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보름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순천 한 달 살이를 다녀와서는 자동차 정비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재작년이 된 셈인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피도주(쉽게 말해 뺑소니)를 당해 차에 크게 흠이 갔었다. 이러나저러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순천에서 지내던 중에 사람들로부터 차가 엄청 험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실제로 타 보면 내가 그렇게 운전을 험하게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번에도 또 미루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고, 마음먹은 김에 차를 고쳐야겠다 싶어서 서비스센터에 차를 맡기게 되었다.
자동차 정비를 맡겨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크게는 세 가지가 내 예상과 달랐다. 우선은 정비였다. 물피도주 당한 곳 외에도 사소한 흠이 있었다. 또 순천에 다녀오자마자 내 차는 키가 안 들기 시작했는데 정비를 맡기면서 이것도 보아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서비스센터에서 외관 정비는 외관 정비고, 자동차 키 같은 경우에는 일반 정비에 들어가서 라인이 다르기 때문에 봐 줄 수 없다는 거였다. 공식서비스센터이기 때문이었을까. 차에 있는 다른 흠을 볼 수 없는 건 그렇다 치는데, 자동차 키까지 볼 수 없다고 하는 건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뭐 센터의 원칙이라면 지켜야지. 다음은 수리기간이었다. 내 차는 저렴한 수입차인데 그래도 수입차이기에 정비기간이 꽤 길 것을 각오하고 맡긴 거였다. 뭐 나야 출퇴근하는 데 차를 몰지도 않고 별로 운전을 하지 않는 편이라서 한 달 정도는 큰 문제 없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사나흘이면 수리가 끝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것도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가 있었다.
내 차는 분명 다른 차의 사고로 정비를 맡기게 된 셈이지만(정면에 그 정도의 사고 흔적이 남았는데 내가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면, 나도 상대방도 모를 수가 없다.) 내가 범인을 잡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 돈을 주고 수리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네 카센터에 맡길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공식서비스센터에서 매달 날라오는 문자를 무시하긴 어려웠다. 그 문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자차수리 고객 면책금 할인(50%) - 단, 100만 원 이상 수리 시, 최대 25만 원까지 지원" 이 밖에도 사소한 몇 가지 서비스 문구가 더 있었지만 그건 제외하더라도 저 문구만은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부담해야 할 돈을 50% 깎아 준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건 무슨 뒷돈 거래 같은 것도 아니고 공식적인 행사였다.
양심에 털이 난 것일 수도 있지만 별로 마음에 가책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로 수입차서비스업체들이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냥 '이야, 50%를 할인해 줘도 남을 정도인가 보네' 하는 생각 정도였다. 그리고 저건 내게 받아야 할 돈만 50% 할인해 준다는 거지, 보험사로부터 받는 돈까지 할인해 준다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최대 상한선까지 있었다. 정말 치밀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다. 내 차의 수리비는 어느 정도였을까. 나는 한 번도 자동차 수리를 받아 본 적은 없었지만, 대강 100만 원 정도는 '당연히' 나올 것 같았다. 왜냐고 물으면 객관적인 근거는 댈 수 없지만 그냥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의 견적은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겉으로 보았을 때 그 정도 수리는 필요해 보였다. 안타까웠지만.
순조롭게 자동차를 맡겼고, 사나흘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중간중간 서비스센터에서 전화도 왔고, 그때 나는 홍보 문자에 적혀 있었던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다. 안내 문자에는 분명히 "모든 사고수리 차량 세차서비스 무상 제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담사가 이의를 제기하였지만 문자 내용을 말해 주었다. 나는 홍보 문자로 안내되는 서비스 가운데 가장 비용이 들 차량 대차도 받지 않았고, 택시비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세차도 못해 준다니. 돌아보면 정확히 세차를 해 준다고 했는지 아니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내부 청소는 못해 준다고 말했던 건 분명히 기억이 나고, 외관은 깨끗해지긴 했는데 세차까지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내 곧 차를 찾아가야 할 마지막날이 왔다.
