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내는 떠나간 것이었습니다
보름쯤 전의 일이다. 실은 지난해부터 1년이 넘도록 나의 가장 큰 소원 가운데 하나는 동생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알겠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집값 속에서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동생 나이 때는 그 문제가 엄청난 스트레스 요인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집값은 치솟는데, 누가 봐도 정부는 말뿐일 뿐 실제로는 집값을 잡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는 다행히(?) 동생보다 2년이나 더 살았다고, 최근 반년 사이에도 집값이 다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살고 있다. 집값은 집값이고, 세상엔 또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생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리고, 그런데 아이들은 또 둘이나 있다. 아마 동생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을 것이다.
4년쯤 전, 동생은 내 조언을 받아들여 앞으로 수도권 신도시가 들어설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로 이사를 갔고, 내 계획대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 도시에서는 그 도시민들을 우대하는 아파트 청약이 진행되었다. 동생은 정말 기대가 컸고, 솔직히 나는 내심으로는 확률이 높지 않다고 봤지만 그래도 나이롱 신자치고는 매주 성당에 갈 때마다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고, 심지어 평일에도 회사 근처의 유명한 성당에 있는 성모상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동생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기도드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과는 낙방이었다. 낙방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고 조금 속상하긴 했지만 어느덧 마음이 단단해진 내가 극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일에 더 관심을 가지기 마련. 동생은 떨어진 뒤에도 오전 내내 왜 떨어졌는지를 한참 보고 있었나 본데, 안타깝게도 동생은 청약통장 증거금을 제때 올리지 않아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것만 제대로 했어도 붙었을텐데.
오 마이 갓.
열심히 동생을 빈말로 위로해 주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내 마음속에서도 천불이 일었다.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은 '야 이 자식아.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진작에 잘했어야지. 결국 너 때문에 떨어진 거 아냐'. 그러나 나보다 수만 배는 더 속상할 동생에게 저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늘 내가 그렇게 마음을 가지고 살듯,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다음엔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다, 등등 아마 동생의 마음엔 하나도 닿지 않을 말들로 위로를 하고 있었다. 물론 내 속은 엄청나게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때 아내 생각이 났다.
실은 올해부터 나는 다시 대학을 다니며 AI를 공부해 볼 생각이었다.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마침 우리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는 온라인 대학에 AI 전공이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 까닭이다. 온라인 대학에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동안 단 한 명도 지원받은 직원이 없었고, 나는 몇 주 전부터 인사 담당 부서에 정말 교육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지 계속해서 확인해 왔다. 그리고 지난주에 원서를 냈고 (당연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갈 줄 알았는데. 오늘 팀장이 추천서를 써 줄 수 없다고 결재문서를 반려하였다. 회사 규정에는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AI 전공이 내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아니, 세상에 AI와 관련 없는 업무도 있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나도 하루이틀 쿨타임을 가지고자 바로 날뛰지 않고 팀장에게 반문했다. 그럼 우리 업무와 관련성 있는 학과는 뭔가요? 내 생각엔 아마 답변이 궁색했을 거다. 다른 과를 가라고 반려한 건 아닐테니. 어처구니없게도 외국어를 배우거나, 교양학부를 다니거나, 아니면 경영학과 같은 데는 어떻겠냐는 답이 돌아왔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알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그 얘기를 들은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 온라인 대학의 주요 보직자였던 한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학과 뭐하러 다니는 거에요. 뭐 해외여행 가서 쓰려고요? 그게 삶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내 생각이 났다.
동생이 청약에서 떨어졌다고 했을 때, 그리고 어찌 보면 동생만 잘했어도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보다 수십만 배는 더 속상할 당사자를 나무랄 수는 없었지만 나 또한 너무 속상했기에 어딘가에 사자후를 토해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인생을 잘 살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사자후를 토해낼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분명히 아내가 있었다면 아내에게 시시콜콜하게 다 일러바칠 수 있었을 거다.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이래서 속상하고, 결국 이건 동생이 이런 실수를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내게는 아내가 없었다. 한두 마디의 푸념을 할 친구도 한 명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굳이 아내가 떠올랐던 건, 사실 본인 일도 아닌데, 심지어 내 일조차도 아닌데, 장황하게 사정을 설명해 가면서 이래서 속상하단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 줄 친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 일이었다면 편하게 하소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연이 너무 복잡했고, 그걸 또 누군가를 붙잡고 일일이 설명하기엔 구차했다. 하물며 내 일조차 아니지 않는가. (나는 내가 떨어졌을 때보다 더 속상하긴 했지만)
우리 회사 사람들도 거의 알고 있는데 아내는 나의 회사생활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왔기에 거의 우리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오늘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이야기했어도 아내는 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함께 욕해 주었을텐데. 'ㅂ은 도대체 왜 그러냐' 하면서. 또 멋지게 쿨한 멘트도 날려 줬을 것이다. '남편 다니고 싶으면 다녀. 학비 내가 내줄께' 하고.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일이 발생했을 때, 다행히(?) 이건 내 일이었기 때문에 이 친구, 저 친구 찾아가며 하소연하긴 했지만 곧바로 아내가 떠올랐었다. 아내와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내와 같이 떠들고 싶은데.
