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by honest

하나마나한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지금처럼 지냈으면 어땠을까. 처음에는 이곳에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쉬이 정을 붙이지 못하였다. 물론 사람이 다른 사람과 장소에 정을 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내 경우에는 그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리는 편이긴 한 것 같다.


이제 순천에서 한 달 살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참 시간이 더디도 갔다. 정을 못 붙여서 그랬던 점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내는 숙소와 그 주변은 여전히 정이 잘 들질 않는다. 그래도 익숙해지긴 했다. 첫주 중간에 성가대 친구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주말에 급히 서울을 다녀왔다. 고작 한 달 머무는데 주말을 온전히 빼앗긴 셈이었지만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서울에는 정든 사람들과 정든 장소가 있는 까닭이었다. 둘째 주에는 회사에도 하루 나가야 했고, 둘째 조카 백일이 있어 또 집에 다녀와야 했다. 원래부터 한 달 머무는 사이에 집에 한 번 정도는 다녀올 생각이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세 번의 주말 가운데 두 번을 집에 다녀오느라 허비하고 말았다.


그렇게 두 번의 주말을 보내고 나니 이곳에서 남은 날들이 절반도 남지 않은 셈이 되었다. 시간은 원래 상대적인 것인가. 첫 두 주는 천천히 가는 것 같더니만, 두 번의 주말이 흐르고 나자 그다음부터는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이곳 사람들과도 많이 친해지기도 했다. 나는 한 달 살이를 같이하는 열 명의 참가자 가운데 차를 가져온 유이한 두 명 중 한 명인데 처음으로 사람들을 내 차에 태운 게 지난주 수요일쯤이었지 싶다. 그전에도 차를 태워주는 정도야 뭐 전혀 부담이 없었지만, 내 공간에 그렇게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흘렀고 어느덧 마지막주가 왔다.


월요일부터는 이번 주가 마지막주라니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에 좀 헛헛하긴 하였다. 그래도 한 주가 남은 셈이라 월요일까지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제는 이곳에서 알게 된 한 사장님이 저녁 때 함께 고기를 구워 먹자며 초대를 해 주셨다.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었지만 간다는 이가 없어 나 혼자 그곳으로 향했는데, 의외로 다른 친구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아무래도 세금을 쓰는 일이다 보니 여기에서도 이것 저것 시키는 게 있는데 오늘 있을 발표 준비를 마치고 왔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 몇 번 못 본 사람들과 섞여 함께 고기를 구워 먹고 내려가서 이차 자리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친구가 사정이 생겨 자긴 내일(그러니까 글쓰는 시점으로 오늘) 아침에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꺼냈다. 너무 놀라서 정말 아무 말이나 터져 나왔다. 참가한 사람들 사이에 가깝고 먼 것이 당연히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 친구와는 실은 거의 이야기를 많이 해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냥 그런 기회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래도 고기를 구워 먹으며 겨우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 좀 나누었나 싶었는데, 아니 이렇게 갑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니. 언제 그렇게 되었느냐고 채근하니 오늘 오후에 갑자기 집의 사정을 들어 바로 올라가야 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때부터는 쭉- 기분이 가라앉아 내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그냥 떠날 뻔한 친구였는데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들 로비로 내려오라고 하여 이 사정을 전하고 사람들과 강제로(?) 인사를 시켰다. 모두가 놀랐고 다들 서운해 하는 모습이었다. 떠나는 친구와 숙소로 돌아오며 아무도 내려오지 않으면 어쩌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행히도 두 명을 뺀 모두가 로비로 내려와 주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늦어 남은 두 명은 잠자리에 들었지 싶다. 아침 9시 기차라고 해서 피곤했지만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 친구를 기차역까지 바라다주었다. 'honest님 차를 처음 타 보네요'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건넨 한 마디에 괜히 또 마음은 무거워지고는 했다. 순천에 머물며 회사와 관련된 행사 하나를 기획하여 나는 한 달 살이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주에 이곳에 다시 내려와야 한다. 떠나는 친구에게 농담처럼 행사에 다녀가라고 했더니, 기차비를 절반 주면 다녀가겠다고 해서 정말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이별이 유예된 듯하여 섭섭함이 조금 덜하긴 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이렇게 매일같이 일상을 함께하는 일은 없겠지.


이 친구가 떠나는 게 왜 이리도 서운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막연하게 다가오고 있었던 이별이 이 친구의 귀향으로 인해 좀 더 직접적으로 체감된 것 아닐까. 정말로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오늘과 내일. 그러고 나면 모레에는 귀향. 어제는 순천만습지에 탐조를 갔다가 다른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시간이 정말 꿈같이 느껴진단 말을 했다. 예전에 통영에서 한 달 살이를 할 때는 회사로부터 두 달 말미를 얻은 가운데 한 달 살이를 한 까닭에 떠나는 게 완전히 섭섭하기만 하진 않았다. 내겐 남은 시간이 더 있었던 까닭에. 그런데 이번에는 휴가를 붙여붙여 온 셈이라 당장 한 달 살이가 끝나면 바로 다음 월요일부터 회사에 나가야 하고, 또 그 주 주말에는 이틀 연속 행사가 있어 결국 연 열이틀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순천만에서 낙조를 보며 흑두루미떼의 장관을 보고 있었는데, 다음 월요일이면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 앞에서 서류와 씨름하고 있을 광경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인연은 이어질 수도 있고 다시 또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열 명의 사람이 함께 다시 한 달 살이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매일같이 같은 곳에서 눈을 뜨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일정을 동반해서 소화하는 일은 다신 없지 않을까. 그건 내 생애 이 사람들과 오직 이번 한 달 동안에만 일어난 일이다.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도 서운하지만 그렇게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과 추억으로 인해 더욱 섭섭한 마음이 든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건 바로 이런 것이다. 예전에는 이별만이 서운하였기에 다시 만날 기약이 있다면 조금 나았는데, 이제는 함께 보냈던 시간과 추억은 다신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상황에 섭섭함이 배가된다. 여기에서 이렇게 이 사람들과 같이 보낸 일상은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일테지.


이제 정말 이틀 남았다. 살면서 다시 또 순천에 오는 일도 있을 것이고, 참가자들과 따로따로 만나는 일 또한 없지 않겠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같이 동고동락하며 보내는 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겠지. 가을이라 그런가. 헤어짐이 유난히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남은 이틀을 더 잘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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