아침 출근길부터 상담사의 전화를 받았다. 수리비용에 대한 이런저런 긴 안내가 있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내 차의 전체 수리비는 100만 원이 넘었다. 아, 차를 맡길 때도 참 상담사가 이야기하였다. 100만 원이 넘어서 수리비용 할인에 해당될 거라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상담사가 나에게 내민 견적서는 15만 원이었다. 여차저차해서 22만 원의 금액을 내가 내야 하는데 자신들이 7만 원은 할인해 줄테니 나에게 15만 원을 내라는 거였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홍보 문자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따졌는데, 상담사의 설명은 자신들이 할인해 주더라도 보험사에서 나로부터 납부받아야 할 돈 최소 금액인 15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는 거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알겠다고 하고 보험사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내야 할 수리비가 있다. 그중 일부를 보험사가 내고, 일부를 내가 낸다. 내가 내야 할 금액의 50%를 서비스센터에서 자체적으로 할인해 준다는데, 보험사가 돈을 더 받으라고 한다고? 아니 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당연하다. 보험사 담당자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들은 보험사에서 서비스센터에 줘야 할 돈만 주면 되는 거고, 내가 낼 돈을 할인받든 말든 그건 서비스센터와 내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거였다. 그럼 그렇지. 그러면서 내가 서비스센터에 아예 돈을 내든 안 내든 그것도 상관없다고 말하였다. 결국 서비스센터 상담사와 다시 통화하였고, 이런 사정을 설명한 뒤에 문제가 있으면 보험사 담당자와 이야기하라고 전하였다. 이미 이때부터 나의 분노 게이지는 상당히 차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서비스센터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고 이제는 말이 바뀌어 있었다. 50% 할인은 최대 50%인 거라서 7만 원을 할인해 주는 게 최대라는 거였다. 점점 내 뚜껑이 열렸다. 욕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상담사에게 홍보 문자까지 보내 주었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십수 분의 통화를 거치면서 결국 나는 15만 원의 수리비를 11만 원으로 깎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깎은 작고 소중한 4만 원이었다.
이성을 되찾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 상담사에게 전화가 왔을 때 말해 준대로 그냥 15만 원을 지불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나는 15만 원이라고 해도 그냥 그 정도로 차가 수리된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수리한 차였다. 게다가 나도 알고 상담사도 알고 보험사도 알고 모두가 다 안다. 어디에 가도 15만 원으로 차를 수리할 수 없다. 보험 서비스 덕분이다. 물론 이런 날을 위해 보험에 든 것이고, 실제로 나는 수리비보다 더 많은 돈을 그동안 그 보험사에 지출했다. 그리고 이번 수리를 그 보험사에서 받은 첫 서비스였고. 아무튼 간에 15만 원을 주고 수리를 했더라도 만족했을 거였다. 그랬다면 나는 기분도 상하지 않고 좋지 않았을까. 마음도 한결 여유롭고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 모든 걸 상한 대가로 내가 깎을 수 있었던 금액은 고작 4만 원이었다. 당연히 4만 원도 무조건 작은 돈은 아니다. 우스개로 나는 예전에 50원을 아끼기 위해 지하철 탈 것을 버스 타고, 경기도 버스 탈 것을 서울 버스를 타고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4만 원이면 큰돈이지. 그러나 하루종일 기분이 상하고, 열을 내는 대가라고 생각해 보면 4만 원은 결코 큰돈이 아니다. 그럴 바엔 4만 원을 더 내고 행복하고 마음 편한 쪽을 택할 것 같다. 겨우 4만 원으로 하루의 평안을 살 수 있다면, 4만 원은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고작 4만 원 때문에 그렇게 따져대고 열을 올렸던 내가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그렇다면 나는 다음에 같은 일이 있을 때 이런 눈속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수 있을까. 실제로도 내가 차를 받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같은 안내 문자가 또 왔다. 내가 화가 난 부분은 그런 것이었다. 4만 원? 그래 물론 더 낼 수 있다. 그러나 왜 대기업 계열사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나. 4만 원 더 받으면 자기들도 좋고, 아니면 말고인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가 이번 경험을 토로하자 사무실의 같은 직원은 매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기라면 분명 요금이 잘 나왔는지 잘못 나왔는지 확인하지 않고 그냥 '15만 원 내세요' 하면 그냥 15만 원 내고 말았을 거라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 그래서, 그게 맞는 건가. 이건 그냥 소비자들을 속이는 행동 아닌가.
