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별이 이다지도 서러운 까닭은

순천 한 달 살이를 마치면서

by honest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참가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친해지고 나니 다들 그렇게 조금씩 속마음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4주가 정말 긴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처음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날,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숙소에서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4주나 버틸 수 있을지 염려하였던 내가 떠오른다. 내 옆방에 머물렀던 대구에서 온 ㅇ은 이튿날까지 보증금을 포기하더라도 그냥 집에 가 버릴까 생각했었단다. 다들 그렇게 처음에는 조금씩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었구나. 첫 2주는 천천히 흘렀지만 다음 2주는 정말 전광석화와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4주간의 순천 한 달 살이를 끝마쳤다. 4주 동안 정이 든 순천의 풍경과 또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동료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그렇게 안타깝고 서운할 수가 없었지만, 내가 쓸쓸하기 그지없었던 것은 실은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나는 소속이 있는 상태로 천 한 달 살기를 시작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 달씩 휴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확실하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에서 다들 알게 모르게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나 또한 한 달의 일정을 마치고 바로 회사로 복귀해야 한다는 게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안정적인 일터가 있다는 점은 그래서 매우 고마운 일이다. 멀리서 보면 나는 정말 대책없이 한 달씩 휴가를 내는 대단한 배포를 가진 인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티는 내지 않으려 하지만 나도 내심 엄청 눈치를 본다. 처음부터 회사에 한 달을 쉴 거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먼저 2주를 쉬고 회사에 출근해서 이틀 정도 일한 뒤에 다시 남은 2주를 쉴 생각이었다. 물론 한 달 살이 프로그램 일정으로 그 출근일이 하루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서 한 주가 지나고 팀장에게 다시 2주를 쉬어야겠다고 메일을 보냈었는데 실은 그때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안 해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없진 않았지만.


처음 한 달 살이를 시작할 때 적었지만 이번 한 달 살이 프로그램 참여는 나도 나름대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잡은 일정이었다. 봄이 더 좋다는 계절적 장점도 생각하였고(나는 가을에 참여하였지만) 회사 대표가 내년 3월에 교체된다는 점도 고려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한 달씩 휴가를 내는 일이 잦을 수는 없었다. 이번 한 달 살이는 내게 3년만의 도전이었고, 역시 나는 앞으로 한 3, 4년 정도는 이렇게 길게 휴가를 내고 한 달 살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이번 프로그램에 공고가 올라왔을 때는 45세라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사람도 참여가 가능하였던 셈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여 만난 사람들 가운데 나는 최고령자였다. 역대 가장 낮은 경쟁률 덕분인지 이번에는 그래도 고령자가 많이 선발되었고, 아주 어린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모두가 20세기에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물론 20세기 사이에서도 나와 20세기 끄트머리에 태어난 사람은 꽤 나이가 차이 나지만 말이다. 한 달 살이가 끝날 때가 되니, '내겐 과연 다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 달 살이가 만족스러웠던 까닭에 이런 경험을 또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만 하면 이내 곧 우울해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내가 매해 이렇게 한 달씩 휴가를 낼 수는 없을테니 다음에 내가 한 달 살이를 하려면 앞으로 3, 4년은 지난 뒤여야 한다. 그러면 그때 내 나이는..


물론 그때도 나는 45세라는 나이 제한에는 걸리지 않아서 어쩌면 운이 좋게 정말 마지막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번에 참여한 열 명 가운데에서도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축이었는데. 같은 프로그램이 이번이 3회차였는데 대강 분위기를 들어보니 1회차와 2회차 때는 내 나이로는 참여가 불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능하였다 하더라도 아마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모든 현실의 신호들이 내게 '이번이 마지막이야'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그렇다 보니 한 달 살이가 끝나는 것에 사람들과 헤어지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겹친 상태에서 내 마음 한켠에서는 '이제는 정말 젊은 날이 이렇게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마음이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청춘에 머물고 싶어서 그렇게 억지로 우기고 우겨서 지금까지 버텼는데, 이제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선고가 내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래 정말 떠날 사람은 말 없이 조용하게 떠난다는 말이 있다.(웃음) 성가대에서도 그렇고 한 달 살이도 그렇고 매번 내가 떠날 때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을 보면 도리어 상당한 기간 동안 여기에 더 머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뜨끔) 그러나 버티고 버텨도 어쩔 수 없는 나이가 온다. 그리고 일주일, 2박 3일 정도의 프로그램이라면 모르겠지만 한 달을 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었을 확률이 높다. 나는 이렇게 이번에 순천에 내 청춘을 두고 작별하고 왔다. 오래전부터 조로한 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이가 들지 않았으면 했는데 가는 시간은 어떻게 붙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저출생 덕분에(?) 사회가 전체적으로 고령화되면서 내 나이에도 여전히 청춘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하다. 하지만 그 또한 끝은 있을테고, 어쩌면 이번이 그 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아쉽고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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