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지인이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 바로 나다. 친구가 차린 병원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건물이었다. 한 10층 정도 되는 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1층엔 약국이 있고 2층부터 꼭대기층까지 진료과별로 병원이 꽉 들어차 있었다. 친구도 웃으면서 자기네 건물주를 병원장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때쯤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나도 내가 아는 사람들로만 차려도 종합병원을 차릴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는 변호사들만 모아도 상당한 순위권 로펌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뿐인가. 지인이 많으면 그것이 좋다. 분야별로 아는 사람이 있는 까닭에, 나는 지나치게 예스럽지만 아직도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 우선은 지인들의 도움부터 청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나 할인정보 등 그 어떠한 것보다도 도움이 된다. 실은 방금 전까지도 나는 한 후배에게 최근 잠금장치가 고장 난 내 시계의 수리에 대해 상담을 받고 있었다. 인터넷의 보통의 어중이떠중이 지식보다는 훨씬 도움이 되었는데 이 후배는 스와치와 쌍벽을 이루는 리치몬드에 다녔던 친구다.
그래. 지인이 많으면 도움이 된다. 석 달에 한 번씩 아는 형이 하는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으러 오라고 연락이 오고(당연히 진료비는 무료다.) 백만 원이 넘는 2백만 원에 가까울 피부과 시술도 나는 한 번 공짜로 받은 적이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아는 변호사들에게 밥을 얻어 먹으면서 상담을 받고, 내가 하는 일과 관련해 언론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도움을 요청하면서 또 식사를 대접받는다. 그건 뭐 내가 혜택을 본 건 아니었지만 우리 회사에서 중규모의 건축 일을 해야 했을 때는 내가 아는 지인들의 건설사에 요청해서 입찰에 참여하도록 했고,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부분은 심지어 주변에 중고차 매매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회사 직원이 차를 팔고 싶다고 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다들 변호사, 의사를 안다고 하면 별로 놀라지 않지만, 중고차 매매상까지 안다고 했을 때는 정말 놀라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honest 월드라고 할 만하다.
어제는 인터넷을 보다가 속초에서 워케이션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확인하였다. 안 그래도 동해안 여행을 한 번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그런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니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썩 내키지 않기도 했다. 2박 3일, 3박 4일을 머물러야 하는데, 혼자 갈 만하려나. 겨우 3년 전? 4년 전에도 혼자 속초에 2박 3일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양양에 또 5일을 다녀오기도 했고. 혼자 여행을 가면 편한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돌아다니고 하는데 불리한 점도 없지 않다. 난 갑각류 음식을 좋아하는데 양양에 갔을 때도, 혼자 속초에 갔을 때도 게 음식은 먹지 못했다. 혼자 대게나 홍게찜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던 까닭이다.(고기는 이제 혼자 구워 먹을 수 있는데) 그리고 지원금 덕분에 상당히 저렴한 금액인 것까지는 알겠는데, 최소 2인 이상 숙박할 수 있는 호텔에서 그게 1인이어도 적용받을 수 있는 조건인지도 고민스러웠다.
여러 갈래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지만 역시 속초에 2박 3일 여행 하나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쓸쓸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럴 때면 꼭 아내 생각이 난다.)
친구와 지인의 정의는 어떻게 다를까. 대개의 경우 나는 많은 지인들을 그냥 친구로 호칭하고는 하지만, (실상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를 지인이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흔할까 싶다.) 그중에는 정말 친구 같은 지인도 있는 반면에 지인 같은 친구도 있다. 그리고 정말 내게 친구란 게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고 나면 마음이 무척 좋지 않다. '내게는 고작 2박 3일 여행을 함께할 친구도 없구나.'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고, 그때 나이가 들어서 진정한 친구 둘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 한 명만 있어도 좋은 인생 그런 글을 보았을 때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니 알겠다. 마흔을 넘기고 보니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전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데 주식 중독에 빠졌던 한 정신과 의사가 출연했다. 그는 생을 포기하기에 앞서 주변 지인들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돌렸고, 그중에 몇 년만에 연락을 받았던 친구의 도움으로 지역에 내려가 몇 달을 살며 다시 삶의 의욕을 회복하였다. 주식으로 몇 억을 날려서 그 사람이 안쓰럽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몇 달이나 그를 돌보아줄 친구가 있었다는 게 무척 부러웠다. 내가 그 경우였다면 어땠을까. 다들 한두 번쯤은 내게 관심을 기울이고 밥도 사 먹이고 좋은 말도 해 주었을 것 같다. 그렇게 몇 달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가 정말 내게 큰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을 가지고 몇 달씩 나를 돌보아주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부정적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런 사람밖에는 안 되는 것 같단 깨달음도 있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몇 달씩 책임지려고 하진 않을 것 같다. 역시, 세상 일은 가는 만큼 돌아오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매우 고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작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그 한 해, 내게는 진심으로 나를 돌보아주고 염려해 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어느 한 사람이 내 생을 책임지고 몇 달씩 나를 들여다봐 주지는 않았지만, 어찌 그것까지 바랄 수 있으랴. 그 시절 그때,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 나는 살아서 멀쩡하게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셈이다.)