요즘 나는 회사에서 장님이자 벙어리, 귀머거리로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회사 일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그러니 너무 좋다. 마음도 정말 편하다. 3년 전의 일이다. 평소에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한 직원이 회사의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서 카드깡으로 교육비를 챙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탐정이 된 것처럼 그 사실을 하나하나 알아보는데 흥미롭기도 했지만 정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무척 화가 났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교육비를 횡령한 건 지울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직원은 회사에 돈 일부를 반납했다. 전액도 아니고 일부였다. 그리고 징계는 없었다.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구두경고. 반면 나는 그 과정에서 회사와 극심한 불화를 겪으며 여러 직원들과 갈등관계에 맞닥뜨려야 했다. 지금도 저 횡령범과 나는 고개만 들면 마주할 수 있는 자리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그 일을 겪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정의감을 보였던가. 무엇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인가. 회사는 횡령된 교육비 가운데 소액이나마 돌려받았으니 이익이었을까. 그리고 다른 직원들이 다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 정도 얻었을까. 그럼 나는. 그럼 나는. 그때 깨달았다. 아, 세상에, 회사에 좋은 게 내게도 좋은 건 아니구나. 세상이야 어찌 되든 말든, 회사야 어찌 되든 말든 나는 내 마음이나 편하면 어떨까. 그리고 지금 나는 회사에서는 누구보다도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다.
그래. 자동차 수리를 맡은 대기업 계열사에서 4만 원 정도 꿀꺽하면 어떤가. 그걸 바로잡으려면 들여야 하는 내 에너지와 마음과 편안함의 가치는 그것보다도 더 클텐데. 나처럼 눈에 불을 켜고 사는 사람이 많다면 회사에서 이런 장난을 쉽게 치지 못하겠지만,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은 소수일 거다. 어쩌면 그날 회사에서는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 참, 재수 없게 걸렸네'. 그럼 다음 날 또 똑같이 누군가는 당하고 있을텐데.
20년 전, 나는 장교로 군대에 가면서 면접에서 그런 대답을 했다. 잘못된 부조리를 바로잡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참 맹랑한 답변이다. 성적이 좋기에 망정이지 저런 답변을 하고도 붙을 수가 있었다니.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나의 군대생활도 정말 좌충우돌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전역할 때, 우리 부대에 나보다 더 높은 계급 중에, 심지어는 부사관 고참급 중에서도 나보다 더 그 부대에 오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인물을 내가 모두 퍼내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편했을까. 가끔 나는 생각한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차피 내가 평생 군인 할 것도 아닌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면서 지냈다면 어땠을런지.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즐겁진 않았을런지. 물론 내 덕분에 선배에게 뜯긴 돈 수백만 원을 돌려받은 후배는 어쩌면 그 돈을 돌려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좋은 게 좋은'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사실도 모르고 마음 편히 지내다 전역하진 않았을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영원히 (호구 같지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진 않았을지.
나는 항상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에는 공평하고, 정의롭고, 신뢰할 수 있는 이런 말이 모두 포함된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미미하거나 거의 아예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좀 더러운 세상이더라도 내 마음 편하고, 즐거운 게 내게는 더 아름다운 세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수리된 차를 가지고 나오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