5년쯤 되었다. 아내와 한 번 크게 다투었고, 나름대로 나는 아내에게 뭔가 액션을 취한다고 이메일을 보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아내도 답장을 해 주었다. 내가 기대했던 답장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나는 다(는 아니지만) 잘하고 있고, 아내가 많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아내의 문구가 있다.
'나도 엄마하기 싫어'.
그때쯤이면 우리의 결혼생활이 4년 가까이 지났을 때였는데, 나는 저 말이 무척 이상하다고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늘 우리 관계에서 내가 아빠를 맡고, 아내가 딸을 맡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내에게 몇 번 그렇게 말을 한 적도 있었고 아내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내 어깨의 짐이 더 무겁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던 그 말을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궁시렁궁시렁' 결국 그런 불평을 내내 아내에게 늘어놓는 것.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어머니에게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지만, 그게 바로 아내의 엄마 역할이었구나. 그래서 아내는 저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인데. 나는 이 회사에 들어와서 상당히 회사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무렵에 아내를 만났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고 지금의 팀으로 쫓겨난 뒤부터는 거의 늘 회사에 날이 서 있었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회사와의 짧았던 밀월기가 끝나고, 그렇게 늘 분노와 화염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를 아내는 몇 년 동안이나 돌봐주었다. 그때는 그게 돌봄이라는 걸 몰랐지만. 아내도 회사 생활을 하는 사회인이었다. 아내도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고 힘들었을텐데, 매일매일 그렇게 내게서 안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생이 청약에 떨어졌던 그날, 나는 아내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후배에게 바로 말했다. '뭔가 하소연하고 싶은 게 있을 때 아내 생각이 젤 많이 나. 그러면 왜 아내가 도망갔는지도 알 것 같기도 해'. 아내는 조금씩 서서히 지쳐갔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남편에게도 밝은 날이 오겠지, 좋은 얘기를 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기대도 가지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헤어지는 그날까지 아내가 기다리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이렇게 나에 대해 깨달아 가다 보면, 새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거라는 생각에 미쳐서, 더욱 깊이 우울해진다. 나는 원체 떠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결국 사람은 대체로 좋은 일보다는 섭섭한 일, 아쉬운 일, 서운한 일을 더 많이 이야기하면서 풀게 마련인데, 아쉽게도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금도 아직까지 그렇게 나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 당연히 내 하소연 들어줄 사람을 찾는 건 아니고, 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늘 그런 걸 기대했다. 서로가 서로의 소소한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털어놓고, 끊임없이 푸념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나는 그런 관계를 꿈꾸고 있지만, 내가 어떤 누군가를 진지하게 만나고, 좋은 관계를 이룰 수 있길 바란다면, 지금 나처럼 꿈과 같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쪽이 좀 더 빠르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난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지만.
벌써 15년 가까이 된 일인데 첫 회사를 나올 때, 실은 회사에 몰래 만나던 선배 직원이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이었지만 그 사람은 과장 진급을 눈앞에 둔 대리 4년차였고, 실제로 나이도 나보다 두 살이나 더 많았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우리는 잘 될 수가 없었고, 실제로도 썩 좋게 헤어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 관계는 나와 그 사람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오래 지속되었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두 살이나 어렸지만 늘 그 여자의 아버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문제, 진급에 대한 것, 회사에 서운한 것 등등, 심지어 나말고 만나던 다른 남자에 대한 것(이건 정상적인 건 아니지만)까지 나는 늘 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생각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해 주는 그런 존재였다. 두 살이나 어린 신입사원이었음에도. 어쩌면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그 사람의 당시 삶에 그렇게 큰 도움은 안 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나는 내 고민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라, 늘 그 사람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랬구나. 그랬기에 우리는 그렇게 썩 좋지 않은 관계를 오래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그 뒤로 열다섯 살이나 더 먹었는데, 오히려 그때만큼의 어른스러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여보, 미안해.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와서 돌아보니 당신 정말 힘들었겠다 싶네. 그래도 여보, 그렇게 내 이야길를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 줘서 고마웠어.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니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서 더 아름답게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고마웠고, 늦었지만 미안해.