어제는 한 성당 동생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성당의 동생들은 참 좋은 아이들이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 줄 모르는 내게 그들이 있어서 그래도 일요일이 적적하지 않고 적당껏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대개가 나를 좋아해 주고 (아마 내가 조심하는 덕분일테지만) 따뜻하게 잘 대하여 준다. 작년 생일에는 순천 출장을 다녀와야 했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다시 온전하게 성당으로 복귀하였을 때 성당 아이들이 축하해 주었던 생일 자리가 떠오른다. 군대에 있을 때 이후로 십수 년만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 보기는 처음이었고, 아이들이 노래를 불러주는 영상도 많이들 단체 메시지방에 올려 주었는데 어느 동생이 영상이 진짜 많다며 인기쟁이라를 말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정말 고마운 동생들이지만 동생들과 나는 정말 많은 나이 차이가 난다. 나는 나이 많은 사람들과도 즐겨 사귀는 편이서 스물 살 내외의 나이 차이가 나는 형, 누나들과 같이 시간 보내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 내가 어려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지만, 내가 나보다 열 살씩 어린 동생을 부여잡고 인생의 어려움과 고민을 상담한다는 풍경에 이르면 좀 우스꽝스럽다는 편견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래전부터 나는 동생들에게도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선배였던 까닭에, 그런 모습이 좋다는 후배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일 때의 이야기다. 그게 일곱 살, 여덟 살을 넘어가고, 열 살을 넘어가며, 열다섯 살을 넘어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나는 나보다 스무 살 많은 형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별로 부담스럽거나 하진 않을 것 같기는 한데, 나는 40년을 살았고, 나보다 20년을 덜 산 동생은 20년을 산 셈이니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생일파티가 끝나고는 한 동네에 사는 친구와 동생 둘과 같이 택시를 타고 돌아왔는데, 동생 둘과 헤어져 집으로 오는 길에 동갑내기 친구와는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어린 동생들과 놀 수 있을까, 이건 맞는 걸까' 하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왔다. 나이에서 오는 어느 정도의 벽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그런 것 같다.
아내는 성인이 되어 영국에서 무려 8년을 살다가 돌아왔고, 한국으로 와서 몇 해 되지 않아 나와 결혼하였다. 한국으로 와서 서너 해 정도는 장인어른, 장모님과 같이 아내의 고향에 살았고, 독립하고나서는 얼마되지 않아 나를 만났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여전히 기억 나는 장면이 있다. 신혼 초에 아내는 침대에 누워 자신은 친구도 별로 없고, 남편이 가장 친한 친구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야기를 듣는 나도 정말 행복했고. 한편으로는 그때만 해도 나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라, 아내와 나는 성향이 참 다른 사람이라고 속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친구의 숫자는 어떨지 몰라도 아내는 그래도 깊이 사귄 친구가 있어, 함께 태국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속초에 다른 친구와 둘이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오히려 아내가 인생을 훨씬 잘 살았지 싶다.
아내와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고 같이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놀러가는 것 하나만은 둘 다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숱하게 제주도를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아내가 함께 가 주었기 때문이었고, 통영, 속초, 광주, 순천, 강릉은 물론이고 수많은 외국의 휴양지와 프랑스까지 아내가 같이 갔기에 갈 수 있었다. 당연히 아내가 없다고 해서 내가 그곳들을 갈 수 없는 사람이냐 하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설 연휴가 다가오고 삼일절 연휴가 다가오는 달력을 보면서 '예전에는 이럴 때면 아내에게 편하게 같이 어딜 놀러 가자'고 이야기하고는 했었는데 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금 내게는 그런 일정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없고.
내 경우에는 친구 같은 아내와 결혼해야겠다거나 결혼하면 아내와 친구처럼 살고 싶다거나 그런 바람은 별로 크지 않았다. 첫 회사에 다닐 때 사보 촬영을 하면서 직원 인터뷰를 하는데, 한 분이 본인은 아내와 친구처럼 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을 찾느라 결혼이 늦어졌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그냥 '뭐 그렇구나' 하고 지나쳤던 듯 싶다. 지금도 나는 꼭 친구 같은 아내를 만나고 싶다거나, 아내와 친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짝꿍이 없는 빈자리는 정말 크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안정감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크고 큰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새해 들어 특별한 약속 없이 토요일을 집에서 그냥 무료하게 보내다가 지난주에는 이럴 바엔 그냥 '회사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무언가를 공유할 사람, 함께할 사람, 나눌 사람이 없는 삶이라는 것이 참 이다지도 공허하다.
쓸쓸하고 적적하고 외롭고 그러면서도 참 우울한 주말의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