘 되게 할 수 있는데'.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회사에 대한 내 시선도 그렇다. 우리 회사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더 좋아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엉망진창인 구성원 조금만(어쩌면 대다수일지도) 해결된다면 훨씬 더 나아질텐데. 잔소리를 하는 누구나 다 '이게 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떠들 건 분명하겠지만, 나 또한 그렇다. 애착이 있기 때문에 그런 시선이 나오는 거다.
아마도 처음에는 다들 '쟤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3주라는 시간이나 함께 있다 보니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일 거다. '아, 그건 그냥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얘가 여기에 애착이 있기 때문에 가지는 비판적인 시선이구나'. 그래서 내게는 그들이 남긴 '정이 있다'는 표현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잔소리와 비판은 그 점에서 구별된다. 정말 애착과 정을 가지고 하는지 여부에 따라. 그 결과 새로운 시선을 볼 수 있었다는 평가도 들을 수 있었고, 어떤 누구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도 나는 놀라웠다. 나는 첫인상에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어제는 일주일만에 순천을 다시 방문하여 순천에 한 달 머무는 동안 기획한 일을 순천 지역 분과 같이 진행하고 돌아왔다. 어제 있었던 행사에 지역민 몇 분이 참석하여 주셨는데 그중에는 샌드위치집 사장님도 계셨다. 비로소 돌아오는 주에야 겨우 대화를 텄던 분. 그 사장님도 처음에 나를 봤을 때 영 인상이 마음에 안 드셨었나 보다. 어제 말씀하시길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더 가깝게 지내셨을 거라고. 허허 참. 첫인상만은 자신 있었는데 도대체 그 인상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새로운 지역에 가면 이렇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마 순천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내 첫인상에 대해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겠지. 이렇게 나에 대해 또 하나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